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받기 합당하신 예수님

1년 전 쯤, 무슬림 친구와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히브리어 강의 노트를 복사하러 간 곳에서 만나게 됐는데, 그는 나에게 왜 히브리어를 공부하는지 물어 보았고, 그것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서로가 믿는 바에 대해 나누게 되었다. 대화 가운데 가장 핵심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냐”는 것이었다. 서로 성경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다른 시각 차이는 결코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이 메시야 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 일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타종교인에게 예수님이 그저 위대한 성인 또는 선지자로 인식되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다. 그들 마음은 예수님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즉 거듭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어떠한가? 예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우리의 모든 것 되신다. 예수님을 빼놓고는 우리 존재를 결코 정의 내릴 수 없으며,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진다. 예수님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번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주이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우리에게는 매일이 그러한 날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BC 700년 쯤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욱 알아가고자 한다. 

1.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a).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아기, 즉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 예언한다. 이 예언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음으로 정확히 성취되었다 (마태1:18-25).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다. 우리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인간 되심 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성육신(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의 개념은 우리 인간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며, 그 죄를 스스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이 죄를 죄인인 우리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죄가 없으신 오직 한 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어야 했던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인간을 대표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치셨다. 예수께서 죄가 있으셔서 심판 받으신 게 아니라, 죄인인 우리가 이 죄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한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곧,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받으신 징계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그분의 뜻이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하셨은즉…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0). 

2. 예수님은 하나님 이시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이름은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사9:6b).예수님의 첫번째 특징인 “기묘자라, 모사라”는 해석에 따라 “기묘한 모사”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무한하신 능력과 지혜”로 “어떠한 일을 결정’실행 또는 조언”하시는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능력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낸다. 

두번째 단어 “전능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러한 특징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그저 인간에 국한된 분이 아닌 모든 것에 능하신, 즉 능력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세번째 특징인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닌, 그가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또한 영원한 왕국에서 통치하실 메시야로서의 그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특징인 “평강의 왕”은 예수님께서 미래에 평화 가운데 그의 나라를 통치하실 온전한 왕으로서의 모습을 묘사한다. 종합해 보았을 때, 예수님은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영원한 왕국을 다스리실 하나님이시다.  

3. 예수님은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실 것이라 이야기 한다 (사9:7a). 선지자가 말하는 “다윗 왕좌”는 다윗 또는 그의 아들들이 통치한 불완전한 유대 왕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사무엘하7장에 나온 영원한 왕좌를 지칭한다 (다윗 언약).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후7:13). 여기에서 말하는 “나라”와 “왕위”는 그 당시 다윗의 아들들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즉 불완전한 인간이 통치하는 나라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성경이 그의 나라와 왕위는 완전하고 영원하다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말하는 “그”는 메시야, 즉 다윗 왕좌의 영원한 통치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천년 왕국에서 왕의 신분으로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 (요한계시록20). 이는 문자적 성경해석에 따라 이사야서를 전반적으로 해석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예수님의 재림으로 시작될 천년왕국은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주님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기 때문).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사9:7). 이 구절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 사건 전 우리의 모든 질고를 지셨던 모습이 아닌, 7년 대 환란 후에 이 땅에 재림하셔서 의의 통치자로서 세상을 다스리실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묘사한다. 

저자는 또한 예수님의 천년왕국 통치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 (사11:4-9)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더욱 악해져만 가는 지금의 세상과는 달리 그 때에는 온전한 정의와 공의 아래 평화가 있을 것과 주님에 대한 지식이 온 나라를 덮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완전한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이 나라의 왕 되시기 때문이다. 

결론

무능력한 우리를 대신하시기 위해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 하지만, 죽음에서 부활하사 우리의 산 소망이 되어 주셨고, 지금도 구원받은 자들을 그의 크신 능력으로 이끌고 계시며,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그의 나라의 전지전능한 통치자로 반드시 나타나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