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멈추십시오. (1부) -그리고 주의 보좌로 나아가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1)

젊고 혈기가 왕성했던 청년 사울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는 길목에서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마주했습니다. 초대 교회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교회의 박해와 핍박의 중심에 있었던 엘리트 바리새인 사울에게 부활하신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직접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5)

사울이 쌓아왔던 모든 것, 자기 의,자신의 신념, 종교, 모든 열심,이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긍휼로 말미암아 사울의 죽은 영혼이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은혜로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신 사울을 구원으로 부르신 순간입니다(갈1: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울을 완전히 격리하셨습니다.정오의 해보다 밝은(행26:13)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울은 사람들 손에 이끌려 시내로 들어가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행9:8-9). 사울이 사흘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그렇습니다.사울은 온 마음으로 집중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3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믿음의 시스템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세팅되는 과정이었습니다.율법의 의로는 완벽하다고 자신했던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은 철저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지금까지 잘못된 열심으로 해왔던 교회를 향한 박해를 되새기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왔겠습니까?바울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것입니다.또한 주님으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사랑도 있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바울의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새로 설정되는 순간입니다. 바울이 구원을 받자마자 처음 경험한 이 모든 것은 바로 기도를 통한 천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삼위 하나님과의 놀라운 교제였습니다.

천로역정으로 우리에게 유명한 존 번연은 자신의 마지막 설교에서 새로이 거듭난 영혼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으며 울부짖는 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처음 하는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울부짖는 것입니다.만약 아기가 울지 않는다면 의사들은 아기가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압니다. 만약 당신이 울부짖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죄의 구덩이와 어둠의 던전에서 일으키셨을 때 당신은 하나님께 이렇게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기도를 멈추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이 음식 먹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떤 사람의 식사기도입니다.이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식사 전에는 항상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매번 똑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는 너무 습관이 되어서 밥 먹기 전에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소풍을 가서 밥을 먹을 때 친구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창피했지만 기도는 꼭 해야 했기에 일부로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재빨리 속사포로 중얼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음식 먹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아! 이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겠지. 

여러분은 아마 이 같은 경험은 없으실지라도 기도가 일상적인 틀이나 습관처럼 되어버리는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교회에서 무념무상으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외웁니다.그리고 개인 묵상 시간이나 성경공부 시간에 혹은 가족 모임, 중보기도 모임에서 드리는 기도가, 그냥 기도를 해야 하니까 너무 형식적이 돼버리거나 의미 없는 의식처럼 돼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더한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위시 리스트를 하나님께 나열합니다.물론 우리의 필요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하지만, 때로는 기도로 나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내 앞의 당장의 어려움,육신적인 열망, 욕심, 이 땅에서의 안락함 편안함만 구합니다.  

이 같은 기도는 양방향 기도가 아니라 일방향 기도입니다.그리고 습관처럼 형식적으로 내뱉는 의미 없는 기도 또한 일방향 기도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기도입니다. 나의 기도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허공에 날아가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여러분,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그런 기도를 멈추십시오!

기도 –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

앞서 사도 바울이 회심 후에 삼일 동안 기도한 예를 통해서 보았듯이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교제(communion)입니다. 또한 기도는 새로이 거듭난 피조물의 자연스러운 열망입니다.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입니다. 또한 호흡입니다(살전5:16). 우리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합당한 분이십니다.그분의 이름의 합당한 영광을 기도로써 올려드리며(시96:7-9) 또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롬1:21). 

임마누엘(마1:23)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지만 기도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계시록 4장 천국의 계시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가심으로 여러분과 저의 기도 생활이 더욱 깊어지며 우리의 기도가 더욱더 하나님을 영광을 높이기를 소망합니다.   

요한 계시록 4장 – 하늘에 열린 문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4:1)

로마의 대대적인 기독교 핍박으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요21:20)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요한의 육신은 완전히 노쇠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열한 사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서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이 아직까지 이 땅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계시(계1:1)를 받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기록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계시록 2-3장은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서신입니다. 그리고 ‘이 일 후에’(4:1)장면은 이 땅의 교회에서 하늘로 옮겨집니다. 하늘의 문이 완전히 열리고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우레와 같은 권위의 소리로 바울에게 명령하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것은 계시록 1장에서 요한이 마주했던 부활하여 영화롭게 지극히 높여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입니다(계1:10).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이제 요한은 천국으로 들려올려지고 제일 먼저 요한의 이목을 완전히 사로잡은 장면은 바로 천국의 보좌입니다!천국의 모든 계시가 이 보좌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1. 보좌 위 – 좌정 하신 분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계4:2-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어디에나 편재하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이나 온 우주의 어떤 것도 하나님을 제약하거나 담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 사실을 아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은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하늘과’ 심지어 ‘하늘들의 하늘이라도’주 하나님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심지어 그의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139:8).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 

하지만 성경은 계속해서 천국(하늘, heaven)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는 장소, 절대 주권자의 주권이 실행되는 장소,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장소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천국도 광대하신 하나님을 담을 수는 없지만 위와 같은 관점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천국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신26:15, 사57:15,사63:15, 시33:13-14, 마5:16,마10:32-33).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

사도 요한도 계시록 4장에서 주의 거룩한 처소인 천국으로 들려올려짐을 받았습니다. 2절에 보시면, ‘보라!’요한은 무언가에 압도 당했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마주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의 보좌입니다.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는 하늘 보좌를 새로이 놓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원어의 문법상으로 이 보좌는 계속해서 천국에 이미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동 번역이나 한글 킹 제임스 번역은, ‘하늘에는 한 옥좌가 있고,’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있고’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압도당한 요한은 이어서 그 위에 좌정하신 분을 목격합니다.그렇다면 보좌에 앉으신 분은 누구십니까? 이 보좌에 앉으신 이는 의심할 나위 없이 선지자 이사야가 동일하게 목격한 바로 그분 바로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사6:1). 성경에서 하늘의 보좌는 항상 하나님의 불변하는 통치, 절대적인 주권을 상징합니다.또한 ‘앉으신 이’로 묘사되는 이 장면은 곧 심판을 집행하실 집행관으로서의 위엄과 존엄을 계시해 줍니다.

요한은 ‘앉으신 이의 모양’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모양이나 형체가 없으십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마주한 것 같이 광채가 사방으로 불같이 나는 보좌 위의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겔1:26-28)은 사람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겔1:28)입니다. 요한 또한 이 영광의 형상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서 인간의 언어와 사물로 묘사합니다. 

“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4:3) 벽옥(jasper)과 홍보석(carnelian)은 구약 때 대제사장의 흉패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을 상징하며 부착되어 있던 보석이고(출28:17,20) 새 하늘과 새 땅,새 예루살렘 도성의 기초석들로도 언급됩니다(계21:19-20). 그러므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언약을 상징할 수도 있으며 고운 푸른 빛깔이 나는 벽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붉은빛이 나는 홍보석은 하나님의 진노,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또 무지개는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언약, 자비, 긍휼을 상징하며 녹보석(emerald)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모양을 묘사하는 이 보석들이 상징하는 것들은 모두 추측이지만 보좌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사도 요한의 언어를 통해서 깊이 묵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사도 요한이 경험한 이 천국의 보좌의 모습은 어떤 편안함이나 위로가 아닙니다. 곧 이루어질 온 인류를 향한 심판을 집행하실 심판관의 압도적인 위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그분의 절대적 주권을 상징하는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계4:5)뿜어져 나옵니다. 

2. 보좌의 주위 – 이십사 장로, 하나님의 일곱 영, 유리 바다,네 생물 

“4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계4:4-6)

이제 요한의 시선은 보좌의 주위를 둘러싼 장면들에 집중됩니다.

이십사 장로– 보좌의 주위를 둘려 또 다른 이십사 보좌가 보입니다. 그 보좌 위에는 각각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은’ 스물네 명의 장로들이 보입니다. 이들이 누군가에 대한 수많은 견해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공의의 거룩한 옷을 입고 보좌 위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계2:26, 3:21, 롬8:17-18), 바로 대환란 전, 휴거 된(살전4:13-17) 교회일 가능성이 가장 커보입니다. 성경에서 24는 그룹을 대표하는 숫자로 쓰입니다(제사장의 24반열 등, 대상24:1-19). 24장로들은 휴거 된 모든 교회의 성도를 대표하는 장로들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 – 계시록1:4에도 언급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영은 항상 일곱으로 묘사됩니다.일곱은 성경에서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온전한 충만하심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신 모습입니다. 이것은 또한 마치 구약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를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놓여있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앞 왼쪽에는 항상 일곱 가지를 가진 등불이 놓여 있어 불을 밝혔기 때문입니다.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존전을 환히 밝히고 계십니다. 

유리 바다 – 천국에 물이 없는 것(계21:1)을 고려하면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유리 바다와 같이 찬란히 투명하고 빛나는 수정과 같은 것이 보좌 앞에 놓여있습니다. 역시 성결하고 깨끗하고 고결한 하나님의 속성과 동시에 계시록 마지막에 계시된 새 하늘 새 땅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계21:10-11, 18). 

네 생물 – 이 놀라운 네 생물은 다름 아닌 에스겔 선지자도 보았던 바로 그룹들(겔1:4-25, 10:15), 즉 천사들입니다.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겔10:14)이 구별된 천사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보좌 가운데와 주위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수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의 형상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랍습니다(계4:7-8a). 

지면상 모두를 자세히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천국의 보좌와 그 주위의 모습은 압도적인 광경입니다. 이제 요한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3. 보좌를 향한 찬송과 경배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보좌를 향한 놀라운 외침이 들립니다.보좌 위에 좌정하신 절대 주이신 하나님을 향한 경배입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돌립니다. 먼저 네 생물이 먼저 외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계4:8b).

이들은 ‘밤 낮으로 쉬지’않습니다. 이 천사들의 존재의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한 것은 찬미 중의 최상급의 찬미를 나타냅니다.하나님의 무한하신 거룩하심을 최상급의 표현으로 높여서 찬양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계시록 5장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만만 천사의 무리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합니다(계5:11). 그리고 이제 이십사 장로도“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계4:10)예배에 동참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놀라운 광경입니다. 놀라운 절대 보좌와 그 주위의 장면들 그리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미까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보좌에 나아간다고 머릿속에 그려보십시오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이 보좌에 여러분이 나아왔다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누구라도 압도할만한 이 광대한 광경 앞에 그리고 절대자의 보좌 앞에서 여러분의 입에서 처음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어떤 말이 나올 것 같습니까? 바로 그 말이여러분이 기도할 때 제일 처음 나와야 하는 단어입니다.

맺음말

지금까지 하나님의 보좌를 자세히 계시한 계시록 4장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구약 시대 때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시는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 밖에 없었습니다.대제사장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형식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공로에 의해서 이제 거룩한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을 가로막았던 휘장이 둘로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우리는 아무 제약 없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좌의 모습을 묵상한 것은 단지 하나의 예일뿐입니다.아무나 보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보좌에 함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은 바로 그리스도를 오직 유일한 의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요14:6). 여러분 복음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이제는 아무 의미 없고 형식적인 일 방향 기도에서 벗어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떠신 분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나의 기도의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 기도하기 전에 잠시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온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히 채우십시오(골3:16).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면 알수록 여러분의 기도와 예배가 비례해서 깊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와 보좌는 두려운 것입니다.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그렇습니다. 우리를 하늘 우편에서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놀라우신 절대자의 보좌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첫 마디를 내뱉을 수 있습니다.

“아바, 아버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다음 회에는 “기도를 멈추십시오 part 2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