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목회자 콘퍼런스 참가 후기)

John MacArthur is faithful because God is faithful

2019년 3월 5일부터 8일까지 미국 LA 썬 밸리에 위치한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셰퍼드 콘퍼런스(Shepherds’ Conference)가 열렸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4,500명이 넘는 참석인원과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 많은 음식과 섬김, 좋은 신앙 서적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선포되는 등 모든 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하나님의 은혜를 흠뻑 맛볼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이번 콘퍼런스의 주제는 “충성”(faithful)이었는데, 최근에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목회 50주년을 맞이한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콘퍼런스를 호스팅한다는 것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콘퍼런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 저자 및 강사가 대거 참여했는데, 싱클레어 퍼거슨, 리건 덩컨, 조엘 비키, 알 몰러, 마크 데버, 보디 바우컴 등 국내에 알려진 사람도 많이 있었다. 말씀 주제는 모두 “충성”과 관련되어 있었는데, “말씀 선포에 충성하라”, “기도에 충성하라”, “비판을 충성스럽게 다루라”, “전도에 충성하라” 등 목사가 신실하게 임해야 할 여러 가지 의무와 역할을 강조하는 말씀이었고,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이 목사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을 직접적으로 고무시키고 도전하며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는 내용이었다.

50년, 어떻게 50년간 큰 문제 없이, 구설수 없이 신실하게 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말씀을 가감 없이 충성스럽게 선포할 수 있었을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목사들이 하나둘 사역 현장에서 낙오되고 사라지는데, 어떻게 50년간 충성스럽게 목사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을까? 이제 막 5년의 목회를 한 필자가 느끼기에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기간 목회를 했고, 작은 규모의 시골 교회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도전과 고뇌가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씀, 기도, 전도, 봉사, 섬김, 심방 등을 충성스럽게 해내면서, 사랑하는 성도, 섬김의 대상인 그들에게서 나오는 비판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교회 밖에서 당하는 핍박이나 억압을 이겨낼 수 있을까? 교회에서 일어난 모든 일, 성도의 영적 상태의 책임이 하나님 앞에서 내게 주어졌다는 무게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앞에서 한없이 성도와 하나님께 죄송스럽고 미안한 이 쓰디쓴 죄책감을 어떻게 삼키며 살 수 있을까? 항상 제자리에 있고,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역을 바라볼 때, 그래서 크게 낙심하여 자신과 자신의 사역이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어떤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마지막 날, 마지막 말씀 시간에 존 맥아더 목사님은 자신을 가리켜 “살아있는 예시”라고 말했다. 무엇에 대한 예시인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의 예시이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자신이 50년 동안 변함없이 충성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를 오직 하나님께서 신실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로 목사는 역삼각형의 피라미드 가장 밑바닥에 꼭짓점에 위치한 사람처럼 느낄 때가 있다. 모든 사역의 무게, 영혼의 무게를 홀로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교회의 터이자 그가 딛고 서 있는 토대가 변함없이 신실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모든 양을 책임져야 하는 목자로서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지만, 그럴 때 우리에게 신실한 목자 장이 계신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다.

교회의 터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교회의 목자 장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목사는 단지 충성스럽게 맡겨진 일을 하면 된다. 하나님은 맡기신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묵상한 적이 있다. 거기엔 어떤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타국에 갈 때 자기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다(마 25:14). 그가 어떻게 자기 소유를 분배하여 맡겼을까? 이 부분은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재능대로 맡기신다

각각그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5)

주인은 각각 종의 재능대로 자기 소유를 맡겼다. 주인은 종이 감당할 수 없는 달란트를 주지 않았다. 각각의 종이 가진 재능을 잘 알았고, 그에 맞게 달란트를 분배했다. 

종종 자신이 맡은 사역의 규모나 영향력에 실망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 맥아더 목사님의 교회에 내가 부임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규모의 사역과 사람들을 감당할 재능이 없다면, 아마도 엄청난 책임의 무게에 압도되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도 성도에게도 그것은 악재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크고 위대해 보이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역의 결과물을 원할 때가 많다. 자신의 재능은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주인은 종을 잘 알고 있다. 각각 얼만큼의 재능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맡기지 않는다. 두 달란트를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지 않고, 한 달란트만 맡기지도 않는다. 정확한 양의 책임만 부과한다.

이것은 충성스럽게 목사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모른다. 비록 지금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성도의 수가 적고, 앞으로도 계속 그 정도 규모의 성도를 하나님이 맡기신다 해도,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나의 자질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나에게 그 정도를 맡기셨다면,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니 맡긴 자들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인 것이다(고전 4:2).

빠르게 성장하지 않아서 낙심할 필요가 없다.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정말 자신의 죄가 있어 생긴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가 충성스럽게 할 일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고전 3:6).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이상을 낼 수 없고, 하나님은 맡기신 것 이상을 찾지 않으신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가지 더 배울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종이 맺은 결과물에 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마 25:16-19)

달란트를 받은 종은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받은 즉시 바로 나가 장사를 한다. 그리고 각각 받은 것만큼의 달란트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대로 묻어 두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다섯 달란트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는 두 달란트를 남겼다는 것이다. 왜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다섯 달란트를 남길 수 없었을까? 장사가 정말 잘 된다면 밑천을 훨씬 웃도는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현실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비유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이야기로, 분명한 목적에 따라 구성되었다. “충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말씀하셨고, 이는 충성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이 결산할 때 종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 이상을 찾지 않으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것 이상을 찾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 이상을 얻을 수 없다. 이 중요한 사실은 매일 충성스럽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행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확히 얼마를 우리에게 맡기셨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돌보고 있는 영혼들과 섬기고 있는 영역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충성스럽게 일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성 그 하나를 요구하신다. 결과는 그분이 맡기신 것만큼 주어질 것이고, 결산 역시 그분이 맡기신 것에 한하여 이뤄질 것이다.

지금 가정에서 20여 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하고 있는가? 조바심낼 필요가 없다.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한두 명이 이탈하여 낙심되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맡기신 만큼만 찾으실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얼마만큼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니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게 맡기신 영혼을 돌보고 먹이고 인도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 300여 명의 성도를 돌보고 있는가? 과도기에 이르러 성장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정체기에 이르러 쇠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가?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 물론, 지혜롭게 결정하고 인도해야 하지만, 교회의 운명이 당신의 손에 달린 것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해도, 시스템을 구축해도, 이벤트를 만든다 해도 당신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 하나님은 얼마나 교회가 세련되어졌는지, 체계적인 형태를 구축했는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숫자를 불렸는지를 가지고 당신을 판단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맡기신 것 이상을 찾지 않으신다. 그러니 지혜롭게 판단하고 좋은 결정을 세우되 현재 주어진 모든 기회에 충성하라.

3.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이다

마지막으로 주인이 충성스러운 종을 칭찬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고(마 25:20-23)

한 글자의 차이도 없이 주인은 두 충성스러운 종을 칭찬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둘 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들에게 맡길 일이 더 많고 크기 때문이다(“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보라, 주인은 맡긴 것 이상을 찾지 않는다. 다섯 달란트가 두 달란트보다 주인에게 더 유익이 된다고 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이를 편애하지 않으신다. 주인은 종에게, 다만 “충성”을 요구할 뿐이다. 충성했다면 그걸로 주인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이것이 아닌가? 주인의 즐거움을 우리가 즐거워하기 때문에 이 소명의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닌가? 주인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맡은 일에 충성스럽게 임한 것이 아닌가? 몇 달란트가 내게 주어졌든지 주인의 기쁨이 되기 위해 맡겨진 그것에 충성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쉽게 또 자주 이 분명한 목적을 잊고 내게 주어진 달란트의 양을 세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마치 그것에 주인의 기쁨이 모두 달린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것은 내 기쁨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주인은 나의 충성을 기뻐한다.

여기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세다가 실망한 종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라. 그는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췄던 자다(마 25:18).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마 25:24-25)

이 종은 주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종이 생각할 때 주인은 “굳은 사람” 혹은 “완악한” 사람이다. 종에게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부과했다는 것이다. 심지 않은 데서 열매를 내놓으라고 하고, 헤치지도 않고 모아서 달라서 요구하는 불량배 같은 존재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금 한 달란트의 양이 그리 적지 않은 양이었음에도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의 양에 실망했던 것 같다. 이 정도를 맡기고 뭔가 요구하는 것은 불량배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맡겨진 것에 충성하기보다는, 맡겨진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종은 얼마를 맡기든 그것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자기의 책임을 잊어버렸다. 맡기신 것만큼 찾으실 것이니 자신이 할 일은 다만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다섯 달란트의 꿈에 부풀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신에게 두 달란트는 맡겼어야 한다고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재능에 딱 맞게 주인이 준 달란트지만,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종으로서 자기 임무는 다 잊어버리고,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일하지도 않고, 맡겨진 달란트를 땅에 묻은 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결산의 날을 맞이했다.

우리는 이 마지막 종을 딱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때로 우리의 모습에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이 종의 씁쓸한 모습이 보인다. 하나님이 현재 내게 맡겨주신 것에 실망한다. 나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겨우 이 정도를 내게 맡기신단 말인가? 주변에 제법 성장하고 있는 교회를 보면 더 실망스럽다. 똑같이 충성스럽게 일하는데, 왜 저곳은 부흥하고 나는 쇠퇴하는가? 아무리 노력한들 내가 남길 수 있는 달란트가 고작 한 달란트라면, 그것이 나에게 얼마만큼 성취감을 주겠는가? 그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그만 교회에서 20-30명 되는 성도를 돌아보다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정말 내가 생각한 사역의 전부인가? 그것이 정말 생산적인가? 

이런 생각이 점점 마음을 사로잡으면 어느새 내가 맡은 사역은 땅에 묻혀 버린다.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어느새 사역은 나의 사역이 되었고, 현재 주어진 모습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 참 매정하고 사악한 분이십니다. 나에게 고작 이 정도를 맡겨놓고 충성을 요구하시다니요…정확히 이 종의 모습이 아닌가?

주인은 종을 단단히 꾸짖는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26-30)

주인은 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부른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길 원했지만,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다. 주인은 종의 핑계가 가당치 않다고 말한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종이 말한 대로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완악한 불량배라면, 그렇다 해도 그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

자기 돈을 땅에 묻을 것이 아니라 취리하는 자들, 쉽게 말해 오늘날의 은행 같은 곳에 보관했다면,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를 얻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적어도 그 정도의 노력은 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진짜 주인이 완악한 불량배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 정도 충성을 해야 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할지라도 맡은 자에게 “충성”은 반드시 요구된다(고전 4:2).

충성하지 않는 것의 결과, 악하고 게으른 삶의 결과는 심각하다. 그가 가진 것조차 빼앗기게 된다. 더 이상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 주인을 위해 일할 기회가 없다. 그에게 주인은 아무것도 맡기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제 주인에게 쓸모없는 존재다. 밖으로 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간다. 적은 것에 충성하지 못한 것의 결과는 이렇게 비참하다. 충성,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맡은 것이 작든 크든 말이다.

결론

존 맥아더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50년간 신실하게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미쁘시고 신실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종에게 그 재능에 따라 은사를 나눠주셨고, 먹이고 돌보고 보호할 양들을 불러 모아 주셨다.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그리스도께 올 수 없다(요 6:44).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주신 것 이상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맡겨진 것에 대해서만 평가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기 종에게 오직 “충성”을 요구하신다. 현재 얼마나 맡겨졌던지, 앞으로 얼마가 더 맡겨지든지 상관없이, 주권 아래 하나님이 허락한 모든 기회와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공중에서나 개인적으로나,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전하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가 현재 충성하고 있다면 말이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뚜렷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로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 모든 시간과 모든 사람에게 편재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자. 지금 주어진 것 하나하나에 충성을 다하자. 우리 은혜로운 주인은 우리에게 오직 “충성”을 요구하신다.

창세 전에 나를 택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어 그 아들의 피로 나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사신이 되어 복음의 새 일꾼으로 고귀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인가! 주님이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그 보배로운 일을 맡기셨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의 즐거움을 위해, 정말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일에 오직 충성하자.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우리 주님이 약속하셨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6)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