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했을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셨나?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출 21:22)

법규를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

연기 자욱한 시내산에 여호와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다(출 19:18). 온 산이 크게 진동하고 나팔 소리가 점점 커졌고, 두려움이 극에 다다른 시점에, 마침내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19-20절). 하나님이 임재하신 산에는 백성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고 심지어 몸을 성결하게 한 제사장도 경계를 넘을 수 없었다(23-25절). 백성들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 자욱한 산의 연기를 보며 두려워하며 떨었다(출 20:18-21).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든 죄 많은 그들을 치실지도 모를, 엄중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그들을 압도했던 것이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출 21:1). 하나님은 백성이 따르고 지켜야 할 계명을 하나하나 내려주셨다. 본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갈등, 다툼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관한 계명이다. 출애굽기 21장 12절부터 시작하는 이 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구절 피해자 범행 형벌
*12-13절 사람 살인 사형
14절 부모 폭행 사형
16절 사람 인신매매 사형
17절 부모 저주 사형
18-19절 사람 폭행 벌금
20절 노예 살인 사형
*21절 노예 폭행 사형 면제

*12-13절 예외: 고의로 죽인 경우가 아니면 도피처로 도망 가능

*21절: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에 손해 배상하지 않음

각각의 상황마다 피해자가 있고(사람, 부모, 노예 등), 가해 정도가 있으며(살인, 폭행, 납치와 매매, 저주), 그에 대한 합당한 판결이 주어진다(사형, 벌금, 형벌). 일반적인 룰은 사람을 죽이면 사형, 다치게 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금형이다. 이 법칙을 토대로 다음의 특수 상황을 생각해보자.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다면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출 21:22)

싸웠던 사람은 두 남자고, 싸우는 도중에 한 남자가 다른 쪽 남자의 아내, 그것도 임신한 여인을 친 것이다. 피해를 본 사람은 둘이다. 임신한 여인과 그 여인의 태에 있는 아기.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할까? 두 사람을 폭행한 가해자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까?

22절 본문은 조금 혼동을 줄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낙태”는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가지고 볼 때 ’우리말 성경’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싸우다가 아이 밴 여자를 다치게 해서 낙태를 했으나 그 여자가 다치지 않았다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정한 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한 재판관들이 결정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피해자는 임신한 여성 하나뿐이다. 산모는 폭행치상을 당한 것이므로 재판관들이 결정한 값에 따라 손해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피해자 태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법이 보호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태아를 죽인 것은 사람을 죽인 것으로 치지 않는 것인가? 노예를 죽여도 사형이고, 부모를 폭행만 해도(심지어 저주해도) 사형인데, 태아를 죽인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단 말인가? 태아는 아직 사람이 아닌 것인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하나님이 덜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섣불리 답을 내리기 전에, 빨리 영어 성경(NASB, ESV)을 살펴보자. 

If men struggle with each other and strike a woman with child so that she gives birth prematurely, yet there is no injury…(NASB)

when men strive together and hit a pregnant woman, so that her children come out, but there is no harm…(ESV)

번역하자면, 두 사람이 싸우다가 한 사람이 임신한 여성을 쳤고, 그 결과 그녀의 아기가 밖으로 나오게 되었으나(조산) 큰 상해를 입지 않았을 경우를 말한다. 더글라스 스튜어트의 말에 따르면 이 본문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The New American Commentary: Exodus).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쳤는데, 그 여인이 앞으로 아기를 낳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상해를 입었다면…

혹은 그 여인이 폭행의 결과로 아기를 조산하였는데 산모나 아기에게 큰 문제가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어떤 해석을 따르든지 산모와 아이 모두 죽지 않고 폭행만 당한 상황을 가리킨다. 이 경우 폭행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재판관이 결정한 손해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낙태”가 ‘자연 분만 시기 이전에 태아를 모체에서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산”으로 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이렇게 봐야만 사람을 죽이면 사형, 다치게 하면 손해 배상이라는 일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게다가 뒤따르는 말씀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3-25)

산모든 태아든 ‘다른 해가 없으면’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벌금을 내야 하지만, 만일 위에서 언급한 피해가 있으면, 그대로 갚으라는 법이다. 생명은 생명으로, 즉 살인은 사형으로 갚고, 나머지 상해는 상해로(그에 해당하는 벌금으로) 갚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그 배 속에 있는 태아도 사람으로 보시고, 일반적인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계신다. 태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고, 태아에게 충격을 가해 상해를 입히는 것은 폭행치상이다.

하나님은 태아를 사람으로 보신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

왜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할까? 왜 하나님께서 태아를 어떻게 보시는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법을 적용하라고 명령하셨는지 아는 것이 중요할까?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짜를 기점으로 내일(4월 11일), 대한민국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현행법상 산모나 배우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혈족이나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이 산모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임신 24주 이내일 경우에만 산모와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모자보건법 제14조).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형법 제269조). 불법 낙태 수술을 해준 의사 역시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형법 제270조). 이 형법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나아가 모자보건법 개정도 요구한다).

사람들은 흔히 낙태죄를 둘러싸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 구도라고 말한다. 이 단순 구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급진적인 이들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국가가 통제하려는 발상”이라고 말하면서 “여성의 건강권뿐 아니라 인권 침해”라고 말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하는 이들 가운데 이런 여론에 쉽게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은 진중한 질문을 남긴다.

누가 법을 제정하는가? 누구에게 권리가 있는가?

시내산에서 모세는 백성의 장로들과 모여 폭행죄를 어떻게 다룰지 의논하지 않았다. 백성의 투표를 받거나 여론을 수렴한 것도 아니다. 백성과 제사장 모두 경계선 밖으로 물러가 “우리는 여기 있을테니 모세 당신이 하나님께 받아 그 계명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출 20:19).

법은 하나님이 주셨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서 법을 직접 제정하여 그 백성에게 내려 주셨다. 모세는 조금도 덧붙이거나 누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이 낙태죄를 다룰 때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두고 저울질하기 쉽다. 보수적인 사람은 태아의 생명권에 손을 들어주고, 진보적인 사람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먼저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야 한다. “자기 결정권”, “생명권”, “건강권”, “인권”이라고 말할 때의 그 “권리”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거슬러 올라갈 줄 알아야 한다. 여성의 권리나 태아의 권리 이전에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모든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이 없다면 주장할 근본적인 권리는 없다. 가령 무신론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진화론에 따르면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우연히 발생한 생명체들이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살아남았다면 인권은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가? 기껏해야 현대인들이 상호 간에 인정하기로 한 약속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엄청나게 강력한 사람이 나타나 그 약속을 파기하면 무엇을 근거로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암흑에서 우연히 발생한 세상에서 도덕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인권을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처음과 나중이시며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모든 권리를 가지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우리에게 내려주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피조물이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은 생명으로, 상해는 상해로 갚으라는 엄한 명령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임의로 생명을 어떻게 할 “권리”는 없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태아는 사람이다.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살인이다. 여성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처럼 생명과 생명을 두고 씨름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태아를 죽이는 것을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두는 것은 정말이지 누가 법 제정자인지 잊어버린 것과 같다. 소위 “자기 결정권”이라는 말로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높여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포장을 해도, 하나님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생명을 죽여도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생명을 죽여도 좋다는 결정권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태아든 성인이든 사람을 죽이면 사형이라고 말씀하셨다.

여성의 재생산권, 건강권, 자기 결정권, 행복 추구권 모두 하나님의 권리에 종속되는 권리다.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권리다. 그러므로 언제나 질문은 “하나님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법을 제쳐두고 자기 생각에 따라 누구의 권리가 어떻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소위 “자기 결정권”이라는 권리가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라고 누가 전제하는 것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95%의 아기를 갖고 싶지 않아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인가?(근친상간, 강간, 건강의 위협 문제로 낙태하는 경우는 5% 미만이다). 여론에 휘둘리는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인가?

로마서에는 흥미로운 말씀이 있다. 온갖 불의에 대한 설명 이후에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하나님은 이미 정하셨다. 온 우주의 제정자이자 재판장께서 이미 법을 확정하셨다.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니 그럴 수 있다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이 법을 무시하고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말하는 건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특별한 상황을 겪고 있는 여성을 불쌍히 보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것, 그들을 돌아보고 구제하는 것은 아름답고 선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일에 더 힘써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크고 위대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일어나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후 11:14). 기억하자. 인류의 패망은 단순히 따먹지 말라고 한 과일 하나를 따 먹은 단순한 불순종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그 단순한 행위가 하나님의 권위 위에 올라가 하나님이 세운 법을 무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