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4): 하나님을 인정하기

This entry is part 4 of 5 in the series 정치를 논할 때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바” 정치를 논할 때 하나님을 제외하는 것은 옳지 않다(롬 13:1). 하지만 모든 정치적 사안에 하나님을 끼어맞추는 것도 억지스러워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인정하는 관점으로 정치를 논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보자.

1.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어떤 그리스도인은 국가 없이 교회는 존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성경은 영토와 민족으로 구분되는 국가의 개념을 견지하지만 동시에 그 개념을 초월하는 나라를 선포한다.

앗수르, 바벨론, 애굽, 이스라엘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들 안에 이미 시작된, 그러나 아직 그 온전한 실체가 도래하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개념의 하나님 나라를 동시에 인정하는 동시에 바른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국가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이 땅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선순위를 뒤바꿔버리면 정치를 논할 때 마치 이 땅의 국가가 전부인 것처럼, 심지어 하나님 나라의 운명이 모두 그것에 달린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성경의 역사는 오해를 바로잡는다. 족장 시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은 사사 시대를 지나 왕정 시대, 심지어 포로 시대를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셨다.

기독교 역사를 보라. 평안과 자유가 보장된 시대와 국가뿐만 아니라, 탄압과 독재가 가득한 시대와 국가 속에서도 하나님은 완벽하게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해 일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바른 이해와 우선순위는 이 땅에서 정치를 논할 때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는데 합당한 선택을 하게 한다.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떤 정치적 이슈를 논하든지 이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

예로 사드 배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신다(욥 25:2).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딤전 2:2). 그래서 우리는 사드를 찬성할 수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들 역시 대한민국의 평화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한반도를 긴장하게 하며 분단체제가 굳어진다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누가 안보 의식이 엉망인지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드가 효용성이 있는 무기인지, 경제적인 득실은 어떤지, 주민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비용과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드를 배치해야 할 군사적, 안보적 상황인지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다. 평화와 안전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합당한 결정을 해야 한다(겔 18:23; 33:11).

하지만 논의 중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드 배치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정치적 의견이 채택되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그것을 선으로 바꾸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바른 선택을 위해 열띤 논의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내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자세, 특정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망한다고 보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자세다.

그리스도인은 정치를 논할 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영원한 보좌에서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땅의 나라에 어떤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시 45:6)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 145:13)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미워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범사에 그를(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6-7)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바를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이 지도하는 길을 수용하고 그분이 악으로 규정한 것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정치적 사안에 관해 어떤 관점을 취하는가? 보통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다. 나의 견해를 지지하는 언론이나 전문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내가 내린 결론이 가장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섣불리 결론 내리기 전에 나의 결정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준 아래 내려진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다.

가령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2013년 김한길 의원 및 51인의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생활영역에서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 예방할 수 있도록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사회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고 인간존엄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함.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공평을 기초로 한다(시 45:6; 97:2).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각종 차별을 금지하셨다(롬 3:22; 10:12; 골 3:11; 약 2:1). 그렇기 때문에 이 법의 기본적인 취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부합한다. 그리스도인이 문제로 삼는 항목은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인데, 이 법안의 정의에 따르면 각각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개인의 성적 취향”,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 혹은 표현”을 말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동성애, 양성애에 대해 분명히 죄라고 말씀하셨다(레 18:22; 20:13; 롬 1:26-27; 고전 6:9). 성은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주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 1:27; 마 19:4).

인간이 존엄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 형상에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점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원하신다. 그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좇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죄라고 규정하시고 그 죄에서 돌이킬 것을 명하신 것까지 우리가 법으로 보호해야 하는가? 그것이 역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을 막는다면, 그래도 우리는 이 법을 지지해야 하는가?

이 법안은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에 따라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법령과 정책의 집행에서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보아 금지”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학교나 훈련 기관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을 고려하여 동성애자를 교사로 고용하지 않을 경우 차별이 되는가? 신학교에서 다음 세대 목사를 훈련하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을 가진 이의 입학을 거부할 경우 하나님이 말씀하신 평등이 무너지는 것인가?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세운 기업에서 특별한 성적지향을 가진 이들을 고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평등한 일인가?

물론 잘못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만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는 사항이 아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하지만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논의를 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보장하자고 섣불리 주장할 수 없다. 죄인을 사랑하고 그들의 참된 회복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죄를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합당한 것으로 보장하는 법을 지지하는 것은 절대 그들을 사랑하고 돕는 방식이 아니다.

3. 참된 것을 말하고 참된 것만 말하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김남국 교수는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정치인은 왜 거짓말을 할까?”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명백한 가짜정보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회는 부정적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선,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쓰면서 사회적 거래비용이 증가한다. 또한, 신뢰할 만한 정보와 투명성이 결여된 상황은 시민들 사이의 상식적인 소통경로를 파괴함으로써 진실의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해친다. 현실정치에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포의 조장이나 전략적 은폐가 항상 존재한다. 진실만을 추구하는 도덕성이 역사의 진보를 보장하지 않지만 도덕성 없는 유능함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기사)

성경은 세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탄을 가리켜 “거짓의 아비”라고 부른다(요 8:44).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한다. 그는 거짓말쟁이다(요 8:44). 세상의 권세 꼭대기에 선 사탄이 거짓의 아비인 만큼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이유와 목적을 위해 쉽게 거짓을 섞어 말한다. 명백한 가짜정보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것은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유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권을 뒤집을 수 있고, 상대편에게 흠집을 낼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 분명한 사실관계를 따져야 한다. 참된 것을 말하고 참된 것만 말해야 한다. 자기 측에 유리한 정보만 확대해서 말해주는 여론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발언을 사실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로 바꾸려 하는가?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라 사고로 조작된 범죄인가? 그렇다면 천안함은 어떠한가?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이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양측 모두 현장 사진, 분명한 논리, 확실한 영상 자료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선동한다. 그 속엔 온갖 거짓말과 가짜정보가 넘쳐난다. 자기주장에 유리하도록 선별된 증언, 편집된 영상, 조작된 사진이 가득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은폐와 공포 조장이다.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 똑같은 세상의 거짓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 우리는 참된 것을 말하고 참된 것만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세상이 말하는 정치적 발언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적어도 이러한 견해와 추측이 있다는 수준으로 자기의 정치적 우려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주 안에 형제, 자매와 정치를 논할 때,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면 서로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전제에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정치적 성향이 강할수록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발언과 증언을 믿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은 타락하지 않고 정직하며, 상대진영은 비이성적이고 부패했다고 본다. 내가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쓰고, 반대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사사건건 부정적으로 본다. 이렇게 편향된 사고방식이 정보를 수용하는 태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진리는 여기에 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정당이나 정치인도 없다. 권력을 잡기 위한 거짓말은 진리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도래하기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짓 정보를 식별하는 데 지쳐 정치에 관심을 끊어버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옳지 않다. 건강하고 바른 시민이 되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짊어진 하나의 정체성이다. 반대로 무분별하게 정보를 수용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바른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참된 것을 말하고 참된 것만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 피해야 할 방식에 관해 나누기 원한다.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3): 정치인은 무신론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5): 이렇게는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