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입니다 1

구원은 일차적으로 ‘개인’적이다.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라며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느냐”는 것이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좀 진부한 질문이 되기도 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기에 자주 들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후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느냐가 최후에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에 물으실 질문은 “너희는”으로 시작하지 않고 “너는”으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위의 사람들의 믿음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 역시 은혜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라는 말이다. 부모의 믿음 혹은 자녀의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을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생각해도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님이 누구든 구원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도 “내가”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원은 일차적으로 개인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할 것을 작정하시면서 세우신 계획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라는 사람을 구원하시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인 교회로서도 구원을 하셨고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에베소서 2장을 처음부터 읽어 보면 이러한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바울은 2장 1-10절에서 구원의 개인적인 측면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허물과 죄로 죽었다(1절). 전반적으로 그런 상태였고 아닌 사람도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상태였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고(2절)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랐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선포되었다(3절).

3절까지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4절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지 알 것이다. 4절이 “그래서 하나님이”로 시작했다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이 되었겠는가. 진노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에 따라 보상하신다면 오직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4절이 “그래서 우리는”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3절까지 말씀이 묘사한 상태에 있는 우리가 어떤 선을 행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4절은 “그러나 하나님이”로 시작한다.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긍휼이 풍성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그런 하나님이 비참한 상태의 우리를 바라보셨을 때 우리가 바랄 수도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은혜다(5절).

이것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가 계속해서 선포된다(7절). 또한 이렇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구원에 대해 마치 그것이 자신의 어떠함이나 노력으로 얻어낸 것처럼 자랑할 수 없다(8-9절). 다만 이렇게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꼐서 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한다(10절).

여기까지만 읽어도 구원 받은 자들이라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에 감동할 수 밖에 없다. 당연하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이다. 그런데, 여기도 아직 끝은 아니다. 11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면서 다시 독자들을 과거의 “그 때”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개인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공동체 “무리”를 언급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11절)

이 편지를 받는 에베소인들은 이방인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민족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들의 구원 받기 전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12절)

이들은 약속의 메시아와 관계가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고 따라서 아무 참된 소망도 가질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그들의 상태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셨을 때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4절에서 구원이 개인에게 상상할 수 없는 반전을 이루었던 것처럼 13절은 구원 받은 무리에게도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3절)

12절에서 ‘밖’에 있었던 것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14절부터 바울은 ‘너희’가 아닌 ‘우리’를 사용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15절)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는 원수된 것이 있었다(14절).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했다.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하나가 되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거나 유대인이 이방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 둘이 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회목하게 되었다. 이것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 일이다.

바울은 이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절)

더 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단순히 외인이거나 손님이 아니다. 구원받은 자는 모두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더 나아가 구원받은 자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다. 구원 받은 자들은 단순히 같은 신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족이 된 자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요 1:12)라고 부른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한 아버지의 자녀들인 것이다. 예수님도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고 말씀하셨다. 구원 받은 자들은 가족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가장인 아버지로 둔 형제 자매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정하고 선택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지 구원받은 자라면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된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신 것은 정말 감사한 데 딱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거나 이 사람들의 형제 자매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천국에만 가게 해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구원받은 자는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가족의 일원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갈 3:28).

어떠한 차별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 된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큰 감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별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바울 당시의 상황에서는 유대인들, 자유인들, 남자들이 그런 손해보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굳이 다른 사람들과 가족이 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즘같이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는 더욱 그렇다. 혼자가 편하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영적인 가족이 되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이고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의 구원 계획에 포함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원하셨다. 구원에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부분만 내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구원의 모든 측면에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다음 글에서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우리가 누리는 특권과 가지고 있는 책임에 대해서 알아보며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

Grace to Korea 의 자문 목회자,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