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키라

성경은 사탄이 하는 일들에 대해 이런 표현들을 사용한다.

딤전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고후 2: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만화나 영화 등에 나오는 어리숙하거나 귀엽고 친근한 악마의 모습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실제 사탄은 (그의 추종 세력들도 마찬가지로) 간악하고 치밀한 하나님의 대적이자 우리의 대적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요 8:44), “시험하는 자”(마 4:3), “악한 자”(엡 6:16; 요일 2:13), “원수”(마 13:39), “참소자”(계 12:10) 등으로 표현한다. 사탄을 비롯한 타락한 천사들에 대해 성경은 어떤 긍정적인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그들은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다. 하나님과 같이 전지하거나 모든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사로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최소한 인간의 모든 역사를 지켜봤을 정도로 긴 세월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실제적인 지식도 쌓아왔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라이벌처럼 과대평가되어서도 안 되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과소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타락한 천사들은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넘어뜨리려 하고 절대 이런 일들을 장난삼아서 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 타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성경이 말하는 마음은 순간의 감정이나 끌림, 욕구같은 것이 아니다. 마음은 오히려 생각, 가치관 혹은 세계관에 더 가깝다. 판단, 분별, 결정의 중추가 마음이다. 따라서 마음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고 습관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삶의 차이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주 타겟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처음 인간을 무너뜨린 것도 그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제로 선악과를 따먹게 되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죄에 대한 결과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데 있어 사탄은 교묘하게 인간의 마음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 성도들을 보며 이런 두려운 마음을 전했다.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오늘날의 우리도 이런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뱀이 어떻게 하와를 미혹했는지 살펴보자. 인류의 타락을 다룬 창세기 3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 3:1 상반절)

사탄은 뱀의 모습으로 여자에게 나타났다. “간교하다”는 말은 긍정적으로 지혜롭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간교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 일의 결과를 알고 있는 저자나 독자에게는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로 들렸겠지만 이 당시의 하와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뱀은 지혜로운 동물이었고 그런 뱀이 하와에게 다가온 것은 경계할만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탄은 그런 모습으로 하와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아무 해도 없고 의도도 없는 것 같은 질문을 하나 던졌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의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하반절)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다. 순수한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매우 전략적이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질문이었다. 뱀이 질문에서 강조한 것은 “참으로”다. 하나님께서 “진짜로” 그렇게 말씀하셨냐고 물은 것이다. 성경에 처음 기록된 이 질문은 하와의 마음에 의심의 씨를 뿌렸다. 그전에는 “하나님께서 저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 그러니까 먹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으라고 하셨는데, 저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어. 왜일까? 라고 하와도 의문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하와의 다음 말이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2-3)

하와는 뱀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창 2:16-17)을 글자 하나 틀리지 인용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하와의 말에는 중요한 두 가지가 바뀌어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반드시 죽으리라” –>  “죽을까 하노라”

명령의 내용과 결과가 바뀌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과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결과에 대한 확실한 말씀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었다. 하와의 생각에 진리 외에 거짓이 스며들었다. 여기에 뱀은 확실한 거짓, 하지만 매력적인 말을 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창 3:4-5)

자신의 의도대로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자, 사탄은 이제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말을 한다. 만약 사탄이 처음부터 여자를 찾아와 이 말을 했다면 여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치명적인 결과를 부인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 더 나아가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의심을 품게 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뭐가 진짜 사실인지를 말해주겠다고 한다. 이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런 명령을 한 것뿐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먹어라. (하나님은 사실 너의 최선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너에게 그런 명령을 한 것뿐이다.) 사탄의 말은 부분적인 사실들이고 결과적으로 거짓이다. 하지만 하와에게는 앞뒤가 잘 맞아들어가는, 게다가 아주 매력적인 말로 들렸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탄이 한 일이다. 사탄은 억지로 하와의 손을 움직여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지 않았다. 그가 했던 것은 하와의 마음, 즉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마지막 말을 통해 하와의 생각의 근본을 흔들었다. 생각이 달라진 하와가 나무를 본다.

나무의 열매가 달라 보인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정말 지혜롭게 해줄 것 같다. 하나님의 말처럼 저거 먹는다고 죽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뱀의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래 보인다. 그런 것 같다. 분명히 그럴 거다. 그러니까 먹자. 결국 사탄에게 속아서 그 생각이 달라지자,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의지하고 그에 따라 행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했다. 아마 그것을 먹는 순간에도 “난 지금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거야”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류의 첫 죄와 관련하여 사탄이 했던 일이고 지금도 사탄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를 미혹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우리에게 진리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이미 이런 진리로 가장한 사탄의 거짓이 가득하다.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 병이다. 이제는 병도 아니고 그저 ‘다름’이고 ‘차이’,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다고 해서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떠난 평화, 화합, 사랑, 행복, 만족, 기쁨은 사실 허상이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 그 모든 것의 실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두려움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을 정말 두려워해야 한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를 떠나 부패할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을 지켜야 한다.

어떻게 내 마음을 지킬까?

답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진리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선악을 우리 기준에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알아가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거짓의 아비인 사탄과 그 수하들의 큰 영향력 아래 있다. 그 말은,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그들의 거짓으로 차게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지 보라.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매료시키고 있는지 보라. 우리 청소년들은 스타들에게 사로잡혀있다. 웹툰이라고 하는 만화, 인터넷 방송 등의 또래 문화에 사로잡혀 있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짓 정보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른들은 성공에, 돈에, 자식에, 행복에 사로잡혀있다. 교회도 중요하고 하나님도 중요하고 성경도 중요하다는 것 아는데, 그래도 이런 것들은 내가 좀 누리고 살아야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것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 마음을 계속해서 채우고 있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이 주로 일하는 방식은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대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다 버리라고 하거나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방에 다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최초의 인간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은 은밀하게 하지만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일한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은 사탄의 거짓으로 물든다. 우리 마음이 100%의 거짓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내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진리로 채우려고 하지 않으면 내 마음에 들어오는 1~2%의 거짓으로도 우리는 큰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조차 없으면 더 큰 잘못된 결정을 더 쉽게 그리고 자주 할 것이다. 그것이 내 습관이 되고 삶이 된다. 사탄이 원하는 위대한 목표가 내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 생각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진리로 채워야 한다. 잘못된 것은 드러내고 올바른 것으로 채워야 한다. 내가 어디에 남는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지를 보라. 내가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지를 보라. 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지 보라.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매체를 통해 무엇을 자주 접하는지를 보라. 그것들에 내 마음이 있고 그것들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다. 만약 그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관계없는 것들이라면 내 삶에서 그것들을 덜어내야 할 것이다.

우리 대적은 절대 어리숙하지 않다. 그리고 절대 우리 편이 아니다. 대적의 거짓에 속지 말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나님의 진리로 내 마음을 채워야 한다.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수천 년 전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었던 이 잠언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명하신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Grace to Korea 의 자문 목회자,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