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질문에 대한 틀린 대답

This entry is part 1 of 13 in the series 죄와 성화

B140617

존 맥아더

구원 얻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 구원 얻는 믿음은 의로움과 거룩함과 좋은 열매를 맺는 데에 자라나는 삶을 살게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교인의 삶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저 잠깐 동안 일어나는 순간적인 사건일 뿐인가?

구원과 성화를 별개의 것으로 서로 관련없는 것으로 만드는, 요즘 유행하는 신학적 풍조를 거슬러서 중요한 질문들을 생각해 보자. 이 문제의 중심은 진정한 믿음의 성경적인 특징을 결정한다.  즉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요한일서를 보자 . 특히 요한일서 3:4-10를 살펴보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 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 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 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 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 하는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즉시, 중요한 구절이 드러난다. 제일 먼저  6절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사도 요한은 말한다. 이 주제가 전 구절을 통하여 울려 퍼진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9절에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한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사도 요한은 믿는 자는 죄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이다. 특히 요한일서 1:8을 생각해 볼 때에 그렇다.  요한은 요한일서 1:8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10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다. 책 몇 장 사이에서, 요한은 믿는 자의 삶에 죄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서로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했다.

여러 신학자가 요한 사도가 말한 모순되는 것을 조화시켜 보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사도 요한이  3장에서 말한 죄는 용서 받지 못할 죽을 죄를 뜻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사실 이것은 가톨릭 교회의 견해이다. 가톨릭교는 용서받을 죄와 죽을 죄를 구분한다. 그러나 그런 견해는 틀린 것이다. 비 성경적인 이분법이다. 모든 죄는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롬6:23)

어떤 사람들은 사도 요한이 오직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죄만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능동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오직 죄로 고통스러워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약은 믿는 자들이 죄악에 속수무책으로(무력하게) 희생당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믿는 자들이 유혹에 굴복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죄를 짓는다고 가르친다. (약1:14-15)

극단적인 완전주의들은 믿는 자들은 점차 죄를 극복해서 결국 완전히 죄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체계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죄와 끊임없이 투쟁하다가, 죄의 영향을 극복하거나 패배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죄가 없는 완전함에 이르거나 아니면 구원을 잃게 된다고 한다.

이와 정반대의 극단주의는 도덕률 폐기론적 생각이다. ‘도덕률 폐기론자(antinomian)’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법(nomos)’이란 단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하나님의 법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도덕률 페기론자는 믿는 자들의 삶에 있는 죄는 별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 삶의 모든 것은 은혜로써 덮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타락한 생각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6:12-18에 가르친 것에 반대되지만, 여전히 요즘 세상에 유행하고 있다.

현대의 값싼 은혜와 값싼 믿음 (cheap grace and easy-believism) 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도 요한의 모순 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자신들의 말로 설명한다.  그들은 사도가 불법을 행하고 잘못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삶을 주님께 다시 헌신하고, 미숙하고 육적인 행동에서 영적인 것으로 옮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석함으로써 그들은 편지를 부드럽게 만들고, 명확하지 않고 엄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요한이 그 편지를 쓴 명백한 목적과 맞지 않는다. “ 내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사도 요한이 말하는 이분법은 성숙한 믿음과 미숙한 믿음이 아니다. 구원받는 믿음과 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믿음의 본질을 기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이 구절의 의미와 적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은 회개가 믿음의 동의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회개가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잘못 믿고 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구원에 필요 없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래서 구원받는 믿음은 복음의 요소들을 단지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죄인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간청하는 것은 그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선행을 쌓으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구원이 사람의 교리(생각)와 행동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심지어 평생을 육신적으로 산 것도 그 사람의 구원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 모든 인기 있는 견해와 해석들은 요한일서의 분명히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조화시키기 위해 시도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옳지 않다.

사도 요한이 말한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진짜 열쇠는 그리스어 문법이다. 위의 문장에서 사도 요한은 “죄 짓는다”를 현재 시제로 썼다. 그래서 계속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하면 사도 요한은 가끔 어쩌다가 죄를 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된 행동이 계속적이고 습관화된 것을 말하고 있다. 믿는 자도 때때로 죄를 짓는다. (롬7:14-25)  심지어 계획적으로도 죄를 짓는다. 그러나 믿는 자는 살아가면서 죄를 습관적으로 또는 계속적해서 짓지도 않을 것이고 지을 수도 없다. (롬6:4-14, 갈5:24, 엡2:10)

성령님께서 죄인을 하나님께 이끄시고, 중생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실 때에, 그들은 다시 창조된다. (고후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피조물의 본성은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세상의 유혹을 거부하고, 그들의 삶에 의의 열매를 맺는다. (롬8:6, 빌3:9, 골3:2) 옛 본성이 여전히 있지만, 이제는 전에는 없었던 새 욕구와 흥미가 그 속에 있고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도 요한의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다. 1장에서 그는 죄와의 모든 투쟁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을 반박한다 (요일1:8-10). 그는 2장에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며(2:3) 의롭게 살지 않는 자는(예를 들면, 사랑하지 않는 자[2:9-10]) 믿는 자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3장에서, 사도 요한은 그가 이미 확실하게 말한 믿음의 평가를 다시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더욱 반박한다. 이와 비슷한 거짓 가르침이 만연하는 요즈음에도 사도 요한의 가르침은 지극히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람을 미래에 완전하게 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깨끗하게 하시려고 자신을 희생시키셨다 (엡5:25-27). 교회에서 죄를 경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을 거스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죄에 물든 생활 양식은 구원 얻는 진정한 구원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사도 요한의 요점이다. 믿는 자의 생활은 회개하지도 않고 중단되지 않은 죄된 모습으로 특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 단순한 진리에 이어서 왜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 3가지 이유를 말한다. 다음에 첫째 이유를 알아보겠다.

(Adapted from The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1-3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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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행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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