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올바른 방향 (시편119:73-80)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례없는 이번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특히, 미국은 1개월 넘도록 국가비상사태 중이며, 5월 중순까지 이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필수 직업 군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모두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이곳에 체류 중인 나로선 그것이 더욱 피부로 와 닿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이런 예상치 못한 힘든 상황 또는 외부로부터 고난이 찾아 왔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우리도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이 행동해야 할까?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아 영생을 소망하며 사는 자들로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필자는 주께서 주신 고난을 극복할수 있는 여러 지혜들 중 “기도와 말씀”에 초점 맞추어 그 해답을 제시하려 한다. 시편 119편에 나타난 시편 기자의 기도를 통해서 말이다.

시편119편은 “8행씩 나눠지는 시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구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는데, 모두 22개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시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구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히브리어 10번째 알파벳인 “Yod”로 시작하는 구절인 119편73절에서 80절을 같이 나누려고 한다. 이 시는 저자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문 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별히,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더욱 깨달아 온전히살게 해달라는 저자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주제를 “기도의 올바른 방향” 이라고 정해 보았는데, 이를 세가지로 나눠서기술하려 한다. 첫번째는 “주의 말씀을 더욱 알게 하소서” 두번째는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세번째는 “주의 말씀으로 온전케 하소서” 이다. 

그럼 첫번째 기도를 같이 보길 원한다. 

첫번째 기도는 “주의 말씀을 더욱 알게 하소서” 이다. 73절을 보면,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라고 말한다. 저자는주의 손이 자신을 만들었다 이야기 하는데, 본문에 나온 “주의 ”이라는 단어는 무한하신 능력의 하나님 그리고 창조주로서의하나님을 나타낸다. 곧, 이 구절에서 저자는 그 창조주께서 자신을 만드신 개인적 주님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간구한다.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이 구절을 보면 말씀을 깨닫게 하는 주체가 저자 자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뉘앙스를 내포한다. 이는 “내가 깨닫아”에서 “깨닫다”라는 동사를 원어적으로 살펴보면, “누군가가 나를 깨닫게 만들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다시 번역하면, “주님이시여 나를 깨닫게 하셔서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라고 간구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믿는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곧, 저자는 이에 대한 확신과 그로 인한 겸손 안에서 주님께 간구한다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우리가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고, 가만히 있으면 주님이 깨닫게 해주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깨달아 주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이를 적용하여 우리 또한 시편 기자의 기도를 본받아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다. “주님. 저를 지으신 나의 하나님. 저는 주님이제 모든 이해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주를 더욱 알기 원합니다. 저를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깨달아 주의 말씀을 더욱 잘 알게 해주시옵소서.”

두번째 기도이다.

저자는 두번째로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라는 주제를 가지고 본문 74절에서 79까지, 총 5절을 통해 기도한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아마도 바벨론 포로 귀한 이후에 쓰여졌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 당시 수많은 핍박과 적들의 위협이 있었던것 또한 말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74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과 시편 저자의 공통점은 둘 다 주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신뢰한다는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 주를 바라보는 것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시편 기자의 믿음, 즉 그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힘든 상황을 능히 견디어내는 것을 지켜보는데, 그 결과는 그들의 기쁨으로 이어진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상황이 아닌 말씀을 의지하는 어떤 한 사람의 믿음의 본보기가 다른 형제들에게 큰 위안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상황을 뛰어넘어 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자의 견고한 믿음을 통해서 말이다.

다음 구절을 보면, 75절에서 저자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본문에 나온 “주의 심판”은 “주님의 말씀 –율례, 율법, 계명, 증거, 규례” 을 지칭하는 여러 단어들 중 하나인데, 문맥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는 또한 주님의 모든 주권적 결정을 뜻한다. 이는 주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의 결정 또한 의롭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주님께서 저자를 괴롭게 하신다고 기자는 고백한다. 왜일까? 그것은 바로 주께서 성실하시기 때문이다. “성실”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은 어떤 한 주권자가 끝까지 그 언약을 지키는 신실함을 뜻하는데, 그 성실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시험 가운데 내 맡기시는 것은 결국, 그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 옳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임을 알수 있다. 곧, 주의 모든 연단은 자신의 백성을 파멸이 아닌 의의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단은 신실하신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의롭게 하시기 위한 수단인 것 또한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음 두 구절 76절과 77절을 보면, 저자는 이 두 절을 통해 주의 변함없는 사랑과 인자하심 안에서 위로와 회복을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76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라고 기도한다. 여기서 “인자하심”은 아까 75절에서 나온“성실하심”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변치 않은 사랑을 말한다. 즉, 저자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분께 참 평안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약속의 주님께 말이다. 또한, 77절에서 그는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여 살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었을까? 고난의 상황 중에 말이다. 그 답이 77절 마지막에 있는데, 그것은 바로주의 법이 그의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라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이는 그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함을 바탕으로간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과 긍휼로 자신을 도우소서” 라고 말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주님과 그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여 모든 상황 가운데서 주를 의뢰해야 할 줄로 믿는다.

다음 78절을 보면, 저자가 이렇게 말한다.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라고 말이다. 문맥을 보면, 저자가 계속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78절에서 극에 달한다. 동사 “엎드러뜨렸으니”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길에 빠뜨리다” 라는 뜻인데, 즉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저자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저자가 주께 간구하는 것은 그들의 멸망이었는데, 수치를 당하다”라는 표현은 마치 전쟁에서 적군에게 패배를 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는 곧 주를 신뢰하지 않는 교만한 자의 무너짐을 저자가 간구한다 말할 수 있다. 주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말이다.

하지만, 적들의 핍박을 받던 이 순간에도 저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주님을 신뢰하는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79절에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라는 저자의 이 기도는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곧, 74절에서 믿는 형제들이 저자의 믿음을 통해 큰 기쁨을 누렸던 것을 넘어서서, 그들이 이번에는 저자를 통해 주님의말씀을 더욱 깨달아 알아가는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핍박의 상황 가운데서 저자는 자신 뿐만 아니라 믿는 형제들의 영적인 유익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74절에서 79절까지의 두번째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극심한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 저자가 능히 버틸 수있었던 것은 상황과 그 변화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견고함은 오직 주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증언한다. 저자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핍박 가운데서 주의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라고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또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길 원한다. “주님,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듭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구원과 평안은 오직 주님께 달려 있음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더욱 알게 하소서. 저의 기쁨은 상황이 아닌 주님과 주의 말씀에 있음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저를 상황이 아닌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세번째 기도이다.

세번째 기도는 “주의 말씀으로 온전케 하소서” 이다. 마지막 80절에서 저자는 간구한다.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하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마지막 구절에서도 그의 초점은 주님의 말씀이었다이는 적들이 무너뜨리려 하는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나의 살길은 오직 주의 율례, 즉 그분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원어의 뉘앙스를 살린 번역(주님의 율례 안에서 내 마음을 완전케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저는 절대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을 통해 더욱 명확해지는데, 곧 저자가 적들로부터 결코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주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온전케하기 때문이었다.

말씀이 그의 마음을 주님의 지식과 지혜로 충만케하여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에도 넘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인데, 바람에 흩날리는 모레같은 마음이 아닌, 견고한 반석같은 마음. 그것은 바로 오직 주님의 말씀 근거했을 때 가능한 것임을 저자의 기도를 통해우리는 알 수 있다. 오직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서 말이다.

결론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여러분께 몇가지 질문하려고 한다. 당신에게 주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에게 말씀은 생명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책들 중에서 좀 더 나은 그런 정도의 책인가? 당신에게 말씀은 당신의 영혼을 소생시키며 의의 길로 인도하는 책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도전을 하고 싶다. 오늘 시편 기자가 믿음 안에서 주께 간구한 기도를 다시 깊이 묵상해볼 것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 극심한 혼란기에 살고 있다. 내적 갈등과 외적 압력에 의해 자의적 타의적 고충 – 정서적 불안, 경제적 압박, 미래에대한 근심 등 – 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결코 상황에 있지 않다. 오직, 주님과 그의 완전한 말씀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시편 기자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님, 세상이 지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깨달아 주를 더욱 알게 해주시옵소서. 저를 주의 말씀으로 온전케 해주시옵소서. 그것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저를 끝까지 지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더욱 주를 알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