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에서 영혼을 구하라

약 5:19-20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최근 미국의 한 유명한 목사가 아내와의 이혼을 발표하며 자신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한국에서는 <노 데이팅>이란 책으로 유명한 조슈아 해리스는 이미 전에 그의 책에서 주장했던 핵심 사상에 자신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의 책으로 인해 고민하고 고통받았던 젊은이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었다. 그는 자신이 주장했던 성경적 가치관을 떠났고, 그 가치관에 따라 만났던 아내를 떠났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가치관을 가지게 했던 그리스도를 떠난 것이다.

조슈아 해리스는 영향력 있는 저자이자 목사였기 때문에 그의 “이탈”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믿음을 떠나는 자들을 보게 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존 맥아더 목사가 흔히 말하는 “주재권 구원”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도 조슈아 해리스처럼 믿음을 떠난 (하지만 여전히 구원은 받았다고 주장했던) 그의 친구가 계기가 되었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오래 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함께 주님을 섬겼지만 더 이상 믿음 안에 있지 않은 친구들이 한둘씩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음을 떠난 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이 믿음을 떠난 것이 확실하다면, 구원받은 자가 구원을 잃을 수 없다는 성경적 전제(요 10:27-29; 롬 8:29-30; 엡 1:13-14; 히 9:12 등) 위에서는 한가지 가능한 설명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자신도 몰랐거나 혹은 자신은 알았지만 어떤 이유로 속여왔다가 지금에 와서 구원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주여 주여 하지만 예수님은 모르는 자들”(마 7:21-23)이 여기에 속한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까지 행했던 자들이었다. 아마 그들 스스로나 그들 주변의 사람들 모두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판결에 따르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서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마 7:23). 요한이 말한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요일 2:19)도 마찬가지다.

히브리서의 저자도 이런 사람들을 언급하며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한다.

히 6:4-6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4절과 5절 말씀은 신자에 대한 묘사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표현이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매우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경우다. 그러고 나서 믿음을 버리고 떠난 자들이 회개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만약 믿음을 고백했던 누군가가 믿음을 떠나 분명하게 믿음 없음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적군보다 더 나쁜 것이 배신자니, 비난하며 처절하게 응징해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우리의 반응은 두 가지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앞서 언급한 본문에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히 6:9-12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믿음을 떠난 자들에 대해 말한 것은 그들을 비난하게하고 멀리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한 경우를 교훈으로 삼아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고 “게으르지 아니하고”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즉,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은 구원의 확신과 자기 점검을 둘 다 말한다. 바울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구원에 대해 확신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확신은 자기 점검을 통해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또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도 말했다. 받은 구원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 줄로 생각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불순종으로 멸망한 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사실 선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악을 즐겨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음행하는 자, 주를 시험하는 자, 원망하는 자들(고전 10:6-10)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것이고 그것이 불순종으로 드러났다.

오늘날 이 땅의 보이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땅의 교회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는 실제로 선 자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는다(벧후 1:10). 어떻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수 있는가? 참된 열매 맺는 삶이 그 비결이다. 구원의 확신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떠난 자들을 보게 된다면, 나는 성경적 기준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자인지를 돌아보고 더욱 그런 믿음을 가진 자답게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떠난 자에 대한 나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 기록한 야고보서의 말씀이 바로 그 책임에 대한 말씀이다. 야고보는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 진리를 떠난 삶을 사는 사람, 죄인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쩌면 스스로 교회를 떠났을 수도 있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거룩을 위하여 출교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만약 교회 안에서 큰 문제를 일으켰다면 이들을 좋게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떠난 것이 잘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지옥에서 심판받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구원이 필요한 죄인으로 봐야 한다. 우리가 구원이 필요한 다른 영혼들을 위해 긍휼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이렇게 믿음을 떠난 자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과거에 그들이 어떠했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그들이 현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현재 그들이 말 과/이나 삶으로 믿음을 부인하고 있다면 현재 그들은 회개가 필요한 죄인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돌아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큰 책임이자 특권이다. 우리가 스스로 회개하여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회개하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도 우리는 하지 못한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적에 우리를 동참시키신다. 우리는 기꺼이 이 거룩한 책임과 특권에 함께 해야 한다. 어쩌면 그 대상이 나에게 너무나 큰 아픔과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그냥 그렇게 자신이 행한 죄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떠난 자들이 돌아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한 영혼을 사망에서 구할 수 있다.

한 영혼이 진리 가운데 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요삼 1:4). 반대로 한 영혼이 진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나 과거에 그가 주의 이름으로 했던 많은 말과 행함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아직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한 그가 완전히 진리를 떠났다고 우리가 결정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최종 재판관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기회가 있기에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하는 일이다.

처음에 언급했던 조슈아 해리스와 가까이 교제했었던 복음 연합(The Gospel Coalition)의 케빈 드영, 그렉 길버트 등은 해리스의 이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친구(조슈아 해리스)가 자신이 선포했던 복음, 확증했던 성경,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던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큰 기쁨이 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다. 혹 내 주변에 그렇게 믿음을 떠난 사람이 있다면, 그냥 이제 상황이 그렇게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라. 아직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부르시기 전까지는 기회가 있다. 아직은 그를 돌아서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전과 같지 않은 큰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망에서 그의 영혼을 구하라.

Grace to Korea 의 자문 목회자,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