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

* 이 글은 에릭 레이몬드(Erik Raymond)의 “Let’s Be Honest: Reasons Why We Don’t Read Our Bibles(우리 솔직히 대답해 봅시다: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들)”을 정리하며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것입니다.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blogs/erik-raymond/lets-be-honest-reasons-why-we-dont-read-our-bibles)

성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구원받은 자들 안에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거하시며(요 7:38-39; 롬 8:9; 엡 1:13) 친히 기록하신 진리의 말씀을(딤후 3:16; 벧후 1:20-21) 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고전 2:11-14)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더하신다(골 3:16-17; 엡 5:18-20).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 성장해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성령께서 하신다고 한다면, 그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내주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자, 그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경이 중요하고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성경을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면서 읽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해 에릭 레이몬드는 몇 가지 솔직한 이유를 제시한다.

레이몬드는 먼저 “바빠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바빠서 성경을 읽기 힘들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도 뉴스나 TV, 영화는 보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성경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 이 실제로는 더 바쁜 경우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쁘다”는 것은 어느 정도 현실은 될 수 있지만,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는 진짜 이유는 다섯 가지다.

  1. 성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2. 성경은 이해하기 어렵다.
  3. 성경 읽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4. 성경은 진부하고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5.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

한가지씩 함께 생각해보자.

1. 성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평안과 위로를 원하는데 성경은 우리를 대면한다(딤후 3:16).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한다. 이것이 불편해서 성경을 읽지 않으려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성도와 교제해본 적이 있다. 그는 말씀을 읽으면 그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데, 순종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어서 결국 죄책감만 커지니 차라리 성경을 읽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성경과 성경의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삶은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힘들고 불편한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멀리하려고 한다. 충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나에게 충고를 하는 사람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 편하고 좋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레이몬드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편하고 좋은 것이 정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입에 맛있는 음식만을 내가 원하는 만큼 항상 먹으면 건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의 단점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정말 안타깝고 불행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그 좋은 일을 하고 계신다.

말씀이 나를 대면하고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의 육신은 그것을 불편해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며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성경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화, 역사, 종교, 언어와 같은 장벽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 않으려 한다.

이 역시 사실이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친구의 문자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친구의 문자 메시지는 나에게 직접 보낸 것이기 때문에 큰 노력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맥락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나를 ‘위해’ 쓰인 것이 분명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에게’ 쓰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쓰인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당시의 역사와 상황은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레이몬드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라고 충고한다. 교회의 인도자들, 먼저 믿고 성숙한 성도들, 함께 공부할 사람들 등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것을 격려한다. 사실 오늘날처럼 그런 자원이 많은 시대가 없었다. 우리는 원하면 얼마든지 성경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어려우니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또 그래도 별로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성경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은 그러니까 “읽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노력은 혼자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교회에 ‘가르침’의 은사를 주셨다. 교회를 통해 올바른 가르침과 지도를 받아 제대로 배워야 한다. 그 안에는 분명 자라는 기쁨이 있다.

3. 성경 읽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성경을 읽는 것도 의도적으로 훈련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성경 읽기를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 물론 기쁨으로 성경을 항상 읽고 싶어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부터 펴고, 하루를 지내면서도 언제 또 성경을 읽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한 구절 두 구절씩 읽는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훈련하는 운동 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성경 읽기를 훈련할 필요가 있다. 성경을 읽고 싶어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인식하고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도 읽는 것이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이 필요하고 습관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교회에 잘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성경을 자연스럽게 대하게 되기는 한다. 설교나 교회의 교육에 잘 참여하는 것이 특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스스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남이 잘 차려준 음식을 일주일에 한두 번 먹으면 평소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어린아이들에게 (사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식습관이 필요하기에 부모가 훈련하는 것처럼, 이 귀한 영의 양식을 균형 있게 꾸준히 섭취하려는 훈련이 거듭난 자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4. 성경은 진부하고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내 삶과는 거리가 멀어서 새롭거나 흥미롭지 않으니 성경을 읽을 이유도 없다.

레이몬드는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문제를 더 드러낸다고 말한다. 성경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고(히 4:12-13)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는데 나에게 성경이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경우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을 수 있다. 항상 읽던 말씀만 읽고 듣던 말씀만 듣다 보면 성경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어쩌면 그 이미 읽고 들었던 말씀도 삶에서 살아내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레이몬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에 정복되기까지 성경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책일 뿐 우리 하나님에 대한 책이 되지 못한다.” 진리의 말씀을 더 알려고 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성경은 절대 진부하거나 생명력 없이 다가오지 않는다.

성경은 소설과 같은 재미가 있는 책이 아니다. 당연히 글 자체로서의 재미나 흥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준다.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해준다. 어떻게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단순히 글로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글을 읽는 나에게 직접 역사하셔서 오늘을 살아가게 하신다. 소설은 상상을 요구하지만, 성경은 삶을 요구한다. 이런 책이 어떻게 진부하고 생명력이 없을 수 있겠는가.

5.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 떨어져 지내던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가 왔는데 그 편지를 읽지도 않고 한구석에 둔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과 말씀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성경을 읽지 않고 읽고 싶은 마음도 없다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애초에 나는 정말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는가? 즉 정말로 구원을 받은 것인지 정직하게 대답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다 용서해주신 것을 믿는데?”라고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 뿐일 수 있다. 정말 믿었다면 그는 구원받은 자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요일 1:3).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음성을 듣기를 사모한다(요 10:3-5, 27; 벧전 2:2).

하나님과 믿는 자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믿는 자가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랑의 관계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경고등이 된다. 애초에 그런 관계가 없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현재 사랑을 회복해야 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 어떤 죄가 이 관계에 문제를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상황에 있을 수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아뢰고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실 것이다.

아마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는 레이몬드가 언급한 5가지 외에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성경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를 더 찾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성경을 읽자. 우리가 여러 가지로 바쁘고 힘들고 지쳐있는 것은 사실이다. 신경 쓸 것들도 많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런 모든 것들보다 정말 덜 중요한가? 덜 가치 있는가? 덜 유익한가? 덜 흥미로운가? 덜 의미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더 가까이 두자. 그래야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한다.

시 19:7-10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