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4): “사회정의”를 둘러 싼 논란은 정말 필요한 것인가?

This entry is part 4 of 5 in the series 사회정의

나는 논쟁을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 다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논쟁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지난 번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복음이 공격을 받는다면 논쟁은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 시대가 시작된 이후,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계속되는 복음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인한 교회 내에서의 격렬한 의견 충돌은 이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긴 교회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적 기본 원리를 방어하는 강력한 목소리는 항상 있어 왔다.

지난 번 글에서 설명했던 논란들 중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주재권 구원에 대한 논란은 내가 ‘주님 없는 복음’(생명의 말씀사)을 쓰기 십 년 전 이미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분쟁이었다. 번영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바꾸어 놓은 복음은 20세기 초에 시작한 오순절 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보통 우리는 먹구름이 끼이는 것을 보면 다음은 주된 공격이 어디서 올 것인지 예상 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복음의 단순성과 명확성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갑작스럽게 생겨나기도 한다.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사회 정의”와 인종차별을 둘러싼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사 년 전, 나는 성경을 믿는 교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인종차별 문제를 둘러싼 분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이 계명,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18)는 말씀에 일치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인종적 적대감을 거부하는 일에 생각을 같이한다. 

인종차별주의는 수치, 부당함 그리고 끔찍한 폭력의 흔적을 남긴 미국 역사의 얼룩이다. 노예제도와 큰 대가를 치른 남북전쟁은 깊숙한 인종적 분열을 남기고 여러 방면에서 심한 증오를 초래했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20세기 중반의 시민 평등권 운동에 의해 그러한 악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민법은 모든 미국 국민의 평등한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지만, 어떤 법으로도 편견과 악이 가득 찬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인종 문제는 50년 전과는 달라졌다. 미국인들의 태도는 바뀌었다. 백인 우월주의와 의도적, 고의적 또는 이상주의적 인종차별은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악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분명히 마음 속으로 다른 민족에 대해 여전히 적대감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민족들을 향한 적개심, 악의 혹은 계획적인 반목의 공개적인 표출은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며 단연코 오늘날 모든 주류 미국인의 삶에서 거부당할 것이다.

물론 어디서나 사람들은 여전히 관습, 전통, 공동체의 규범 그리고 자국 문화와의 민족적 차이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문화 간의 충돌은 단지 미국인만의 딜레마라 할 수 없는 전 세계적인 문제다. 

하지만, 인종 간의 편견에 대한 요즘 미국인의 멸시는 도가 지나치다. 실수로 인해 무감각하고 맹목적으로 벌어진 일조차도 문화적 또는 인종적인 문제라 치부하여 갈등을 조장한다. 심지어 단순한 사회적 괴롭힘조차도 인종차별의 편견에 뿌리 박힌 행위라고 간주한다. 이 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실제로 자신들과 세계관을 같이 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 대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타락한 세속적 사람들이 적개심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들을 맹렬히 비난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차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복음주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과 상관 없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제껏 다녔던 모든 교회에서 분명히 경험한 것이었다. 또 복음주의 세계에서 내가 보아온 것이다. 나는 민족이나 피부 색깔로 인해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를 알지 못한다. 우리 교회는 매달 새로운 등록 교인들을 받아 들인다. 지난 일요일 밤에도 우리 교회는 약 백 명의 새로운 등록 교인을 받아들였다. 라틴 아메리카계, 필리핀계, 중국계, 우간다계, 나이지리아계, 몽골계, 한국계, 우크라이나계, 아르메니아계, 리투아니아계, 러시아계, 오스트리아계, 아랍 자손들, 흑인 그리고 백인 미국인으로 구성된 여러 민족은 하나님 사랑의 증거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 화해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를 용서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부분이다. 그리스도인은 인종 차별로 점철된 환경 안에서 인종 차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중재자이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곱 번을 일흔 번 용서한다.

그러나 인종 간의 불화가 세상 속의 학교, 뉴스 미디어에서 초점이 되어 오자, 교회는 문화에 간절하게 참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이 문제에 관여한 많은 사람들은 복음 중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세상의 지혜를 모방했을 따름이다. 그 결과, 민족적 차이에 대한 악에 치우친 대화는 복음을 가리고 교회를 분열시켰다. 자칭 가장 “복음 중심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 중에도 말이다.

최근에는 인종차별주의적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선조가 인종차별주의자 였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기독교 지도자가 그 문제 대한 죄를 고백하라고 말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피부색은 자동으로 과거의 인종 차별에 대한 책임을 가진 것이 있게 되었다. 

영향력 있는 한 복음 지도자는 “우리는 닥터 킹 암살에 대한 회개를 기다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교회에서의 인종 간 화합은 백인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오직 사랑과 정의를 설교한 사람을 죽인 일”(닥터 마틴 루터 킹을 말한다.)에 공모한 것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회 정의”라는 시각에서 볼 때 피부색은 단순히 선조들이 행한 악한 문화 뿐만 아니라 그와 전혀 상관 없는 어떠한 특정 범죄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회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견해는 전혀 “정의”롭지 않다. 그리고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 모든 이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악에 대한 해답은 누군가가 범했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각 사람이 가졌던 증오, 노함, 악독 그리고 그 밖에 모든 죄악 된 태도를 포함한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다.

성경의 권위와 복음의 진리에 헌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인종 간의 문제, 부당함, 인간 학대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회악에 대해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 더 나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 (갈 5:22-23)로 우리를 자라게 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

악한 사람들, 부패한 정부 또는 적대적인 기소자의 손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논의하려 한다. 이 딜레마에 대한 신약 성경의 메시지는 조금도 모호하거나 이해하기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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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3): 복음을 지키기 위한 기나긴 고투, part 2 사회정의(5): 사회정의의 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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