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1): 중보기도에 포함해야 하는 세 가지 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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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아십니까?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많은 하나님의 역사 뒤에는 누군가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하나님의 역사들 뒤에도 그런 일들을 위해 중보하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중보기도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역사하는지 피조물인 인간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때에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일어납니다.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불신자들을 구원하시고 성도들을 거룩하게 만드시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중보기도의 응답을 각자의 삶 속에서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는 것처럼 신나고 흥분되는 것이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는 중보자라고 가르쳐 줍니다 (히 7:25; 롬 8:26). 사도 바울도 언제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은 모든 성도들에게 서로를 위하여 서로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며 명령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중보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조심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사람과 문제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하여 행하시는 일들을 기억하며 나아가기 보다는 삶에 닥친 문제들을 중심으로 기도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바울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기도는 우리가 본받을 기도의 본이 됩니다. 

에베소서 1장 15-23절엔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바울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바울의 기도의 핵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게 해 달라는 것이 었습니다

  • (엡 1:16–19)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강조포함)

바울은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되 세가지를 통해서 알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 첫번째, 부르심의 소망을 통해서 (18절)
  • 두번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통해서 (18절)
  • 세번째,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통해서 (19절) 
  •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중 첫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의 의미를 보기 원합니다. 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능력이 있는지 알게 되면 우리 모두 중보기도를 할 때에 이 기도를 빼먹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소망의 단순한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바라는 것’ 입니다. 보통 우리가 무엇을 소망할 때는 앞으로 있을 일이 어떻게 될 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이란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를 막연히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소망은 확정된 것을 알고 그렇게 될 줄로 확신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소망의 몇 가지 특성을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 첫째, 소망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구체적인 간구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 둘째, 소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어난 것을 뒤돌아보거나 현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는 것입니다. 
  • 셋째, 소망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원치 않은 일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사형 집행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죄인이 없듯이 그런 일들은 오히려 두려워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부르심의 소망은 영혼 깊은 곳에서 간절이 원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 넷째, 소망은 그 실체가 확실합니다. 막연한 바람이 아닙니다. 바란다는 말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스포츠 팀이 이겼으면 소망하는 것, 나는 누구와 결혼하고 싶다는 것, 어떤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하는 것과 같은 바램이 아닙니다. 군인이 확실하게 정해진 제대 날짜를 소망하듯, 약혼자들이 정해진 결혼식 날짜를 소망하는 것처럼 부르심의 소망은 그 실체가 확실합니다. 
  • 마지막으로 소망은 모든 것을 견디며 기다리게 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시련이나 유혹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견디며 계속 전진하게 하는 것은 간절히 바라는 그 것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확실할 때에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성도들이 무엇을 소망하도록 기도했죠?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부르심이란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1장 전체를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도들을 구원하셨는지 그 부르심에 대하여 깊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엄청난 구원의 의미를 성도들이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더 깊이 있게 깨달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이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데 그 ‘소망’이 무엇인지를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바울의 기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장차 경험하게 될 구원의 온전한 성취를 이 땅에서 믿음의 눈으로 보고 소망하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구원의 성취는 여러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첫째,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성도들로 하여금 언젠가 죄를 짓지 않을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 둘째,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죄로 인하여 부패되고 죽어가는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을 소망하며 이 땅을 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 셋째, 거룩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보게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이 땅을 살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곧 얼굴과 얼굴을 보며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소망하며 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 넷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에 속한 것들을 받게 될 것을 소망하며 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심은 모든 것들에 대한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는것. 성도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상급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소망하며 이 땅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땅을 살고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의 눈을 들어 구원이 주는 소망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위하여 이렇게 중보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얼마가 강렬하고 간절하게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고 있는가? 나의 눈은 영광스러운 부르심의 소망에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썩어 없어질 세상의 소망에 고정되어 있는가? 나의 마음의 눈은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명중하여 흔들리지 않게 고정이 되어 있는 것처럼 구원의 소망에 고정되어 있는가?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의 영광스러운 소망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구원의 감격과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 어떤 힘든 일과 유혹이 있어도 기쁨으로 견뎌 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힘들고 낙담이 될 때에 위로를 받으며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다면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 보여도 앞으로 이루어질 확실한 약속을 붙잡고 견딜 수 있습니다. 사람은 소망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살 의욕을 잃게 됩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감당해 내는 사람들은 모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빛이 아주 뚜렷한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기쁨을 가지고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소망의 빛이 희미해 질때 사람은 견디어 내는 힘을 잃어갑니다. 스스로의 목숨까지 포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붙잡을 소망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오라기만한 소망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하고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히 6:17–19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래서 우리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물론 문제들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지만 성도들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의 소망’을 보고 붙잡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 샌디에고 출신의 Florence Chadwick 라는 수영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50년도에 영국 해협을 가로질러 프랑스에서 영국을 수영으로 횡단한 최소의 여성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1952년 7월 4일에 34살의 나이로 카탈리나 섬에서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헤엄쳐 가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 선언은 큰 화제가 되었고 미국 전 지역에서 그 광경을 텔레비전으로 방송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도착을 해변가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도전하는 날, 캘리포니아 해안 바다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피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뼛속까지 얼어붙게 할 정도의 차가운 물의 온도가 도전에 약간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15시간 계속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던 채드윅은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와 나란히 가던 그녀의 어머니와 트레이너는 조금만 더 가면 목표지점에 도달하니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뿐이었습니다. 채드윅은 안개를 헤치고 다시 사력을 다해 나아갔지만 점점 힘이 빠졌습니다. 그녀는 목표지점이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안타깝게도 기권하고 따라오던 구조선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해변에 도달하여 자신이 포기한 지점이 목표지점에서 겨우 800 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후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제가 도전에 실패한 이유는 추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피곤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실패한 이유는 안개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안개로 인해 저는 목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표 지점을 볼 수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포기하지 않고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안개로 인해 시야를 잃었을 때, 계속 전진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잃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9월 4일, 플로렌스 채드윅은 실패를 교훈삼아 다시 도전합니다. 그날도 기상조건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짙은 안개가 해안선을 가리우고 있었지만 마음의 눈으로 목표점인 ‘롱비치 항’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13시간 47분만에 카탈리나섬과 롱비치 간의 태평양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각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르심의 소망이 희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소망은 언제나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 그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을 따라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사 이 부르심의 소망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에 빛을 비추어 구원의 소망을 또렷하게 보게 해 주신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 질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 가지 간구 중에 두 번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의 풍성함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의 의미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나를 비롯한 성도들이 부르심의 소망을 또렷하게 보고 붙잡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하길 바랍니다!

중보기도(2): 하나님을 알기 위한 기도

The Masters Seminary 졸업하고 Grace Community Church의 Korean Fellowship 의교사로 봉사하였고, Grace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현재 그레이스 성경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Grace to Korea의 기고자이며 가족은 보현 자매 사이에 지아, 지훈, 하민, 하늘 이남이녀 네 자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