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즐겨 사용하는 단어를 하나 꼽자면 그건 바로 “은혜”일 것이다. 은혜가 우리를 더욱 은혜롭게 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이 단어를 정말 사랑한다. 그 날 들은 설교가 풍성했거나 성도와의 교제가 좋았다면, 우리는 종종 “오늘 정말 은혜로웠어” 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은혜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 “은혜”라는 단어는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를 아프게 할지도 모르겠다. 이 은혜가 맞닿는 곳에서 우리의 무능력함과 완악한 죄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주님의 은혜를 알면 알 수록 우리는 또한 희망을 갖게 된다. 그 희망을 성경을 통해 같이 살펴보자. 1. 주님은 은혜이시다.  주님은 여러 속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 하나 하나가 부분적이지 않고 완벽 하시다. 주님은 완전한 사랑이시고, 완전히 거룩하시며, 완전히 의로우시고, 완전히 은혜로우시다. 이 각각의 속성들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뭔가부족해서 상호 보완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 연결되어 있는 하나 하나의 속성들이 모두 완벽하다는 것이다. 이 완전한 속성들 중 은혜는 주의 백성을 향한 긍휼과 자비를 내포한다. 시편 기자가 말하길,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라고 이야기 한다 (시 116:3-5). 여러 환난과 슬픔 가운데서도 주의 백성이 넘어지지 않는 것은 주님의 형언할 수 없는 도우심 때문이라 저자는 고백한다. 주님의 온전하신 은혜를 통해 말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 듯,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께서도 온전한 은혜 그 자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은혜가 주의 백성을 향한 그 분의 사랑을 더욱 명확히 한다. 2.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린다.  신약에서 쓰이는 “은혜”는 원어 “카리스-χάρις”에서 번역된 단어인데, 이는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자원하여 무언가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 단어를 좀 더 풀이하자면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선물” 을 지칭한다. 곧, 은혜는 받는 자가 전혀 자격이 없음에도 주는 자께서 그의 뜻 가운데 기꺼이 부여하신 놀라운 선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논리에 따라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려는 습성이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한 자에게 그에 맞는 대가를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은혜는 그 합당한 보상을 뛰어넘는다. 이는 어떠한 열심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죄”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롬3:9-28). 되려, 주님의 은혜는 역설적으로 일하지 않는 자, 즉 자격 없는 자에게만 은혜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롬4:4-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모든 사람은 범죄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죄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는 어떠한 것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다. 인간의 공로(행위)로는 주님의 그 크신 영광에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절망 가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발견된다. 어떠한 값으로도 대신 치를 수 없는 인간의 죄의 삯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끼어 우리를 대신하여 값을 지불 하신 그 속량, 그 십자가 은혜가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즉, 은혜는 아들의 희생을 통해 가치 없는 우리 죄인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은혜는 곧 구원의 선물이다. 3. 예수님의 은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유효한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