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낙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가?

성경: 출 21:22–25; 시127:3

Code: B140606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전국 최대의 낙태 의료원인 ‘계획 부모’ (Planned Parenthood, 미국의 합법적으로 낙태를 시술하는 비영리 단체)가 보낸 편지에 관한 여러 기사를 보았다. 여러 가지 부적절한 신앙의 흐름을 대변하는 ‘부모 계획의 성직 옹호위원회 (The Parent Parenthood ‘s Clergy Advocacy Board)’의 구성원들이 작성한 이 편지는 낙태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신앙에 기초해서 금지하거나 적용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사단적인 거짓말에 반대하는 신자들의 커지는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보태어 성경이 실제로 낙태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성경에 그 단어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자궁에서 어린이를 죽이는 사악한 죄에 관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침묵하지 않는다. 사실, 이 끔찍한 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성서적 원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은 임신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 스스로 모든 삶을 창조 하신다. 시편 127: 3은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 말한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하나님은 자녀를 가지는 일을 주권적으로 주관하셨다 (참조, 창 16 : 2, 17:16, 20:18, 25:21, 삼상 1 : 19-20, 룻 4:13).

바울이 아덴에서 아레오바고(Areopagus)의 철학자들에게 전한 강력한 설교 중에 사도는 하나님의 창조와 주재권을 선포한다. 사도행전 17장 24절에서 바울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말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 하셨으며 현재까지 계속해서 창조주이시다. 사람을 포함해서 그 어떤 것도 그의 창조와 상관없이 지어진 것은 없다(요 1: 3).

바울은 그 점을 밝히기 위해 계속 말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 17 : 25-28)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께서 멀리서 조정하신 일이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계신다. 다윗 (시 139 : 13-16)과 욥(욥 10 : 8-12)은 모태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만드신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각 사람을 놀랍게 만드셨는지 묘사했다.

기형이나 장애로 태어난 것이 생물학적인 사고가 아니다. 출애굽기 4:11 절에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라고 하셨다. “우리 존재의 모든면 – 불구나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목적에 따라 주님께서 만드셨다(요 9 : 3). 모든 창조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 

하나님 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 하셨다는 창조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분명하다(창 1:26). 이것은 인류를 나머지 창조와 구분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자신의 속성을 주셨다. 소위 공유적 속성에는 인격과 같은 관계 맺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선택하고 느낄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 잉태를 시작한 후에는 우리가 단순히 생물학적 배열이나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조직이 확장된 덩어리가 아니다. 우리의 피부, 뼈 및 근육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단지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그릇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인지하고, 신뢰하고, 소망하는 것등 사람이 되는 데 기본이 되는 모든 것이 자궁 속에 있다.

그리고 형상을 나르는 사람의 결과로 태어난 각 사람은 타고난 창조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인자와 그 옹호자들이 살인죄에 대해 가능한 가장 엄격한 형벌을 선고하는 이유이다. 사형은 주요한 하나님의 율법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 : 6).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미지로 창조했기 때문에 신성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돌보시는 대상이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약하며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공급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돌보도록 부름을 받았다. 시편 82 : 3-4절은 신자들에게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라고 분명히 명령한다.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보다 더 약하고, 더 무력하고, 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곳은 주님께서 자궁을 그 어린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하셨는지를 보여주는 모든 놀라운 의료 현상을 설명하기에 공간이 모자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어머니 안에 있는 아이들을 보존하고, 보살핌을 받고, 보온하고, 건강하게,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리고 많은 어머니가 자궁이 보호하고 있는 곳을 침입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끝내는 것은 큰 비극이다.

주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하시면서 자녀가 아직 자궁 속에 있을 때 아이에게 가하는 피해에 관한 조항을 주셨다. 출애굽기 21장은 확실하게 말해 준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2-25)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유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낙태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좋은 뉴스

좋은 소식이 있다. 가장 좋은 소식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지 않고 여기서 끝내는 것이 옳지 않다.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가 가능하며 낙태의 죄를 대신할 수 있다. 주님은 주님의 은혜를 보이고 나누어 주시기 위해 가장 극악한 죄의 행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죄악 중에 가장 포학한 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가 가장 좋은 예이다. 유다와 빌라도와 로마인과 유대인들은 역사상 유일한 전혀 죄가 없으신 사람을 살해 한 죄를 지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그 죄를 통해서 일하셨다.

낙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참담한 비극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유효하다.

저는 하나님이 살해당한 유아를 구속하시고, 그분의 은혜의 손을 뻗어 그 어린아이들을 자신에게 데리고 오는 것을 확신한다. 두 가지 중요한 구절이 그 점을 분명히 한다. 첫 번째 것은 시편 22 : 9-10이며,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여전히 그의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을 때에도 그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그가 사무엘하 12장 23절에서 말한 말로 자기 자신 아이의 죽음에 대해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는 죽은 유아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영광으로 인도한다..

또한, 낙태한 어머니를 용서하신다. 그들이 매일 죄를 되돌아볼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죄의 씻음을 받고 공의로운 심판을 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귀중한 생명을 죽인 낙태를 시술한 의사는 그들이 범한 죄의 대가를 죄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은 극도로 자비로우셔서 이 용서는 이 무서운 대량 학살을 범할 때 사소한 역할을 한 모든 사람에게까지 적용된다. 매일 낙태로 살인을 돕는 산부인과(낙태 시술소) 간호사와 상담자, 낙태를 합법화하기 위해 싸우는 선거 운동가, 로비스트와 정치인, 낙태를 조장하고 장려하는 언론인, 연설자와 연예인, 그리고 자녀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지 않은 남편과 남자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낙태가 끔찍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죄악이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 회개한 죄인을 기꺼이 용서해 주신다. 그것이 모든 신자의 기쁜 고백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훨씬 더 크다.

성경은 낙태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나? 성경은 낙태에 대해 직접 그리고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겪었던 죄책감과 수치심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구속으로 회개한 거짓말쟁이들과 도둑들과 주정꾼들과 간음자들과 동성애자들 그리고 심지어 살인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용서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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