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기 위해 버려야 한다

유명한 난센스 퀴즈가 있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으려면?” 답은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문을 닫는다”다. 이 황당한 퀴즈에 이어지는 퀴즈도 있다. “냉장고에 기린을 넣으려면?” 답은 “냉장고 문을 열고 기린을 넣는다”가 아니라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꺼내고 기린을 넣고 문을 닫는다”다.

또 다른 퀴즈를 내보겠다. “물이 가득 찬 컵으로 커피를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지 말라. 단순한 상식 퀴즈다. 물을 버리고 커피를 담아 마시면 된다.

이쯤 되면 눈치 있는 독자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 것이다. 하나를 가지려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일들을 자연스럽게 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라는 것은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하나’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얻으려고 하는 것과 포기하려고 하는 것의 가치의 차이가 커 보이지 않을 때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그렇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사랑하고 그래서 더 가지기 원하는 것을 위해 그렇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과 재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셨지만, 일반적인 원리를 제시하셨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더 사랑하는 것, 더 중히 여기는 것, 더 갖기 원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을 포기한다.

때로는 그것이 그저 취향의 문제일 때도 있다. 치킨을 먹기 위해 피자를 포기할 수도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 어떤 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다. 사생활을 좀 포기해도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자유를 좀 더 중시하면 사회적 불평등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리 크게 부딪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얻는 것이 가능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우선순위는 그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 차이는 우리의 선택을, 궁극적으로는 삶을 다르게 만든다.

마태복음 18장 8-9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삶 자체를 다르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마 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예수님의 이 권위 있는 말씀에서 그분의 안타까움도 느껴지는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을 고려해보면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해서 영생에 들어가라는 의미로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다. 다만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성경에서의 영생은 단순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말로 사람답게 사는 것,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의도하셨던 참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삶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죄’다. 때로 사람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금욕 생활을 하고 따분하고 지루하며 즐거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영생을 위해 죄를 버릴 것을 말한다. 사탄 대신 하나님을 얻고 심판 대신 천국을 얻으라고 한다. 일시적인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조그만 기쁨이 아니라 거대한 기쁨을, 애매한 만족이 아니라 진정한 만족을 누리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영생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선택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얻어야 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고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더 좋다고 말하는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라고 하니 당연히 어려운 선택이다. 더구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어렵다.

이것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다. 죄인인 우리는 눈이 어두워서 참된 것을 보지 못한다(고전 2:14).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의 눈을 가려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후 4:4).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자연상태의 인간은 누구도 이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생(구원)은 선물이다(엡 2:8).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실 때 우리는 참된 것을 보고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고후 4:6). 우리의 선택은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이제 본론이자 결론이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런 선택을 이미 한 사람들이다. 그 선택을 믿음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그분의 약속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지난 한 해를 가만히 돌아보자.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버렸는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만약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내가 참 합리적이고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착각이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다. 그리스도와 우상이 조화될 수 없다(고후 6:14-15).

버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한 해가 지나면 우리는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려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정말로 얻기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기 원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길 원하는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으로 기쁨과 만족의 삶을 살기 원하는가? 그것을 얻으려면 죄를 버려야 한다. 죄와 관련된 것에서 멀어져야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죄를 버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겪는 어려움과 동일한 이유다. 둘 사이의 가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에 와서 천 원을 내면 천만 원을 준다고 하면 은행에 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천 원을 내면 만 원을 준다고 하면 굳이 은행에 갈 필요가 있나 고민을 할 것이다. 만약 천 백 원을 준다고 하면 은행에 가는 수고를 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이것이다.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의 가치를 크게 보고 얻을 것의 가치는 작게 보고 있다. 버려야 할 것은 내 눈앞에 있고 내가 경험해 보았는데 얻어야 할 것은 보이지 않고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죄를 버리는 것이 어렵다. 수고롭다. 희생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바울에 에베소 교회를 위해 드린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엡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의 즐거움, 그분의 약속 안에서 누리는 확신과 평안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구원 받은 자에게도 여전히 그것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알고 배워야 한다. 삶에서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고 순종하며 그 가치와 즐거움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의 가치를 조금씩 더 알아가야 한다. 그 무한한 가치를 우리가 알아갈 때 지금의 죄악 된 것을 버리는 것은 좀 더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먹지 않고 잠을 줄여가면서도 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 위해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그리스도를 더 알고 사랑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내 삶의 패턴은 영생을 얻은 자에 가까운가, 아니면 죄를 누리려고 하는 자에 가까운가?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이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더욱 얻고자 하는 그것을 위해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절대 후회할 수 없는 투자가 될 것이다.

Grace to Korea 의 자문 목회자,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