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입니다 2

지난주에 이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가족 공동체적인 측면을 더 생각해 보자.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녀로 삼았기 때문이다(요 1:12). 즉 입양하신 것이다.

오늘날의 입양도 비슷하지만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로마 입양 문화에서 핵심은 완전히 새로운 가족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입양 전의 가족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법적, 재정적 관계를 끊어야 했다. 그렇게 입양된 자는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믿는 자들도 동일하다. 과거 우리의 아버지는 마귀였다. 그래서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이었고 진노의 자녀였다. 죄와 율법 아래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거짓과 속임, 다툼과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이 관계의 끝에는 고통과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실 때 이 모든 것들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이 되었다. 더 이상 과거의 관계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실 과거의 관계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관계에 매여있지 않다.

그럼 이제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직접적인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에베소서 2장 말씀에서 봤던 것처럼 구원받기 전의 우리는 “하나님도 없는 자”(엡 2:12)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과 우리 사이에 있던 죄로 인한 분리는 사라졌다. 더 이상 우린 하나님의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이다. 그분의 보호 아래 있다. 어떤 것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롬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 놀라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의롭다고 하신 자들에게 적용된다(롬 8:33). 그들을 위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셨다(롬 8:32).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시고(롬 8:37),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롬 8:39). 아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이 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이런 아버지시다. 사랑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롬 8:32). 자녀로서 우리는 이것을 기대할 수 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자녀에게 가장 좋을 것을 주신다고 확신할 수 있다(마 7:11).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이 약속되어 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놀랍지 않은가! 원수인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모든 특권을 누리게 되었을까!

살후 2:13-14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해주신 일에 감사하며 기업을 이어받을 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애초에 각 사람을 자녀로 입양하시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생각하시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부르셨다.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 이런 관계의 원리를 잘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요한일서에서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구원은 관계의 회복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로 인해 사람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요한은 ‘사귐’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의 관계, 교제가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회복되는 것이 구원에 있어 중요한 목적이다.

이 관계는 영적인 가족의 관계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녀들, 아비들, 아이들, 형제들,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께로 난 자들과 같은 표현을 계속 사용한다.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를 가족 안에 있는 사랑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 사랑의 관계의 시작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함께 자녀된 형제 자매들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요한의 단순 명료한 논리다.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9-21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구원 받은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다.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가 받은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랑을 베푸신 아버지 하나님을 세상 속에서 선포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족으로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한 가족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바라봐야 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관계를 만들고 우리의 관계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 기초하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성경이라는 책을 공부하는 독서 토론 모임이거나, 음악 밴드거나, 청소년/대학생 동아리거나, 사회 봉사 단체 혹은 동호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모여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족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일을 목적으로 모인 것이 가족이 아니다. 사랑의 관계이고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그 사랑을 닮아 그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한다.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의 모습이 많이 달라진 현재에도 여전히 가족은 함께 하기를 추구한다. 그렇게 함께하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면 구원 받은 자는 다른 형제 자매와 함께 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는 부르는데 그분의 다른 자녀들과는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고, 사실 정말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이신지를 고민해봐야할 문제다.

지면 관계 상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이런 측면에서 지역 교회에 속해 있지않는 성도들의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구원받은 자들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된다.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 넓은 의미에서의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지역 교회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보이지 않는 교회보다 각 지역에 있는 보이는 교회를 의미할 때가 훨씬 많다. 그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명령이 성경에는 가득하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지역 교회에 속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

초기의 교회는 모이기에 힘썼다(행 2:46).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 세대가 지날 때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격려했다.

히 10:24-25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함께 모여 사랑과 선행을 행하고 그것을 격려하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우리가 계속해야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하나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가족이라고 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어려움을 주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한다. 갈등이 있으면 해결하려고 하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같으면 안보고 말 일도 가족이기 때문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적인 가족도 비슷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아직은 죄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자들이기에 우리 사이에도 관계의 어려움은 생길 수 밖에 없다. 때로는 누군가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순히 성향의 차이가 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것이 죄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다. 내가 누구보다 더 인정을 받아야 하거나 더 높은 곳에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잠깐 캠프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잠깐만 참으면 앞으로 안볼 사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된 가족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계속해서 하나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평화롭고 원만하며 따뜻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죄는 여전히 우리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멀어지는 것도 성경적인 해결은 아니다. 성경적인 해결은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이다(엡 4:2). 그 핵심에는 그리스도 예수님 마음 곧 권리를 당연히 내가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있다(빌 2:5-6). 서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뜻을 같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다.

당신이 구원받은 자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 아버지만 계신 것이 아니라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또한 함께 형제요 자매된 많은 믿음의 가족들이 있다. 서로 다르지만, 마음으로 하나 되어 한 아버지를 위해 살아간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요일 4:7).

Grace to Korea 의 자문 목회자,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