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유산(3): 어떻게 천국을 기다리나?

This entry is part 3 of 5 in the series 신자의 유산

우리의 영원한 유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분성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유지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을 때 그러하다. 우리들의 이기적이고 순간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은 영원한 유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광고 매체들은 우리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지금 당장 가질 수 있다고 선전하면서 우리들의 이러한 생각을 부추긴다. 물론 “모든 것을 가진다”는 것은 보통 그들이 팔고 있는 어떤 상품이든 신용카드로 구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사고를 꾸준히 받아들인 결과로 우리 사회는 방종과 조급함으로 비둔해 졌다. 사람들은 모든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면 제대로 삶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불편함이나 어려움이나 불의나 모자라는 것이라도 당장 없애기를 원한다.

성경은 두 가지의 혁명적인 개념으로 이러한 생각에 대응한다. 그 두 가지의 개념은 신령한 마음가짐과 만족의 지연이다. 신령한 마음가짐이란 우리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세상이 제공하는 것으로부터 눈을 돌려 우리의 만족을 위한 충분하게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최우선 순위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이다(마 6:33). 바울이 우리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자 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이다(골 3:2). 또한, 요한의 “이 세상이나 세상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 의미이다(요일 2:15).

만족의 지연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에 따른다는 것으로 인내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성취될 것이며, 그의 의와 권위는 충분히 실현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성도들은 충분히 변호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어려움은 이 땅에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일시적인 상황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표와 시간표를 무시하는 “해결책”을 제안하는 사람들에게 급하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령님은 박해받는 신자들을 이렇게 격려한다.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7–8).

나는 야고보의 편지를 받은 이 귀한 성도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공의로 다스리시기를 간절히 갈망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인내하고 마음을 굳건히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기르기를 원하셨다. 그것들은 그들이 직면했던 어려움과 부당함을 즉각적으로 덜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를 원하셨지만, 하나님 자신의 때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다.

신령한 마음가짐으로 견디는 인내는 우리의 일시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영원한 유산을 고대하는 것을 내포한다. 베드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시련과 박해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쓰인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그 원리를 설명했다.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불태웠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웠고, 그 결과로 생긴 박해는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이 사는 소아시아까지 뻗쳐오고 있었다. 성도들이 현재의 어려움보다 그들의 영원한 기업에 초점을 맞추도록 돕기 위해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 그리고 우리에게 –  세가지의 권면의 말을 전했다.

부르심을기억하라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벧전 2:9) 그래서 우리는 사탄의 사악한 세계와 대립하고 있으며 그의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해의 위협에 놀라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1-23)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말라. 

찬양하며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압력에 머리를 숙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벧전1:3–5에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나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 1:3-5) 

3절의 본동사는”be”는 “찬송하리로다(Blessed be the God)”는 진술이라기 보다 함축된 의미이다. 이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아버지를 찬송하라”라고 번역될 수 있다. 요컨대 그 말의 의미는”하나님을 찬송하라”라는 뜻인데, 이는 송영인 동시에 명령이다. 

베드로가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죄악이 얼마나 깊은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천국의 기쁨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구원의 은혜로 완벽하고 끊임없이 찬양하는 우리의 능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구원받은 자의 노래는 영원토록 우리 입술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감동 없이 너무나 익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베드로의 말은 그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우리의 영원한 유산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어떤 일시적 상황에 상관없이 우리 마음의 끊임없는 표현이어야 한다.

당신의 유업을 기억하라

우리의 유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시련 속에서 기쁨을 경험하는 중요한 열쇠다. 우리가 받을 유업의 풍요로움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만(벧전 1:1), 천국의 시민이며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일시적인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은 우리의 불멸의 영원한 유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Adapted from Our Sufficiency in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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