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여, 기도의 힘을 믿는가?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고, 또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기도하면 뭔가 달라지긴 하는 거야?”, “기도하면 정말 이루어져?” 이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는가?

열심히 기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답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기도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고 대답하기도 힘들다. “환경은 바꾸지 않으시지만 나를 바꿔주신다”는 말도 그렇게 흡족한 대답이 아니다. 그럼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기도엔 정말 힘이 있는가? 아니면 힘이 없는가? 기도하면 확실히 뭔가 달라지는가? 아니면 하나도 변하는 것이 없는가?

오늘 본문 말씀인 야고보서 5장 16절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대답이 적혀 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b)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이다. 의인의 기도엔 힘이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 의인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위 ‘기도발’이 것이 생겼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 바로 뒤에 야고보가 예로 들은 엘리야를 보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7~18)

야고보는 엘리야가 대단한 사람 즉 기도발이 엄청난 능력자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우리와 성정(본성)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하고 제한적인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간구를 듣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를 그치게 하셨고, 다시 비를 주사 땅에 열매를 맺게 하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후를 맞추는 건 기적에 가깝다. 기후를 조정하는 건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엘리야의 놀라운 기도의 능력은 엘리야 자신의 계획과 뜻을 성취하기 위해 발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구약의 기록을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엘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합왕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었다(신 11:16-17). 

삼 년 후 엘리야는 다시 한번 아합에게 보내심을 받았는데, 그때 하나님은 다시 비를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왕상 18:1). 이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분명한 뜻이었다.

결국 엘리야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 구하여 그 응답을 받아내는 기도발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기도를 통하여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 자기의 뜻대로 말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기는데, 그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약속하신 분명한 뜻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것에 대한 것인가? 바로 이 질문이다.

물론, 불확실한 것에 대해 구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일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이 당연히 들어줄 거라 기대하며 기도한다. 나중에 “아니오”라는 답을 주실 때 크게 실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성경엔 하나님이 이렇게 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신 것이 많이 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밝히신 뜻처럼 말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이렇게 확실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많이 기도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것은 별로 기도하지 않는다니 말이다. 이러니 기도의 응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기도에 힘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이해된다.

시험에 합격하고 회사에 취직되고 결혼에 골인하는 등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분별하고 기다리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 오랜 시간 간절히 기도하다가 응답이 더디면 쉽게 지친다. 정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 물음표를 단다. 기도에 힘이 없다고 느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 기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취직이나 합격, 결혼 등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사는 것에 관해서도 관심이 있으시다. 예수님은 “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6:32).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우선순위에 맞춰져야 한다(마 6:33).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등과 같은 이 땅에서의 필요보다 내 안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와 내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거기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다.

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야고보가 기록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자. 15~16절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5~16)

이 말씀은 난제 중 하나이다. “병든 자”를 누구로 보는가? 이 문제가 이 구절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이다. 만일 병든 자를 질병에 걸린 자로 본다면,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는 말씀은 절대적인 약속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라고 해석해야만 한다. 실제로 병 낫기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도 낫지 않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라는 말은 “질병”과 범죄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한다.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 때문에 병이 들린 것이고, 병이 나으려면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말은 모든 질병은 개인이 범한 죄의 결과라는 말인가?

이 난제에 대한 답은 예전에 유평에서 야고보서를 가르칠 때 이미 설명을 했고, 자세한 설명은 그때 함께 읽었던 “야고보서 주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병든 자”는 존 맥아더나 윌 버너, 로날드 블루 같은 학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연약한 자”로 보는 것이 문맥에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단어가 고린도전서 8장 11절에 “믿음이 약한 자”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병든 자”가 “믿음이 약한 자”라고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신다는 약속은 훨씬 더 설명하기 쉽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롬 8:30).

죄와의 연결고리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모든 불신은 죄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롬 14: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확실히 약속하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신자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신다고 말씀한다(골 1:22). 또한 신자가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요일 1:9).

하지만 우리가 무엇에 관해 더 많이 기도하는지 생각해보라. 어떤 기도의 응답을 더 기대하며 기다리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육체의 질병을 가진 자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지 않는가? 그 응답을 기다리지 않는가? 그래서 실망할 때도 많지 않은가? 그것에 대해 기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신 것에 관해 기도하는가?’ ‘확실한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고 기도하는가?’에 있다. 

당신은 형제자매의 연약함을 두고 기도한 적이 있는가? 그 기도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지켜본 적이 있는가? 연약한 믿음을 일으켜 세워달라고 구한 적이 있는가? 자주 드러나는 형제자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중보한 적이 있는가?

한발 더 나아가 당신은 서로 죄를 고백한 적이 있는가? 쉽게 분노하고, 헛된 말을 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덕이 되지 않는 언행으로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서로 죄를 고백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연약한 믿음에서 자라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더 성숙하게 해 달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자라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죄를 사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당신은 그 분명한 약속 앞에 얼마나 나아가 응답을 얻고 있는가?

물론 모든 사람에게 나의 약점을 공개하고 죄를 낱낱이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죄에 대해 고백하고 그 부분에서 용서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제목의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땅에 무언가를 성취하고 성공하기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무엇을 하든지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신 그 일을 하고 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때, 우리는 잃어버린 자에게 구세주를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이 야고보가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일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약 5: 19~20)

이것이 신자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돌아서게 하는 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말과 행동을 드러낼 때, 우리가 연약한 믿음에서 조금 더 그리스도를 닮아 성장하는 생명력을 드러내 보일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주님께 돌아선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이키시고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시며 그의 허다한 죄를 덮으신다. 죄를 사하시고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이것은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다가 다시 비가 오게 하는 기적보다 더 놀랍고 가치 있는 기적이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기적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혼을 옮기는 기적이다. 죄인의 허다한 죄가 사랑으로 덮이는 기적이다. 이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으키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눈이 너무 이 땅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우리의 기도가 너무 하나님의 응답이 불분명한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자. 불분명하다는 건 때나 방식에 있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는,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반면 우리의 삶이 이 땅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삶의 목적에 얼마나 맞춰 있는지 생각해보라. 이제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두신 삶의 목적, 그분의 형상을 닮아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삶,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냄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에게 구원자를 제시하는 삶을 나는 추구하고 있는가?

나는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가? 연약한 믿음을 자라게 해달라고 구하는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가? 나의 죄로 고통받는 이에게 용서를 구하는가? 영적 성장을 위해 서로 기도하는 기도의 전우가 나에게 있는가?

다시 처음에 나눈 친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일 친구가 당신에게 “정말 기도에 힘이 있어?”, “기도하면 뭐가 달라져?”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고, 이렇게 답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일은 허락하시고 어떤 일은 기다리라고 하시고, 어떤 일은 안된다고 하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반드시 그리고 항상 응답하시는데, 바로 나를 점점 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내 연약한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시며 이를 통해 너처럼 잃어버린 자를 사망에서 건지신다. 너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으시고 하나님에게 돌이키게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내 기도를 통해 내 안에서 그리고 내 밖에서 이루시는 놀라운 기적이야.

결론적으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다만 의인이 기대하는 것이 다르면 그렇게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의인이 기도하는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일을 우리 안팎에서 이루신다. 

그 능력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구하는 의인이 되자!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