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정을 창조하신 목적

왜 하나님은 사람이 아메바처럼 무성번식하여 스스로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내게 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자녀를 낳게 하셨을까? 왜 가정이라는 도구를 선택하셨을까?

하나님은 자기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창 1:27),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다(사 43:7).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이 땅에 충만할수록 하나님의 영광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과 더불어 사람을 통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보여 알려질 것이었다(롬 1:20).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명령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은 아담과 하와, 남자와 여자를 통해 계속해서 자손이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었다. 부모와 자녀라는 특별하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해 창조의 목적을 추구하셨다는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만든 특별한 제품을 가치 있게 여기고 좋아한다. “수제”라고 불리는 각종 제품들, 수제구두, 수제옷, 수제 햄버거… 공장에서 막 찍어낸 제품보다 훨씬 특별한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규격과 모양이 똑같은 수천개의 제품 중 하나가 아니라 만들 때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제품이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세상에 나타낸 방식이 이와 유사하다. 하나님은 공장에서 대규모로 빠르게 찍어낸 사람들로 세상을 채우기보다 각 가정에서 태어난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결실을 통해 자기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셨다.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한 특별한 공동체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소개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큰 의미가 있다(마 5:16, 45, 48; 6:1, 9, 26, 32; 7:11; 18:14; 23:9).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하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말하는데, 비록 죄로 인해 육신의 아버지가 그 온전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지라도 아버지가 가정 안에서 자녀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가정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기 원하셨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 자기의 성품 곧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의 신성을 가정 안에서 나타내기 원하셨다(출 34:6).

요컨대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충만하게 채우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특별하고 가치 있는 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셨는지 말해준다. 구약의 십계명, 돌판에 새겨진 열 가지 계명 중 하나가 바로 가정에 대한 명령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예수님도 바리새인의 외식 특별히 부모를 업신여기는 행동을 강력하게 책망하시면서 이 말씀을 사용하셨다(마 15:4). 또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변함 없는 뜻을 계시하셨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우상을 섬기는 사람, 심지어 아무 신도 믿지 않는(자신을 믿는) 사람 중에도 이 정도 가정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 눈에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건 본능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녀는 마땅히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만물의 이치이고 당연한 법칙이다. 하나님의 원대한 창조 목적이나 영광을 나타내야 할 필요성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잠시 성경이 가정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느껴보라. 부모를 거역하는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 방식이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 21:18-21)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대로 치리 하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에 사형이라는 무서운 형벌로 가정 안에 일어난 반역을 처벌했다. 신약은 기본적으로 국가 전체가 하나님의 법대로 통제되지는 않는다(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통치되는 교회 안에서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문제를 다룰 때 구약만큼 심각한 기준을 적용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목숨을 빼앗는 처벌을 하지는 않지만, ‘믿음을 배반한 자’,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영적인 사형선고를 내린다.

왜 하나님에게 가정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세상에 충만하게 채우기 원하시며 그렇게 하기 위해 가정을 사용하신다. 가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영광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가정을 자기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삼으셨다면, 가정의 구성원들은 이를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세상이 보는 정도의 중요성만 인식하며 살아가면 안 된다.

이것이 어쩌면 과중한 짐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가족 구성원이 누릴 기쁨이나 행복은 안중에도 없고 다만 자기 영광을 드러낼 통로로 가정을 사용하시는 것인가? 그 도달하기 힘들어 보이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해서 무시무시한 징계와 채찍질로 가정을 억압하시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언약궤 속에 소중히 보관된 돌판 위에 새겨진 십계명, 그 중 하나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 뒤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따라온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신약에서도 이 약속은 유효하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하나님은 가정이 누릴 기쁨과 행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명령과 함께 약속을 주셨다. 물론 다른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지만(출 20:5-6), 가정에게 주신 이 계명 뒤에는 특별한 약속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보라. 하나님이 정말 가정이 누릴 기쁨과 복에 관심이 없으신지.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5-6)

하나님은 가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역기능을 보이는 가정은 삼사 대를 벌하실 정도로 엄히 다스리신다. 하지만 그분이 가정에 베푸시는 은혜의 크기를 헤아려 보라. 가정의 순기능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가정에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셨다. 4대 1000.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가정에 은혜를 베풀기 원하신다. 

참고로 하나님을 사랑하고(혹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어울리는 표현으로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분이다(전 12:13). 그 본분을 다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통해 땅에 충만히 드러나며, 가정이 바로 그 위대한 일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부모는 사람으로서 자기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있다. 신명기 6장에서 부모에게 준 명령을 잘 읽어보라.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었다(물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족 구성원 중 부모가 자녀에게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녀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여 그 계명에 순종하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정의 순기능을 다할 때 천 대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신약 시대에도 동일한 명령을 주셨다. 아비들은 마땅히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말이다(엡 6:4).

그래서 그토록 구약과 신약에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길로 인도할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양육은 철저히, 부지런히 그리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되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정을 창조하신 목적과 그 목적에 충실한 가정의 순기능을 생각해볼 때 부모가 생각해야 할 자녀양육의 목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는 자녀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양육하고 있는가?

자녀는 더 간단하다.

나는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부모의 책임이 훨씬 크다. 자녀는 순종만 하면 되지만, 부모는 모든 일에 주의 교훈과 훈계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해봐야 한다. 자녀를 어떤 길로 인도하고 있는지 어떻게 빚어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대로 양육하고 있는지 평가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가정의 순기능 안에서 이토록 단순한 가정의 역할이 죄로 인해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가령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역할에 충성하더라도 자녀가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신실하게 자녀를 주의 계명으로 가르쳤는데도 탕자처럼 집을 뛰쳐나가는 자녀가 있다는 사실에 낙심할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녀는 부모가 주의 교훈과 훈계를 거스르는 명령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부모에게 순종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공경하는 태도를 갖추되 부모 위에 권위를 두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면 부모의 명령을 거역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에 순종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든 부모 그리고 자녀의 본분이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 심지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여 가족 구성원들이 고통받는다. 가정을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나기는커녕 가정의 역기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바울은 말세에 여러 가지 죄악으로 고통받는 때가 이를 것이라 경고했는데, 그 죄악 중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다(딤후 3:2).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하고 자녀는 부모를 거역한다.자녀에게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쳐야 하는데, 도리어 계속해서 자녀의 자존감을 높여줘서 교만과 자만이 가득 차게 만든다. 부모나 자녀 모두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돈이나 쾌락을 사랑한다. 그리스도인 가정도 경건한 형식만 갖추었지 그 안에 경건함을 이루어나갈 실제적인 능력은 없는 가정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단순하다. 천 대까지 가정에 은혜를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분이 창조하신 가정의 목적대로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가정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채워지도록 부모와 자녀 모두 각자의 역할,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것이다. 부모들이여, 자녀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이여, 오직 부모를 공경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라.

물론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연약한 부분을 서로에게 보이며 죄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 않으신가?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부르신 예수님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먼지와 진토같은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받드는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눅 2:51).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온 세상에 충만하게 드러내기 위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빌 2). 우리의 연약함, 실수와 허물,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가정은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천 대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로 이야기 나눠보자.

당신의 가정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왜 당신의 가정을 이 땅에 창조하셨는가?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 양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당신이 자녀라면 부모를 통해 결국 당신이 다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 가정 안에서 부모에게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