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래퍼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회심? – 왕이신 예수님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예수는 주… 예수는 주…”

지난달 발매한 미국의 래퍼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새 앨범 ‘왕이신 예수님’(Jesus is King)에 수록된 ‘예수는 주’(Jesus is Lord)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많은 한국 분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이름이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이미 새 앨범, ‘왕이신 예수님’으로 센세이션급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입니다. 칸예 웨스트는 미국에서는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2004년에 데뷔 이래로 미국에서는 총 1억 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과 뮤지션들에게는 아카데미 시상식과도 같은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총 21번이나 수상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웨스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손을 대는 사업마다 성공시키는 ‘마이다스의 손’, 또 그의 자유분방한 라이프 스타일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화제인 미국의 대스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웨스트의 많은 노래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웨스트가 올해 초 자신이 이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히 TV 앞에서 고백하고 그 이후로 미국 전역의 교회를 돌아다니며 매주 주일예배를 인도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지난달 발매한 “왕이신 예수님(Jesus is King)”은 11월 둘째 주 빌보드 5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빌보드 기독교 음악 부문 2개 차트에서 1위 곡부터 10위 곡까지를 휩쓸었는데 이는 빌보드 역사상 웨스트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또 지난 9월에 웨스트의 찬양 사역팀에서 주최한 금요 예배 때 저희 마스터스 신학교 출신의 목사님 아담 타이슨(Adam Tyson) 목사님의 이사야서 6장을 통한 복음적인 설교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저번 주에는 칸예 웨스트가 미국의 대표적인 삯꾼이며 번영신학과 가짜 복음을 가르쳐 사람들을 미혹하는 조엘 오스틴(Joel Ostenn)의 교회에 출몰을 해서 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렇게 칸예 웨스트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니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칸예의 회심은 진짜이고 칸예의 찬양 사역은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며 칸예가 하는 모든 사역에 지지를 보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칸예의 구원 간증은 정말 진실되어 보이나 아직은 그의 사역에 주의해야 할 것이 많다고 경고합니다. 칸예의 주위에 신실한 목회자들이 복음의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나, 칸예가 아직은 말씀을 통해 분별력이 더 성장해야 할 새신자이기 때문에 지금은 사역을 이끄는 자의 역할이 아니라 더 배우고 자라야 하는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칸예는 그저 사업가로서 그리스도인임을 자신의 돈벌이와 명성에 이용하고 있고 그의 신앙고백도 가짜라며 칸예의 회심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자,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칸예 웨스트의 구원의 진실성을 따져보는 것에 노력을 쏟기보다는 말씀을 통해 회심(Conversion)에 관한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누구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런 사람도 구원하시겠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으셨습니까? 

여기 잔인한 기독교의 핍박자가 있습니다. 성도들을 옥에 가두며 그들을 죽일 때에 기꺼이 찬성투표를 하고 회당에서 형벌을 가하고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옥에 넘기며 교회를 잔멸하고.. 그야말로 무자비했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한 그리스도인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 그것을 마땅히 여기며 그 죽음을 지켜본 자가 있습니다. 누굽니까? 바로 다소 사람 청년 사울입니다. 

본인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유대교 엘리트 사울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증오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의 이야기를 증오했습니다. 궁극적으로 나사렛 예수라는 인물을 증오했습니다. 또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이 이 도를 따르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잘못된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이 교회를 핍박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핍박하며 활동 무대를 넓혀가던 사울의 악명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00킬로나 넘게 떨어진 소도시 다메섹의 교회 공동체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 도시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아나니아 또한 사울의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행9:13).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사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남녀를 불문하고 결박해서 잡아들이기 위해 지금 다메섹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행9:1a)

이 문장의 헬라어 원어는 문자적으로 “위협과 살기를 들이 마신다”라는 표현입니다. 숨을 내뱉는 게 아니라 들이 마신다.. 무슨 뜻입니까? 바로 바울 삶의 호흡, 즉, 그의 삶 순간순간이 바로 주의 제자들에게 핍박을 가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섭습니다. 이 자가 다메섹의 주의 제자들을 잡아들여서 예루살렘으로 보내기 위해서 공문까지 들고 그리스도인들의 숨을 조여오고 있을 때.. 부활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광채와 함께 이 핍박자의 눈앞에 나타나십니다.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행9:3-5a)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 22 장과 26 장을 보시면 때는 정오였고, 이때 홀연히 사울과 그 일행에게 비추어졌던 빛은 “큰 빛”, “해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기록합니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크고 밝은 빛이 하늘로부터 나왔습니다. 이게 어떤 빛입니까? 바로 주님의 영광의 빛입니다. 이 광경에 완전히 압도당한 사울은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이때 이 빛 가운데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상황입니다. 이 음성의 실체가 사울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믿기지 않는 것은 나를 박해한다고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두려움에 떤 목소리로 바울이 질문합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여기서 ‘주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바울은 이 음성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인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단지 확실한 것은 이 분은 초월적인 신적인 존재라는 것뿐입니다. 주여!라는 극존칭이 입에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이 질문에 음성이 다시 한번 들려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5b)

바울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바울의 직접적인 간증을 담고 있는 사도행전 22장에서는 예수께서 사울에게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행22:8)고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사울에게 그리스도 예수도 아닌, 왕이신 예수도 아닌, 창조자 예수도 아닌 ‘나사렛 예수’라고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사울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나사렛 사람 예수. 자신이 온 삶을 걸고 그토록 핍박했던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와 예수와 한 몸이었으며 교회를 핍박하던 것이 바로 예수를 박해하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자신이 들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간증들, 스데반의 설교가 주마등처럼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짧은 시간에 모든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집니다. 아! 그들이 맞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짜다! 내가 믿던 모든 것이 거짓이고 그들이 전하던 메시지가 진짜 메시지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울에게 조여오는 감정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왔던 것인가!’

실제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눈으로 목격했습니다(행9:17,27; 고전15:8-9).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신(갈1:15)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향한 살기와 위협으로 숨 쉬던 사울에게 임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전혀 구원받지 못할 것 같던 사울에게 구원의 은혜가 전적으로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마음의 문을 여시고 그 죽은 영혼을 거듭나게 소생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구원하지 않으실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음행하던 자였습니다. 우상 숭배하던 자였습니다. 간음하는 자였습니다.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질하고 탐욕을 부리던 자 술 취하고 모역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할 자들이었습니다(고전6:9-10). 하지만,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었더니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 그리고 이제는 저와 여러분도 핍박자 사울과 같은 고백을 외칩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22:10) 

둘째로, 거듭난 영혼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울의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엡2:1)은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겉으로만 거듭난 척 위장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뒤바뀐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되었습니다. 급진적인 변화가 사울에게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먼저, 천지를 지으신, 온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위대하고 광활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기도로 교제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눈을 삼일 동안 가리시고 완전히 사울을 격리하셨습니다. 사울은 삼 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그리고 보지도 못한 채(행9:8-9) 온 신경을 집중하여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 사실을 아나니아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행9:11). 

또한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그리고 바울이 후에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회심의 순간을 회고하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다시 기억하여 간증합니다(행26:16-18). 삶에 마지막 순간에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평가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교회를 박해하던 일이 자신의 삶의 모토이고 모든 것이었던 사울은 새로이 거듭났고 이제부터 그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자신 전부를 걸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행20:24). 

바울의 삶은 전과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결박하여 잡아넣고 증오하던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바로 다메섹 교회의 지도자였던 아나니아 였습니다. 교회의 핍박에 선봉에 섰던 사울과 다메섹의 교회 지도자가 주의 한 몸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 만남을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행9:11-17). 그리고 이제 그 교제는 다메섹의 다른 제자들에게까지 확산됩니다(행9:19). 사울의 이름만 들으면 무서워 떨던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그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그 시간들이 믿기지 않았을 겁니다. 이들의 삶에서 앞으로 사울의 회심의 간증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간증이 될 것입니다. 놀라운 사랑의 교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듭난 사울의 삶이 전격적으로 바뀌는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9:20). 이 얼마나 믿기 힘든 장면입니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공문을 들고 예루살렘에서 한 걸음에 달려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가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사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회심한 바울은 어디로 갔습니까?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던 회당의 유대인들에게 찾아갔습니다. 이들에게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행9:22) 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분명히 구약 성경에 예언된 이 사람이 바로 나사렛 예수이고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셨다!라고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말했을 것입니다. 교회의 핍박자 사울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하고(행9:21) 그리고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행9:22). 사울의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새 영혼의 급진적인 변화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영으로 변화했습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고 난 이후에 이렇게 급진적인 삶의 변화가 있으십니까? 기도하십니까? 주님이 주신 사명에 온 삶을 걸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주 안에서 한 몸인 성도들과의 교제를 사모하십니까? 예수가 복음이심을 담대히 선포하십니까? 

또한 단순히 내가 구원받았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가 아닙니다. 정말 구원받았는지 우리가 판단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은 새 영혼에게는 구원의 열매, 즉, 성령의 열매가 열리기 때문입니다(갈5:22-23). 열매는 순식간에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보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우리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의 구원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내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죄 가운데에 빠져있습니까? 몸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고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찾아볼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죄를 멈추시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모든 죄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오는 만족과 기쁨이 결여된 상태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히12:2) 구원받은 영혼의 열매를 맺히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칸예 웨스트가 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미디어와 심지어 기독교 매체들도 칸예 웨스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칸예 웨스트라는 인물에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칸예의 개인 간증, 칸예의 사역, 칸예의 구원, 칸예의 개인사, 칸예의 노래, 칸예의 문제점. 모든 게 다 칸예 웨스트 중심이고 정작 메시지의 중심인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늘 두 번째인듯한 인상입니다. 하지만 왕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칸예 웨스트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칸예 웨스트가 아니라 바로 칸예 웨스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영원부터 계셨고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전능하신 분입니다(계1:8). 예수 그리스도는 만국으로 철장을 다스리실 분(시2:9). 전에 죽었으나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계1:19). 크고 흰 보좌에서 모든 죽은 자들을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분(계20:12).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19:16)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중심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나’ 중심의 삶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나의 문제, 나의 고난, 나의 야망, 나의 계획, 나의 가족, 나의 기쁨, 나의 관계, 나의 일, 나의 사역, 나의 생각 모든 게 전부 다 ‘나’ 중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중심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제일 먼저 채워진다면 그 다음의 모든 것들은 자연적으로 제 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하시면서 수많은 회심한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칸예 웨스트처럼 유명 인사들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조차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그저 이름 없는 ‘사마리아 여자’, ‘서른여덟 해 된 병자’, ‘음행중에 잡힌 여자’, ‘맹인 되었던 자’, ‘혈루증 앓던 여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이름 없는 회심한 영혼들을 사용하셔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왕이신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사울도 구원을 받자마자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했습니다. 회심한 이들의 드라마틱한 간증도 아름답지만 그들을 구원하신 왕께서 가장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왕이신 예수를 전파하십니까? 아니면 24시간 일주일을 오직 믿는 사람들과만 함께하며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칸예 웨스트의 ‘예수는 주’ 노래 가사처럼 모든 무릎이 무릎꿇고 모든 혀가 예수가 주라고 맹세하는 그날은 올 것입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과 족속에게 영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그 이름을 전파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의 왕이십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요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