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교회

미국의 유명 회사Apple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2003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 모델이 영국의 유명 락 밴드 비틀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엉뚱한 대답을 들은 질문자가 어떻게 비틀즈와 같은 뮤지션이 사업가인 당신의 롤 모델이 되었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그는 비틀즈 라는 그룹 각 개인의 역량은 최고가 아니지만, 그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서로의 결점을 보완할 때, 가장 최상의 음악을 세상에 선보임을 보며, 비즈니스 역시 한 개인의 역량보다는 팀 웍을 통한 상호 보완 과정을 통해서 최상의 제품이 나올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롤 모델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음악을 하는 음악가에게는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탁월이 연주하였던 롤 모델이 필요하다. 그의 연습 방식, 생활의 작은 습관, 삶의 우선 순위와 같은 여러 다양한 영역을 자신의 겉으로 흡수할 때에 그는 자신의 롤 모델의 역량에 한층 더욱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롤 모델의 방식은 우리가 성경 속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전,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시종으로 곁에서 배우게 하셨고, 선지자 엘리사 곁에는 엘리야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자신을 본받고, 자신과 같이 행하는 자들을 또한, 눈 여겨 보라고 말하였으며, (빌 3:17) 그는 디모데에게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딤전 4:12).  

그렇다면, 오늘날, 누군가가 우리에게 크리스찬으로써, 당신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 라고 질문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대답은 무엇일까? 

물론,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히브리서의 기자가 외침과 같이,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라는 외침일 것이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완벽하고, 최상의 롤 모델이시기 때문이다.

1.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절대적 능력과 주권을 가지신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죄인을 위하여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참 겸손의 본, 완전한 순종의 본을 보이셨다.  

2. 예수님은 이 땅에서 율법의 모든 것을 완전히 지키심으로 거룩하고, 완전한 의의삶의 본을 보이셨다.  

3. 예수님은 그 완벽한 의를 자격 없는 죄인에게 값없이 전가하심으로 하나님의영광의이름을 높이시고, 사랑과 자비, 은혜의 본이 되셨다.     

4.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과의 단절된 관계를 연결시키시는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화평의사도 (Peace Maker)로서, 본이 되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완벽한 롤 모델이 되어 주셨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모인 교회에게 좋은 모델이 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신약에는 예루살렘 교회를 시작으로, 갈라디아의 교회들, 골로새 교회, 고린도 교회, 빌립보 교회, 계시록에 등장하는 소 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등 참 많은 교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대다수의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이라는 특정한 인물을 통해서 세우셨음을 우리는 사도 행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세운 수많은 교회들 중, 특별히 성경을 통해서 그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라며 소개한 교회가 하나 있다. 그 교회는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이다.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7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완벽한 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이 많은 교회였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거룩함의 부재(살전 4:3) 가 있었고,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서, 교회 안에서 소소한 문제들(살후 2:2; 6:6) 역시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라고 칭찬하였는데, 과연 바울이 모는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 라고 칭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 구절인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은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 살전 1:6-7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자신의 전도팀 (바울, 디모데, 실라)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과 바울에게서 본받은 그 본은 구체적으로 환난 가운데서 말씀을 기쁨으로 받은 자세를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칭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모습은 그들이 환난 속에서 말씀을 기쁨으로 받은 그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한가지 특이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 교회 가운데 드물게 자신들의 동족들로부터 고난을 받는 교회 였다는 사실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 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살전 2:14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듯이, 이방의 여느 교회들과 달리,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신의 동족, 즉 자신의 가족, 형제, 친구, 이웃들을 통해 핍박을 받은 교회였던 것이다. 

이들은 왜 갖은 민족으로부터 이러한 핍박을 받았을까? 

이 독특한 상황은 데살로니가라는 도시가 당시에 갖고 있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데살로니가는 당시 그리스의 여느 식민 도시들과는 달리 로마 제국으로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은 곳이었다. 로마 황제의 이러한 특혜는 그들로 하여금 황제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황제를 숭배할 정도로 존경하고 예배하였다. 그러한 이들에게 나타난 그리스도교, 이 땅을 통치할 평화의 왕 예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가히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종교로 인해, 그들이 로마 황제의 눈 밖에 나는 것이 시간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데살로니가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고된 핍박을 가하였던 것이다 (살전 1:6; 2:14; 3:3-4; 살후 1:4-7).   

그런데, 이러한 핍박 속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고, 이러한 이들의 믿음의 소문이 바울을 포함한 모든 각처에 퍼졌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살전 1:8  

성도가 환난 가운데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것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과연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환난 속에서 기쁨으로 받을 수 있었던 그 근본적인 능력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두가지로 그 상반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의 택하심을 아노라살전 1:4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환난 속에서 기쁨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환난 속에서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시편 1편의 기자의 노래처럼, 오직 하나님의 복을 얻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 안에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을 통해 선택을 받은 백성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올바로 반응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잘못된 반응은 바로 두번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는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살전 1:5

둘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환난 속에서 기쁨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복음이 능력과 성령 안에서 마음에 커다란 확신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누군가에게 이 말이 어쩌면 너무 평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잘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 단순히 복음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에 대한 확신은 복음에 대한 완전한 이해, 절대적 믿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약속과 축복에대한 기대, 감격,그리고 소망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그 말씀을 받는 그 순간에 우리 마음에 담고 있는 복음에 대한 이 확신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복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것을 믿고, 날마다의 삶속에서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며, 기대하고 살아가는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먼저 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가를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극심한 핍박과 환난은 그들로 하여금 날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라보게 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처한 그 극한 고난의 정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 견딜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환난 속에서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복음을 확신 가운데 믿고, 바라며 삶의 한걸음 한걸음을 나아갈 때, 그 복음은 그들로 하여금 고난을 견딜 뿐 아니라, 날마다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날마다 기쁨으로 반응하고, 그것을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이와 같이, 성도는 날마다 스스로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통하여 복음의 확신을 마음 속에 되새겨야 하며, 그 확신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받음으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