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도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는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가장 지키기 힘든 경건 습관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대하여 종교개혁의 기초를 세운 마틴 루터는 분주하면 분주할수록 하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오히려 기도의 시간을 늘려 바쁜 스케줄을 감당한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 말씀 뿐만 아니라 기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키기 힘들지만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일관적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3가지 이유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7)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첫 번째로 경험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관적인 생각을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이 내려놓게 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부드럽고 온유한 심령을 가지게 됩니다. (에스겔 36:26-27, 마태복음 5:5). 그러므로 성경은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장황한 신학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명령의 순종하신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면 우리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도에 대해 자주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만약 하나님께서 전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그분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신다면 왜 굳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간단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게 당연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방법이 틀려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용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혹은 불순종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단순히 순종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기도는 “겸손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이 땅에서 해야 할 지속적인 영적 싸움은 겸손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 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6-7)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에서 신자가 순종해야 할 두 명령과 하나님께서 이루실 두 가지 약속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 순종해야 할 두 명령은 “겸손하라”와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두가지 약속은 “너희를 높이시리라”와 “너희를 돌보심이라 ”입니다. 이 말씀에서 가르쳐 주는 간단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자는 자신의 염려를 다 주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 염려를 맡기는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함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도움을 구하는 자기 항복이지요. 그래서 사도바울도 빌립보서 4: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 방법은 곧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결코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케 하여 끊임없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이지요. 기도함으로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의 옷을 입어봅시다.

마지막으로 기도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관된 기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응답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의 음성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에 응답이 와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그분의 음성을 듣는 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무분별한 은사 주의의 영향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기도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그분의 말씀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0: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10:27). 

양이 목자의 음성을 천성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은 양들은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 본문이 직접적으로 기도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줍니다. 그것은 신자의 구원이 우리의 “identity” 곧 “신분” 자체인 것처럼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이제는 “짐”이 아닌 우리의 “신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8:15 절에 신분이 바뀐 하나님의 자녀의 증거가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서 자녀의 마음을 알기 원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친밀한 소통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지금 계신 그 자리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어떨까요? 

마스트스 신학교에 제학 중이며 현재 워싱톤에 소재한 메시야교회에서  EM/Youth Pastor로 섬기고 있습니다. 아내 Jane과 사이에 아들 Micah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