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런 비슷한 말들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저희 남편은 구원은 받았는데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를 못했어요”

“이 정도 죄는 하나님께서도 다 이해하고 넘어가 주실 겁니다”

“저는 모태신앙이라 천국 갈 겁니다.  저희 어머님께서 저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시거든요”

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전혀 변화 없이 예전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일까요?  믿음이 있는데 왜 아직도 세상 사람과 같은 삶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 하시고 고민하시는 문제입니다.  안타깝게도 위의 고백들은 구원에 대해 잘못 이해해서 생기는 오해들입니다.

또한 이러한 고민들도 자주 듣습니다.

“저는 정말 이러한 죄의 습관을 끊어 버리고 싶은데 잘 안돼요.  너무 변화가 더딘거 같아요.  과연 저는 구원을 받았나요?”  

구원을 받은 많은 성도님들께서 성화에 대한 오해로 좌절하시며 구원을 의심하시는 것 또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4장 20-24을 통해 많은 분들이 갖고 계신 구원과 성화에 대한 오해들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옥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0-24)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것은 특별한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거나 그의 가르침을 배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에베소성도들이 예수님을 전인격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을 때 바울은 예수님의 관한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을 뛰어 넘는 인격적인앎을 뜻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표현은 사람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배우는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20절에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않았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이방인, 즉 ‘믿지 않는 자들처럼 살아도 된다고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배웠다면 너희는 믿기 전의 삶을 그대로 가지고 살 수 없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배운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2절)

두번째,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절)

세번째,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4절)

오늘은 그 중 첫번째,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합니다. ‘벗어 버리고’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물건을 내려 놓다”, “옷을 벗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술, 담배, 험담, 미움, 욕, 도둑질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옛 사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죄의 노예로 있었던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벗어 버리라는 동사는 단회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면서 한 편으로는 세상을 다른 한 편으로는 예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곧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또 바울은 로마서 6장 4절에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이젠 네 자신에게 죽어야 한다.  더 이상 네 삶의 주인은 네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시는 것이다.  네가 즐기던 죄, 삶의 패턴, 그것이무엇이 되었든지 그런 삶에서 되돌이켜야 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거나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들에 대해 ‘합당치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옛 사람을 벗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한가지 딜레마가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는데 정확하게 정리가 되지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죄의 권세에서 자유하게 되어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계속 죄를 짓는다는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된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 죄에서 자유롭지 않은 거죠?  왜 이렇게 아직도 옛 사람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죠?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단번에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지만 이 새 사람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타락한 육신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0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거듭 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옛 사람의 생각, 감정, 욕구, 삶의 방식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새롭게 거듭난 우리 속사람이 아직 육신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야생 돼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서 기적적으로 야생 돼지가 사람의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돼지는 이제 사람처럼 음식을 조리해서 교양있게 식탁에 앉아 먹고 깨끗한 집에서 살며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고 싶게 되었습니다.  돼지 몸뚱이 속에 돼지의 의식은 죽었고새로 들어온 사람의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은 사람이지만 몸은 아직도 돼지로 살아왔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 돼지는 진흙탕이나 자신의 배설물을 보면 본능적으로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의식은 이제 그것이 더러운 행위라 깨달아져 다시는 그러지 말자 하지만 어느새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또 돼지의 뛰어난 후각은 돼지로 하여금 그 코를 흙속에 파묻고 정신없이 헤집으면서 지저분한 음식물을 찾아 먹고 싶게 합니다.  이렇게 야만스럽게 더이상 살고싶지 않지만 어느 순간 탐욕스럽게 흙을 파헤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람의 의식은 돼지 몸뚱이 속에 있는 본능과 이제부터 계속해서 싸우게 됩니다. 사람의 의식에 걸 맞는 사람의 몸을 입지 않는한 돼지는 그 몸에 남아있는 습관과 본능과 싸워야 합니다.

육신과 싸우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비슷합니다.  구원을 받기 전에 우리의 속사람과 겉사람은 둘 다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좀 자세히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겐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겉사람은 육신을 속사람은 영혼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지 않았을 때 우리의 영과 육은 모두 죄와 사망의 권세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울 때에 이 옛 사람 곧 영은 죽고 새로운 사람 다시 말해 새로운 영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 마귀를 섬기고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죄를 따르던 ‘속 사람’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새롭게 창조된 속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육신은 아직 죄의 권세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속 사람은 죄에 대해서 죽었는데 우리의 육신은 아직까지 죄에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육신과 날마다 씨름을 하며 싸우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화로운 몸을 받을때 비로소 멈출 것입니다.  이렇듯 구원받은 속사람이 갇혀있는 육신은 아직도 속이는 욕구로 사로잡혔고 계속해서 썩어져 가고 있으며 옛 사람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옛 사람을 벗은 저와여러분에게 옛 사람처럼 살지 말라고 명합니다.

22절을 보면 바울은 옛 사람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첫번째,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고 두번째,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첫번째,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간다라는 것은 영은 날마다 새로와 지지만 육신은 아직까지 유혹의 욕심의 노예가 되어 계속 썩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분사’를 사용하여 계속 썩어져 간다고 가르쳐 줍니다.  이 유혹의 욕심이라는 것은 영어 번역 번역 “deceitful desires”처럼 “속이는 욕구”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16절에서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속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아 날로 새로워지지만 육신은 아직까지도 거짓된 헛된 욕구를 따라 썩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두번째, 구습을 따른다고 가르쳐 줍니다.  구습이라는 것은 “옛 습관”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아직도 옛 사람의 옛날의 습관과 본능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은 아직까지 17-19절과 같이 여전히 예수님을 배우기 전의습관과 버릇을 따라 작동합니다.

그러나 모든 영역에서 옛 사람을 벗은 우리들은 아직까지 온전히 벗지 못한 세상의 풍조와 습관들을 날마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 분들 중 옛 사람의 구습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도 별 다른 변화가 없어서 좌절하고 포기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은 예수님을 온전하게 배운다는 것, 진정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런 육신의 욕심과 구습을 완전히 단번에 버리고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변한다는 것이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죄를 사랑하는 속 사람이 죽고 이젠 이런 것들을 미워하고 버리고 싶어하며 거룩한 삶을 사고 싶어하는 새로운 속 사람이 창조되었다는것이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 사람은 벗어 버렸지만 옛 사람의 습성은 단번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에서 돌이키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결단적으로 죄에서 돌이킨 사건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양다리를 걸치고 계시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착각하십니까?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러분에게 결정적으로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사건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것은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전의 죄 가운데 살던 삶과 별 다른 것이 없다면 그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이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나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결단적으로 죄에서 돌이켰고 나의 삶을 통해서 온전하진 않지만 죄를 미워하며 죄를 벗어버리는 삶을 살고 계시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올 한 해도 의도적으로 아직 남아있는 옛 사람의 욕심과 습관을 버리겠다 다짐하심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다음 글에서는 예수를 배웠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인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세히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