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전쟁을 겪는 자에게(시 4편)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면서 내가 종종 안타까워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연약한 부분을 아이에게 물려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인 것 같습니다. 신체적인 면도 그렇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성격적인 부분이 아이에게서 보이면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억울한 마음을 참는 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질책을 받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추궁을 당하거나 혹은 당연한 기대가 무너질 때,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눈물도 자주 흘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느냐며 웃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고 그래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사실 살면서 억울한 일들을 만나는 것은 희귀한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억울한 일들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일들에 다양하게 반응합니다. 혼자 삭히는 사람도 있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 억울함을 풀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밤낮 그 억울함 때문에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러움을 넘어서 분노와 원망의 마음을 키우고 복수의 칼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억울함을 알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이런 억울함 가운데 기록한 시들이 꽤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4편도 그런 상황임을 내용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3편과 4편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기록된 것은 같지만 3편과 다르게 4편에서 다윗은 대적들을 향해서 자신 있게 말하고 그들에게 충고도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경건한 자”, “선택받은 자”와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3절). 4편은 배경을 우리가 특정할 수는 없지만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 즉, 억울한 일을 당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황

2절에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조금 더 찾을 수 있습니다.

시 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2절의 시작은 “인생들아”로 되어 있는데, 아무 사람이나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주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을 생각해보면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현재 다윗의 대적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헛된 것을 사랑하는 죄악 된 마음이 근원에 있고 그 결과로 그들은 거짓 소문을 퍼뜨려서 다윗을 욕되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크게 작게 이런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남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더라’ 통신에 이런저런 ‘MSG’를 넣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솔깃합니다. 더구나 인터넷, 스마트폰의 발달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화가 되었고 우리는 그 문화의 폐해를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때까지” 하려느냐고 한탄 섞인 질문을 합니다. 다윗을 향한 모함이 이미 오래되었고 다윗은 그래서 자신의 상황을 “곤란”(1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곤란은 아주 좁은 공간에 갇혀서 꼼짝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너무나 답답한, 어찌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입니다.

시편 3편이 실제 전쟁 상황이었다면 4편은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다윗처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의 배신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이유 없이 나에 대해서 악의적인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억울한 일을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곤란’한 상황을 만나게 되고 비슷하게 이런 마음의 전쟁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이 전쟁에서 다윗이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입니다.

기도

다윗은 먼저 기도했습니다.

시 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 기도는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어떠하심, 즉 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행사입니다. 다윗이 불의한 상황에서 기억하는 하나님의 속성은 ‘의로우심’이고 하나님의 행사는 ‘너그럽게 하심’입니다. 여기 너그럽게 하심은 앞서 언급된 ‘곤란’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곤란이 아주 좁은 곳에 갇혀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너그럽게 하심은 넓은 곳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꼼짝할 수 없던 다윗을 꼼짝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해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과거의 일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그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구하는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전에도 나에게 이렇게 해주셨으니, 지금도 당연히 이렇게 해주셔야 합니다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야만 하는 책무가 있지  않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자격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확신

하지만 다윗은 기도는 불확실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다윗은 확신에 차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하나님의 속성에 기초합니다. 바로 하나님은 스스로 선택한 언약의 백성을 버리거나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향한 긍휼과 은혜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확신을 표현합니다.

시 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이 확신은 자신의 대적들을 향한 충고로까지 이어집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멈추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 잠잠 하라고 합니다(4절). 그러고 나서 참된 의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라고 충고합니다(5절).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윗은 마음의 전쟁에서 이미 승리했습니다. 그 안의 억울함, 의심, 분노, 원망의 마음이 그로 범죄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다윗은 오히려 기쁨과 평안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6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원리

6절에서 다윗은 보편적인 질문을 합니다.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누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가? 우리의 참된 행복, 만족, 기쁨, 평안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다윗 시대, 그 이전 시대,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까지도 계속해서 묻고 있고 해답을 찾고 있는 그런 질문입니다.

사실 그 해답은 오래전에 공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답을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선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떠나서 선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좋은 것’을 원한다면, 그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들어 우리를 비추실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그 선하신 빛의 유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계속해서 그를 ‘곤란’하게 하던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든 ‘인생들’만 바라보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만 고민했다면, 그는 그 답답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이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의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그를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과 자신의 관계를 바라봤을 때 기도할 수 있었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시 4:7–8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은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겨우겨우 우리의 필요를 채우지 않으십니다. 그 기쁨은 풍성하고 그 평안은 절대적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만 그렇게 할 수 있으십니다.

승리

사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런 상황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그런 전쟁 같은 상황은 내 능력 밖에서 일어날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전쟁 때문에 우리가 낙심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 가운데 거하길 원하시고, 오히려 그 상황을 통해 더욱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열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긍휼이 넘치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를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본다면, 그분께서 그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실 것입니다. 그때 전쟁은 끝이 나고, 우리는 기쁨 가운데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할 것입니다(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