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

지난 목요일은 Valentine Day 였습니다. 이 날이 되면, 제게 어김없이 떠오르는 특별한 Valentine Day가 있습니다. 그날은 어느덧, 1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2001년의 일입니다. 

이른 오전,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공군 비행장의 신참 헌병으로 출입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저는, 여느 날 아침처럼 부대를 찾아오는 택배 트럭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대 입구에 트럭이 멈춰서고, 물건이 하나, 하나 내려지는데 그 중에 커다란 궤짝이 하나 눈에 들어 왔습니다. 마치, 영화 케리비안 해적에나 나올법한 나무로 된 커다란 보물 상자였는데, 그 모습이 하도 특이해서 함께 근무하던 선임병들이 그 상자를 살펴 보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쯤 되면,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무서운 폭탄 테러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스토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처럼 그렇게 차갑지 만은 않습니다. 선임들이 그 보물 궤짝에 다가갔을 때 그것에서 발견한 것은 낯익은 저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상자는 사실, 지금 네 명의 아이의 엄마가 된, 당시 21살 앳된, 제 아내가 보낸 초콜렛이 가득 담긴 발렌타인 선물이었습니다. 군에서 고생하고 있을 남자친구를 생각하여, 선임들과 함께 나눠 먹을 초콜렛을 큰 상자에 담아 보냈던 것입니다. (Grace to Korea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깨알 자랑입니다…;; )  

사실, 이곳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Valentine Day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Valentine Day는  주로 남자가 여자친구, 아내, 혹은 어머니에게 장미꽃과 같은 낭만적인 선물을 주는 날입니다. 이러한 미국 문화 속에 살다 보니, 저 역시 이제 더이상 이전과 같이 Valentine Day에 받을 초코렛을 기대하기 보단,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장미 한 다발을 사기 위해 가까운 마트에 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마트에 들어서면, 이내 40대를 근접해 가는 남자들에게만 들린다는  “그 소리가”  귀를 맴돌기 시작합니다…  

“이 꽃들은 금방 시들텐데…”  

아무리 꽃이 아름답고, 포장이 잘 되어 있어 보여도, 결국 한 주 후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게 될 꽃을 장래(?)를 떠올리니 꽃을 쉽게 손에 들지 못하는 제 자신을 이내 발견합니다.

그렇게 아내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남편의 사랑의 표현이 가진 가치보다, 곧 말라 비틀어져 버려질 꽃의 현실을 염려(?)하는 가운데, 문득, 뒤바꿀 수 없어 보이는 꽃의 운명을 바꿀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뿌리에서 잘려진 꽃이 생명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떠올려보니,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실습했던, “가지 접붙이기” 가 떠오릅니다. 당시, 실습을 통해서 잘려 죽어가는 가지도 생명의 근원인 뿌리에 잘 접목이 되면 그 가지가 다시 살아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라는 그 당시 나이에는 믿기 힘든 놀라운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뿌리, 즉, 생명에서 잘려나간 가지의 꽃은 곧 시들어 말라 죽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려진 가지가 다시 살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바로, 생명의 근원인 뿌리에 가지가 접붙여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삶이 꼭 이와 같습니다. 어느 누군가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이의 삶은 언젠가 시들어 말라 버려지는 뿌리에서 잘려진 장미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국은 불의 심판에 던져지는 삶입니다.   

사람이 내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우리는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 때가 존재합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 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편 73:12-13

종종 우리는 아삽과 같이 악인들의 삶이 가진 화려함과 풍족함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것들을 죄악 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삶의 정직과 성실함이 무의미한 것처럼 여길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뇌 가운데 아삽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깨달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시편 73:18-19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이의 삶은 그 현재가 아름답고 찬란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인생의 결국은 어찌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전멸되어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이름과 명성을 이 세상에서 날리며 살다가 안개와 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인생처럼 부유하고 풍족해 보이던, 그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들의 삶의 종말이 얼마나 작고 초라 했었는지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직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그 분 안에 거할 때에야 비로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는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혈루병이라는 질병으로 고생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 살아가던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삶에 저주와도 같은 그 고통의 질병을 떨쳐 버리기 위해 긴 세월을 힘들게 살아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가진 것조차 다 잃어가며, 좌절하고 있을 그 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을 그 영원한 고통과 어두운 삶 속에서 구원해 줄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분의 옷자락에 달린 긴 옷 술을 살짝 만진 것이 아니라, 강하게 잡아 붙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요 20:17와 동일한 단어).  

그리고, 이 여인이 생명이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와 구원을 간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들었을 때에 그 여인의 문제가 그 즉시 해결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강하게붙드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8:44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하시더라 8:48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치료하였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심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여인이 나아갔을 때, 예수님은 여인의 육신의 삶의 문제와 영의 문제를 모두 해결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개인의 삶의 구원자로 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인간의 연약한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로 뒤덮여 철저히 망가진 우리 모든 삶의 문제를 비롯하여, 그 죄악 된 삶의 결과로 인하여 마땅히 얻게 될 영원한 형벌의 심판에서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영원한 형벌의 심판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오셔서, 연약한 인간이 온전히 성취할 수 없는 모든 율법의 조항을 친히 다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완벽한 의를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 의로우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저주받은 인간이 달려야 할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며, 그 분이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녀들을 위한 모든 고난과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심판을 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망의 권세에서 머물지 아니하시고, 3일 후에 다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심으로, 그 분이 구약에 약속하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이심을 우리에게 확증하셨습니다.  

겸손하게 삶의 모든 죄를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 회개하시고, 그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예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구원을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선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며, 간절한 마음으로 그 분의 선하심을 구하는 이들의 간구를 반드시 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현재 마스터스 신학교에 재학 중이며, Grace Community Church에서 Korean Outreach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내 정란 자매 사이에 온유, 하율, 라엘, 네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