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2): 좁은 문을 넓은 문의로 바꾸는 작업

This entry is part 3 of 6 in the series 다른 이름

다른 이름은 없다(2)

복음을 너무 축소함으로 발생한 모호한 생각들(복음에 대해)이 오늘날 교회를 사로잡았다. 특히, 세상에서 유명한 성도가 자신의 믿음을 “매우 사적인 것”이라 이야기할 때, 이러한 현상을 종종 목격한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의 믿음이” 지극히 사적인”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기독교 신앙이 아닐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만들어 낸 그런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믿음은 되려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와 죄 사함에 대한 접근을 막는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마태 10:32). 만약, 당신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을 주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예수께서 당신의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계시다 확신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당신이 아직 복음을 믿지 않고 있다는 간접증거일 수 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결코 감춰져서도, 그리고 감출 수도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가장 드러내야 할 당신의 뚜렷한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의 좁은 문과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는 길을 더 쉽고 더 넓게 만들려 한다. 오늘날 유행하는” 자연신학 naturalal theology” 사상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신적인 계시 또는 형식적인 종교에서 벗어나, 자신 스스로가 신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성경 말씀 없이도 자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고, 성경적 믿음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이론은 자연스레 지금의 다원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세계의 모든 거짓 종교 체계를 기독교 복음과 동등한 기반 위에 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배타성(예수님만이 길)을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천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12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3만 명 이상의 군중 앞에서, 그는 “복음은 우리에게 영혼의 가난함, 마음의 청렴함, 삶에 대한 고난을 사랑으로 견뎌낸 자들이 주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을 가르쳐 주는 메시지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가톨릭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Natural Theology)은 심지어“행위 구원론”을 내세우는 가톨릭 시스템마저 무효화 시킨다. 만약, 이교도들이 단지 선하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로마 교황을 포함한 로마 교회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의식 또한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 피터 크립트(로마가톨릭 신자이기도 한)는 저서’ Ecumenical Jihad’에서 가톨릭,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도, 심지어 무신론자까지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려 한다면 누구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큰 충격은 J.I. Packer와 CharlesColson 과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피터 크립토의 이러한 이단 사상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구원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믿음들이 오늘날 교회를 침범하여 장악했다. 1997년에 TV 프로그램인’ Hour of Power’에서, 텔레비전 진행자 로버트 슐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복음 전도사 빌리 그레이엄을 인터뷰했다. 아랫글이 그들의 대화를 발췌한 부분이다.

그레이엄: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거나 혹은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온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즉 위대하고 전면적인 거듭남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이름을 위해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시다.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다. 그들이 이슬람 세계에서 왔던지 또는 불교 세계, 그리고 기독교 세계, 아니면 믿지 않는 세계로부터 왔던지 간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 된 사람들이다. 그들 중 예수님의 이름조차 모를지언정, 자신에게 무언가 없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고, 자신에게 내재한 유일한 빛으로 돌아선다면, 나는 그들이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우리와 함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슐러: “내가 당신의 발언을 다시 정리하자면, 비록 어떤 이들이 어둠 가운데 태어나서(죄 가운데) 성경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삶에 들어요 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정확히 이해한 것이 맞는가?”

그레이엄: “맞아. 난 그렇게 믿어. 나는 세계 각지의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그들은 성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마음속으로 신이 있다고 믿었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회와는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어.”

슐러: 그거 굉장하군!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됐어. 주님의 그 넓으신 자비가 나타났기 때문이지. 

그레이엄: “그럼, 완전히그렇지.” [2]

주님의 자비 속에 있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클라크 피녹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종교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비판이 아닌 감사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독교적 전통 사상이 이러한 생각을 방해한다. 이에 대해 맥 스워렌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느 나라에서든 그리고 어느 때에든지 증인 없이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기독교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다가갈 때,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말씀해 오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만남에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이해를 발견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 다른 종교에 접근할 때 해야 할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우리의 고정 관념을 벗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꿈이 짓밟혀 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 버릴지도 모른다.[3]

피녹은 그리스도의 배타성에 대한 그의 얕은 관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방법으로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계시다.”[4]

이러한 견해는 또한 레이몬 파니카의 책에– “힌두교의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 ”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괴한 제목의 책 –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책에서 파니카는 “선하고 진실한 힌두교뿐만 아니라 선하고 진실한 기독교도 모두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는다. 이는 그 자체로 힌두교나 기독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제사를 통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두 종교 내에 존재하는 성례 의식을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5]

이러한 일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복음이 너무 좁다고 믿는 목회자와 복음주의 지도자에게는 성경적 종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대신에, 그들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다른 문을 알아내려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내부로부터의 끊임없는 공격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배타성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단적 사상은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포용력이 지배적인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진리에 도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주장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더욱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대 진리를 거부하는 문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대한 이러한 공격에 대답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https-//www.gty.org/library/blog/B180912

다른 이름(3): 정죄의 메시지 다른 이름(4): 미련한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