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지키기

설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이 세뱃돈으로 만 원짜리 지폐를 웬만큼 받았는데, 작은 아이는 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천 원짜리 지폐를 보고 자기도 천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천 원짜리 한 장이랑 만 원짜리 한 장이랑 바꿉니다. 여러 장 가지고 있는 만 원짜리보다 자기에게 없는 천 원짜리가 더 좋게 보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없고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의 가치를 몰랐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지고 있으니까 그 가치를 잊어버리고 하찮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보다 나에게 없는 것이 더 크게 보입니다. 더 좋게 보이고 더 가치 있게 생각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값없이 얻을 수 있는 복음이기에 그 가치를 잊고 소홀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러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을 듣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를 빼앗으려는 거짓 형제들은 그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 그 상황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2:4)

갈라디아 교회는 거짓 형제들의 속임에 빠져서 자유를 버리고 다시 종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급하게 편지를 썼고 중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우리는 이 말씀에서 자유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자유가 왜 주어진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유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냥 들으면 말장난 같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자유는 우리 삶의 목적이면서 또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자유를 통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를 주셨고 자유롭게 모든 것을 누리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 자유를 범죄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류는 자유를 빼앗긴 채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다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대로 자유롭게 살도록 하려고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 두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굳건하게 서라’는 명령과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굳건하게 서라‘는 말은 군사용어입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굳세게 방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자유를 받은 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으니 자유를 지키며 합당하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종의 멍에란 동물에게 사용했던 멍에와 비슷하게 노예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잡아두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노예를 강제로 복종시켜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일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우리는 굳건하게 서서 다른 복음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속박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자유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나를 위한 자유이면서 동시에 주님을 위한 자유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기 위해서 그 목적으로 자유로운 것입니다.

자유를 얻은 자로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서 이제는 의의 종으로, 마귀에 종에서 해방되어서 이제는 주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주님을 섬기는데 사용합니다. 종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유로 주님을 섬기며 삽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종이 되어 삽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그것이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자유를 지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가지고 있는 걸 그냥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그 값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자유의 가치는 주님의 피 값이자 주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으로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자유를 귀한 것으로 알고 자유를 내 욕심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통해 주님을 섬기며 자유롭게 주님을 예배하며 자유롭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유롭게 주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치르신 희생의 가치를 생각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기억하며 주님을 위해 자유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유, 이 땅에 속한 거짓 신들과 헛된 우상들에게 메이지 않고 참된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는 자유, 세상의 미신과 종교적 관습들 그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우리는 자유롭게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유롭게 하시고 자유를 지키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