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그리스도인

최근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를 둘러싸고 큰 정치적 혼란에 싸여 있다고 한다. 이 어지러운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런던에서 목회하고 있는 내 친구 톰 드리온(Tom Drion) 목사의 설교를 우연히 들었다. 

영국과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한국 정치도 심한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이 글의 내용은 대부분 톰 목사의 설교를 요약해서 사용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정치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다. 실제로 나는 전염병을 피하듯이 정치적인 글을 피해 왔지만, 오늘 나는 예외를 만들려고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몇 주간 우리는 한국 정치가 원자로의 안전장치가 제거되어 핵 물질이 흘러나오는 것과 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 체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딤후 3:12). 

그리스도인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불신자에게 소망을 둘 수 있을까? 바울은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디모데후서 3:13)

정치인들이 아무리 악한 일을 벌인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놀랄 필요가 없다. 세상은 참 나쁘지만, 점점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정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정치적 사건들을 접하게 되든지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면에서 준비가 되어야 한다. 

1. 참된 소망은 민주주의에 있지 않다.

사탄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자신에게 있으며,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다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님에게 자신을 예배하면 세상의 왕국을 다 주겠다고 말했다(눅 4:5-6).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사탄은 “이 세상의 신”(고후 4:4)과 “이 세상의 임금”(요12:31)이다. 이 사탄이 미래에 “짐승에게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 13:2)

계시록 말씀은 사탄인 용이 권세와 보좌와 큰 권세를 가지고 활동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세상 정치는 성경에 따르면 이 나쁜 방향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날에 “불법의 사람”(살후 2:3)으로 불리는 적 그리스도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놀랄 필요는 없다. 사탄은 절대로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사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악한 세상의 배후를 조종하고 있다. “불법의 비밀”(살후 2:7)은 이미 이 세상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영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건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법을 어기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파렴치한 거짓말과 범법 행위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배후에 있는 “세상의 주관자들”이 “악한 영들”이고(엡 6:12), 그 대표는 “거짓의 아비”(요 8:44)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 제도가 악마의 힘을 막을 수 있는 진정한 방어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도 요한은 이미 적 그리스도의 영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당신은 진정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이러한 악마의 힘에 대한 적절한 방어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선출했지만, 그들이 여전히 자신의 죄로 죽어있는 한, 그들은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 불순종의 아들들”(엡 2:2)일 뿐이다.

우리가 믿고 선택할 수 있는 경건한 지도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민주주의는 정말 위대한 제도가 될 수 있을까?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제도 아래 그 경건한 지도자가 선출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다. 쉽게 말하면 도덕적 가치보다 도덕적 자유를 선호하는 시민들이 거룩한 기준을 고수하는 경건한 지도자를 선택하겠냐는 것이다. 또한 대중의 생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여론이 과연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지도자에게 우호적이겠냐는 것이다. 

가령 성경적으로 낙태죄 유지와 동성애 처벌을 지지하는 후보가 지금의 여론과 유권자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만일 기독교 정신에 투철한 후보가 자신의 견해를 알린다면, 그 순간 언론이나 일단의 과격한 세상 사람들은 미친 듯이 그 사람을 공격하여 그의 당선을 막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는” (엡 2:2)사람들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 살고 있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끊임없이 실망하고 싶지 않다면 민주주의에 참된 소망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주의를 버려야 할까?

2. 하나님은 현재 민주주의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법치 아래 존재하며 민주주의는 법치 안에 지켜지고 있다. 로마서 13장 1절은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진 법에 따르면 권력을 가진 위정자도 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도 역시 감옥에 갈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법을 어기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법이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요구하는 직접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우리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예를 들어 동성애나 낙태 등의 성경 말씀을 거역하는 법안들).


우리는 심지어 정부가 악의적인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더라도 그들의 정책과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가끔 “나는 아기를 낙태하기 위해 내 돈을 사용하는 정부를 위해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정부를 위해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등의 부도덕한 활동과 얽힐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 황제는 네로였다. 네로에게 바쳐진 세금으로 로마 정부는 온갖 부도덕한 일, 심지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에도 사용하던 때였다. 

같은 시기에 사도 베드로는 네로의 박해가 로마로부터 소아시아로 손을 뻗쳐 올 때, 소아시아의 기독교인들에게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벧전2:13-14)”에게 하라고 촉구했다.

그리스도인은 적절한 법적 절차에 불법적으로 저항하거나 반항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우리의 야망이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도 법으로 규정된 정치적 절차를 무시하고 우회할 권리는 없다. 모든 정부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이기 때문에 우리는 적절한 법적 절차에 따라 의견을 낼 수 있지만, 불법적으로 반항하려는 시도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롬13:1). 

사도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롬 13:2-5).


민주주의에 중대한 문제가 있더라도 민주주의 절차를 우회할 권리는 없다.
만일 여러분이 위에서 말한 정당한 권리를 얻지 못한 경우라면 이는 민주주의가 망했기 때문이다. 정치가 망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타락해서 법률 제도조차 망가졌기 때문이다. 종종 반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생각하지만 유토피아는 없다. 부패한 이념이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정치가들이 추구하는 정책은 부패한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말라! 사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권리조차 없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우리의 통치 권한의 일부이며, 우리는 법으로 정해진 “권위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롬 13:1).

우리는 민주주의에 참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법을 무시하는 위정자들에게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렇지만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한 시위가 흔히 법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날 경우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부패한 권력에 대항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적인 시위에 참여해서는 안 되며, 법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난 불법적인 수단으로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시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러한 나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최종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우리는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이 법은 우리를 지배하는 권위이며 이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는 사람들, 지금의 정부에 반대하는 정당이나 세력이 불법한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려고 시도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그들의 목적이 고귀하게 보여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운동에 가담해서도 안 되고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제도하에 있는 우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부패한 정부를 바꿀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우리에게는 국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방법이 있다.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헌법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 있는 것을 감사하며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동성애를 지지하는 버락 오바마와 몰몬교 신자인 롬니 주지사 중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조언하는 것을 들었다. 

“버락 오바마는 4년 안에 미국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나라로 만들 수 있지만, 롬니는 절대 미국을 몰몬교 국가로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투표로 선과 악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심한 악과 덜 심한 악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두 악이 싫어서 자기 양심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 나는 그들의 양심에 따른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를 택하는 데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의 선택이 나쁜 악에 유리한 것이라면 그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지 않을까?  

이 모든 일에 앞서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 도구는 바로 기도다.

우리는 정부에 복종하지만, 활동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중보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디모데 전서 2:1-2).

잊지 말라! 정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부패하는 정부의 관리들을 위해서 또 그들을 지지하는 정당을 위해서, 그리고 부패한 정부에 대항하여 자기주장을 펼치는 반대편 정당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어떤 악한 세력의 손길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신 하나님께 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 참여이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21:1).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정부에 복종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는 것이 곧 악이 활개를 치는데 마냥 침묵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불법한 정치에 침묵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절대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최선의 제도인 민주주의 제도 아래 사는 시민으로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Grace to Korea 창립자.
그레이스 성경교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