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지금의 시국에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세 가지가 공감대

한국의 기독교 내부에서 지금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단연 정치라고 생각한다. 꼭 기독교인만 그런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매일 신문 기사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규모의 집회 사진에는 현 정부를 지지하는 무리와반대하는 무리가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둘 중 하나에 참여하거나 적어도 마음으로는 응원하는 기독교인들이 참 많이 있다. 특별히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에는 기독교단체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 함께 한다.

공산주의나 기독교 탄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지역 교회 안에 있는 어른들 입에서 흘러나온다. 교회 안 젊은세대 중 어떤 이들은 조용히 현 정부를 지지한다. 어른들과 말싸움하기도 싫고, 또 과거에 그런 정치 관련 논쟁으로 좋지 않은 경험도 있기에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혹 어른들이 현 정부에 대한 우려를 꺼내놓으면 할말은 많지만, 그냥 듣고 있다. 

한편 어른들은 현 정부의 명백한 문제를 보지 못하는 젊은 세대를 걱정한다. 전쟁과 가난을 경험하지 못했기때문에 저러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라의 안보와 안위를 걱정한다면 자기들과 뜻을 같이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젊은 세대는 국가 안보의 중요성 정도는 자신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부분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어른들의 일방통행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싫증 낸다.

“교회 안에서 정치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말라”라고 경고할 정도로 정치 이야기는 민감하다. 정치는 그 성격상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편을 나누고 상대방이 내 쪽을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따라 상대방의의견을 듣는 자세 자체가 달라진다. 구체적인 논점을 두고 얘기하기보다는 “그럼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말이야?”라는 식으로 전체를 싸잡아 평가하고 전체를 다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반대할 것인지 택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흘러가기 일쑤다. 정치인들이 서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뒤집어씌우는 프레임, “공산주의자”, “친미주의자”, “친일파”, “친중파”, “극좌파”, “극우파” 등을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며 대화가 마무리된다. “저 사람하고는 말이 전혀 안 통해”라는 불평과 함께 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치 관련 정보를 얻는 경로가 정해져 있고, 각각 주로 듣는 경로를 맹신하는 데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도로 말하지 않고 ‘이게 팩트다’라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에, 서로 정반대의 정보를가지고 결론이 나지 않을 싸움만 계속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둘 다 팩트라고 하는데 확인할 방법도 없고 그냥 말다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은 서로 다른 집회에 참여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다가 함께 만나서는 “정치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는 원칙을 가지고 입을 닫고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최선일까? 시국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커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인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고민이 깊어진다. 필자는 복잡하고 예민한 정치라는 문제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찾아 예리하고 정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어도 그리스도인이 공감대를 가지고 함께 힘써야 하는 부분을 찾아보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칼럼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쓸 수 있는 공감대를 찾아보기 원한다.

첫 번째 공감대: 모든 그리스도인은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논쟁을 싫어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주제에 관해 아예 말을 꺼내지 않거나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을 가장지혜로운 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어도 “모든 사람”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를 독려한다. 정치와 정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기도 제목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꼭 포함되어야 할 대상이다.

물론 기도의 내용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각각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책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의 목적은 같아야 한다.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저잘 먹고 잘살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핵심은 “모든 경건과 단정함”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국가를 잘 다스려서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평안하고 안정된 나라로 이끌어 주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부른다. 그들의 역할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것이다(롬 13:4). 물론 선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역자인 권세들은 선을 베푼다(롬 13:4). 당연히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사역자로서 권세들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부정과 부패를 허용하는 정책을 통과 시켜 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수많은 태아를 살해하는 법이 제정되기를 구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태초에 정립하신 성 정체성을 무너뜨리는법안이나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무시하고 쉽게 나누게 하는 법이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준에 따라자녀를 훈육할 권리를 빼앗는 정책이 시행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경건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권위를 위임받은 권세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로 나라를 이끌도록 간구해야한다.

집회 참석은 기독교인의 자유라 말하겠지만, 국가 지도자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세우거나 물러나게 하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기도가 먼저다. 실제로 경건한 삶을살 수 없도록 기독교를 탄압하는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그런 국가들도 적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강력한 정치 참여는 기도다. 하나님께서 정치를 통제하고 운영하시기 때문이다.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 “경건과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구하라.

두 번째 공감대: 모든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사도 바울의 이 편지를 받아든 로마 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위에 있는 권세 중 최고의 지도자가 악하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말년에는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씌워 많은 억울한 피를 흘리게 했던 작자가 아닌가.

하지만 바울은 아주 분명하게 말한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

이 말씀은 복종의 대상에 따라 다르게 대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마땅히 복종해야 할 대상에게 각각 상응하는 순종의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조세와 관세를 바치고 동시에 그들을 두려워하며 존경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분명한 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 가운데 조세나 관세를 떼어먹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만일 지금의 정부나 정치 지도자에 불만이 있어 조세나 관세처럼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등한시 하고 있다면 그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문제는 위에 있는 권세들을 마땅히 두려워하고 존경하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하고 벌금형을 내리기도 하는등 그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죄를 묻고 대가를 치르게 한 경우가 많다. 지금도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오랜 기간 갇혀 있는 상태다. 현직 대통령 역시 다음 대통령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물론 대통령이라고 해서 명백한 범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고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법의 판단과 적용과 별개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가에 있다.

최종 판결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이 아닌가. 하나님이 그들의 잘잘못을 땅 위의 심판자들보다 더 명명백백하게 밝히실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권세 아래 있는우리에게 하나님이 물으실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여러 가지 흉흉한 소문이 돈다고 해도, 실제로 논란이 되는 의혹이 쌓여있다 해도, 법이 판단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도록 하라.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으로 힘써야 할 일은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이명령하신 대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뒷말하지 말고, 깎아내리거나 상스럽게 부르지 말라(전직이든 현직이든).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금하지 않는 한 순종하라.

세 번째 공감대: 모든 그리스도인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슬픔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했다(시 90:10). 정말 날아가는 것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인생이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묘사하듯 인생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안개와 같다(약 4:14).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유한하고 짧은 인생을 헛된 것에 낭비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다. 시국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이더욱 힘써야 할 부분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격감하는 것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나라 없이 종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성경이 말하는 역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식민지 생활을 했을 때도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교회가 핍박을 받고 나라에서 쫓겨나고 제국 전체에서 미움받고 괄시받는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더 자라났다.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고백했는데(시90:4), 이와 거의 유사한 말씀을 베드로가 이렇게 전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구약과 신약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들으라. 지금 우리가 겪는 시국은 주가 약속하신 날을 조금도 변경하지 않았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드러나리로다(벧후 3:9-10)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진다는 말이다. 도둑 같이 주의 날이 올 때,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불타며 심판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모두 이 날을 깨어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베드로는 이렇게 묻는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벧후 3:11).

지금의 이 시국에 베드로가 교회에게 묻는 말이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이 시국 앞에 함께한마음으로 힘써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변 사람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은혜의 때, 구원받을 만한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들이 하늘과 땅이 불에 타서 사라질 때 함께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나라를 외치고 그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의 시국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현상은 많은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땅에 있는 나라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정치 참여를무조건적으로 반대하거나 지지할 생각은 없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적어도 공감하고 함께 힘써야 할 부분은 주님의 날을 기다리고 그것을 대비하는 것이 아닌가? 주의 날이 오늘 도래한다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다가 그분을 만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겠는가? 정치 관련 유투브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깊이 사모하며 경건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주 오심이 가까울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한 히브리서 기자는 무얼 더욱 그리하자고 말했는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자”고 말하지 않았는가?(히 10:24-25). 주 오심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더욱 그리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날 계수함을 배워 지혜로운 마음을 얻었는가?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가? 하늘과 땅과 함께 불태워질 영혼을 불쌍히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들이 다스리는 로마 제국에서 태어나셨다. 그 권세가 행하는 여러 가지 악한일과 선한 일을 자라면서 보고 듣고 실제로 경험하셨을 것이다. 때로는 그들이 행하는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셨지만, 예수님의 눈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그분의 뜻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손과 발은 항상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지금 시국에 우리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그분의 눈이 고정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눈도 고정되어 있는가? 그분의 손과 발이 머문 잃어버린 영혼에게우리의 손과 발이 머물러 있는가? 동시에 이 땅에서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하게 살게 해달라고하나님께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공의와 정의로 판단해 달라고 구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명령하신 순종과 존경을 보이고 있는가? 모세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 9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