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는 자들에게(시 3편)

잠을 못 자는 괴로움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고통입니다. 하루 이틀이야 괜찮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렇다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환경이 잘 맞지 않아서, 몸에 이상이 있어서, 좋지 않은 습관 때문에 잠을 잘 못 잘 수도 있습니다. 염려와 걱정, 불안 등의 정신적인 원인도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원인입니다. 어떤 원인은 자신의 결심으로 제거할 수도 있고 어떤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의학적인 처방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떤 상황으로 인한 염려와 걱정 혹은 불안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시편 3편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다윗은 그 생애에서 크게 2번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첫 번째는 공식적으로 왕이 되기 전 그를 죽이려 했던 사울 왕에게서 계속해서 도망 다녔던 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왕이 된 후 그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피난해야만 했던 일입니다. 시편 3편은 그 표제에서 말하는 것처럼 압살롬에게서 피할 때에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그 상황을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녹록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피난 중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지쳤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자신이 총애했던 아들의 반역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심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 모든 일이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의 결과로서 왔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낙담하게 했을 것입니다(삼하 12:10-12). 이런 다윗의 마음을 조금 엿볼 수 있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많은지요 … 많으니이다 … 많은 사람이”(1-2절) 그 수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윗은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이 그를 대적해서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압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다윗을 낙망케 하는 말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2절)

다윗 자신도 그가 처한 상황을 보며 비슷한 말을 자신에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까? 심지어 내 죄의 결과로서 당하고 있는 어려움인데…

여기서 생각이 멈추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곳에 갇히고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저 상황이 변하기만 바랍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여기서 한 가지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여”(3절)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3가지로 표현합니다. 방패, 영광, 머리를 드시는 자(3절).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 것은 다윗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관계없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지금 특별히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언급하며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지금 처한 상황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방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지만 “나의 방패” 하나님은 완전한 보호가 되십니다. 다윗은 왕궁에서 도망하는 치욕을 당하고 있지만 “나의 영광”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진정한 영광이 되어 주십니다. 다윗은 슬픔으로 머리를 떨구고 있지만 진정한 기쁨을 주시는 분이 “나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서 고백하여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신학적 주제가 아니라 실천적이며 개인적인 관계의 주제로 가지고 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거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확신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합니다(4절).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가 걱정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다윗 밖에서가 아니라 다윗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의 불안한 마음이 이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5-6절)

다윗이 처해있는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대적”이 어떻게든 다윗을 무너뜨리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제 다윗은 그런 사람이 천만 명이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확신 가운데 말합니다. 불안해하고 염려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대신 편히 눕고 자고 깬다고 말합니다. 전쟁 중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졸지도 않는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이며 영광이며 머리를 드시는 분이시기에 다윗은 누워 자고 깰 수 있었습니다.

이런 평안한 마음으로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의 기쁨을 베풀어주시기를 구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결국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분이 구원하기 원하시면 그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구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와 관계없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염려와 걱정을 단순히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마 6:30-32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로 믿고 있다면 먹을 것 입을 것을 가지고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맥락에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것은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하나님이 모두 들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상황을 뛰어넘는 평강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상황과 관계없이 평안할 수 있고 성경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염려할 일은 참 많습니다. 그 일들에 압도되어 답답할 때, 그래서 잠조차 제대로 자기 힘들 때,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윗의 방패, 영광, 머리를 드시는 자이셨던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는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여호와여.” 이 믿음의 한마디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