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복음으로 돌아가자!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는 “교회의 펠로십이 그들의 활동의 일부는 세상을 향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신자의 책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복음전도는 성도 각 개인은 물론이고 교회가 해야 할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 복음전도를 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교회가 열심을 내는 복음 전도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경은 예정론을 가르치고 있다(참조, 행 13:48, 롬 8:29, 9:11, 살전 1 : 3, 4, 살후 2 : 13). 만일 하나님의 예정론이 사실이라면 그냥 교회에 앉아서 택하신 백성들이 제발로 걸어 오기를 기다려야지 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복음을 전해야 할까?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가 그의 글에서 소개한 한 예화로 그 답을 알아 보자.

어떤 신학교의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여러분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를 예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복음 전도를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하였다.

교수님은 질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도록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답하도록 했다.

첫 번째 지적받은 학생은 “모르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다음 학생은 “그것은 항상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예요”라고 하면서 답은 조금 길었지만, 첫 학생과 같이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세 번째 학생은 “교수님께서 그 질문을 제기해 주셔서 기쁩니다. 나는 항상 이 질문에 대해 궁금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역시 답을 하지 못했다.

교수는 반원 주위를 돌아 다니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하는 중에 구석에 앉아 자기 차례가 다가 오는 것을 두려워 하며 기다리는 한 학생의 순서가 되었다.

그 학생은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는 말로 시작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교수님, 저는 제 대답이 교수님이 원하시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무언가 더 깊고 의미심장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작은 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전도를 명령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말했다. “예, RC,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도하도록 명하십니다. 영광의 주님, 당신의 영혼의 구세주이시며,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당신에게 전도에 참여하도록 명 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

이렇게 답한 학생은 ‘리고니어 미니스트리’를 통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최근 소천하신 R.C Sproul 목사님이다. 그의 말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를 명령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예수님은 이 짧은 말씀을 통해서 전도를 명하셨을 뿐 아니라 전도의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

이 명령을 받은 제자들과 그들의 말씀으로 주님을 믿게 된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은 지난 2,000년 동안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의 안락함을 버리고 오로지 주를 증언함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따라 두려움 없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았다(딤후 1:8 참조).

그러나 근간의 교회들은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너무나 세상의 문화 타협하여 주님의 교회를 변질시키고 있다. (최근 연재하고 있는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 “복음” 시리즈가 이러한 상황을 더 잘 설명하고 있다. 다섯번의 글로 소개하는 이 시즈를 잘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아래에 링커가 있다.)

세상의 문화와 타협한 교회들은 복음의 말씀이 없거나 세상의 요구에 물타기 하여 복음이 빠진 흐리멍텅한 메시지로 세상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행한다. 이들은 마케팅 기법으로 마치 백화점에서 신상품을 팔듯이 교회 멤버십을 판매한다. 그러한 행사들은 어김없이 록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화려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모임들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로 부터 돌이켜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을 인정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 모임들을 어떻게 복음전도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복음이 빠져나간 교회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예수님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교회에 주님은 함께 하시지 않는다. 흔히들 한국의 목회자들이나 교회들은 ‘한국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소리를 자주한다. 정말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주님이 명령하신 명령으로 돌아와 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어떻게 주님의 명령을 자기 멋대로 바꾸면서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자신들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세상 문화를 모방한 전도 프로그램으로 양산된 신자들을 결신하는 기도를 하게 하고, 교인 등록을 하게 하고, 심지어 세례 신청서까지 받으며 꽃 다발과 머리에 화관을 씌어 주어 불신자들을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한국을 방문하여 이렇게 전도하는 몇몇 대형교회들을 방문해 보았지만 그들이 드리는 예배도 이러한 전도집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지나치게 표현하면 일요일 아침에 모이는 록 콘서트장 같았다. 나는 이러한 교회들을 보면서 세상적에서 물의를 일으킨 몇몇 유명 목회자들이 파렴치한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거나 또는 자리를 옮겨 다른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별 문제 없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불신자들에게 이러한 목회자들의 불법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겠는가? 세상의 정치판이나 기업에서 이러한 일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거룩함을 모르는 그들에게 교회가 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이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목회자의 자격 같은 것이 무슨 상관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딤전 3).

복음이 빠진 이러한 모임은 헛된 속임수일 뿐이다. 세상 문화를 좇으며 구도자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주님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행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없다고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사를 통해서 믿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후에 복음의 메시지를 분명히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여야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잘못된 시작으로 생긴 결과를 이용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 복음 전도의 관행을 옳은 것으로 인정하거나, 정당화 해서는 안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성경을 떠난 그 어떤 방법도 우리는 거부해야만 한다.

바른 복음 전도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찾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3에서 말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이 구절에서 바울이 요청한 ‘전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로고스‘다. 바울은 로고스의 문 즉 하나님이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을 주목하라.

주님은 제자로 삼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마 28:18-20참조). 제자로 삼는 일은 복음을 가르치고 그 복음을 받아 들이므로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게 직접적이고도 권위적인 방법으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불신자들에게 주님을 가르치고 또 그 가르침으로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또 배우고 또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일이고(행 2:41-47참조),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디모데는 그의 스승 바울에게 이렇게 배웠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1-2)”

우리들은 이 말씀에 순종한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한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본을 따라 우리도 배운 것을 지키고 가르치고 또 지키고 가르치게 해야 한다.

배운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패턴을 따른 충실한 성도들로 인하여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주님의 교회들을 온갖 핍박에도 없어지지 계속 생겨났고, 지금도 생기도 앞으로도 생길 것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마 28:20).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복음을 가르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 가르친 복음을 지키게 해야 또 지켜야 한다. 모든 성도는 먹거나 마시거나 무엇을 하거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하려고 애쓰고 (고전 10:31참조),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본을 보일 때 입술로 전파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배운 것을 가르치고 배운 것을 지키는 것이 교회의 문화로 세워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해서 바른 복음의 설교를 통해서 배운 것과 개인적인 묵상을 통해서 배운 것들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서로 나누면서 마음에 찔렸던 죄를 서로 고백하고 삶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를 교회 안에서 정착 시키게 하는 것은 목사나 장로 또한 교회의 여러 리더들 만의 일은 아니다. 리더들로 부터 시작된 이러한 문화가 성도 각자의 삶을 지배하고 교회를 지배할 때 모든 성도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넘치는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 세상의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은 성경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복음과 복음 전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커를 클릭하시기 바라고, 저희 사이트의 찾기에서 ‘복음”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교인은 복음 전도자이다.

교회에 필요한 전도문화 (1,2)

성경이 말하는 복음 시리즈

복음(사회복음) 시리즈

하나님과 나 관계와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