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마무리 하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이제 3일 남았습니다. 2018년 한 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갑니다. 문득 어른들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라”. 늘 듣는 이야기지만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이 말이 연말이 되면 조금은 진지하게 와 닿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진지함은 더욱더 깊어집니다.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질수록 아무런 생각 없이 살기엔 인생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흥미롭게도 성경 인물 중에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모세입니다. 시편 90편에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아룁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0-12)

“수고와 슬픔뿐이요…” 이 첫 문장에서 솔로몬의 한탄이 함께 들리는 것 같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2-8)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왜 유익이 없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멋진 차나 집을 사는 것, 가장 선한 일, 예를 들어 불우한 이웃을 돕거나 다음 세대(자녀)를 잘 양육한다면 왜 그것이 유익하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유익이 영원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묘사하는 장면은 마치 오랜 시간 지구를 찍은 영상을 엄청나게 빨리 재생하여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해는 떴다 지기를 반복하고, 바람도 이리저리 불면서 순환하고, 강물도 바다로 계속해서 흘러가지만, 바다는 채워 넘쳐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대로입니다. 

땅은 고정된 상태로 가만히 있고, 해와 바람, 강물, 바다가 계속해서 빠르게 순환하고 있는데, 그 고정된 땅에 한 세대가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다음 세대로 전환됩니다. 인생이 날아갈 듯 빠르게 왔다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면, 이렇게 빠르게 왔다 사라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얼마나 유익하겠냐고 묻는 것입니다. 수고로 얻은 유익이 있더라도 금세 사라질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족스러우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닙니까? 아무리 인생이 하루살이처럼 빠르게 왔다 사라진다고 해도, 그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인 내가 만족스러우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만족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않습니다. 잠시 만족이 찾아와도 금세 사라집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를 만족시킬 대상을 찾는데 바쁘지만, 영원히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이 땅 위에 없습니다. 짧은 인생조차 우리는 온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만족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이것저것을 바쁘게 하다가 결국 불만족으로 일생을 마치는 피곤한 삶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세의 고백처럼 칠십, 팔십, 혹은 백 세를 살아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먼저, 모세는 올바른 대상에게 지혜를 요구했습니다. 모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1-2)

하나님은 인생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영원한 분이십니다. 한 세대에 살다가 다음 세대에 사라지는 분이 아니라 대대에 모든 사람의 거처가 되시는 분입니다. 고정된 땅과 세상에 제한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 땅과 세계를 조성하신 분입니다.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분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유한한 인생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유한한 삶을 뛰어넘는 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모세는 또한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 90:3-6)

하나님에게 천 년은 하루 같습니다(벧후 3:8). 그래서 그분 목전에 인생은 ‘잠깐 자는 잠’, ‘아침에 돋는 풀’과 같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워도 곧 시들어 말라버립니다. 그런데 모세는 인생을 그렇게 순식간에 되찾아가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 인생들은 티끌로 돌아가라”. 명령과 함께 하나님이 모든 인생을 홍수처럼 쓸어가십니다. 어쩌면 모세는 홍해 바다가 쓸어간 수많은 애굽 병사를 떠올리며 이 표현을 사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인력으로 거스를 수 없는 무서운 자연의 힘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그분의 권능으로 티끌 같은 인생을 순식간에 쓸어버립니다.

왜 하나님은 인생을 이렇게 덧없이 거침없이 쓸어가실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는 저주는 첫 사람 아담의 죄 때문에 선포되었습니다(창 3:19). 모세의 기도를 더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 하였나이다(시 90:7-9)

결국 죄가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입니다. 인생에 수고와 슬픔만 남게 만들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은 영원하신 하나님 때문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지만, 영원한 하나님과 단절된 삶은 영원한 생명에서 떨어져 나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플러그가 뽑힌 전기기계처럼 죄 때문에 영생의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인생은 순식간에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인생은 짧아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된 무의미한 삶이 인생을 순식간에 사라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죄인은 주의 분노에 소멸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그 얼굴에 영광의 빛을 드러내시는 거룩하신 그분 앞에 인생의 은밀한 죄, 모든 죄악이 낱낱이 드러날 때, 순식간에 주의 분노 중에 인생이 거두어집니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겠습니까?”(11절)

당신은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갈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수고와 슬픔, 피곤함과 곤고함이 죄의 결과라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이 티끌로 돌아갈 날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이유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영생의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죄, 은밀한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그 모든 죄가 주의 목전에, 주의 얼굴빛 가운데 쌓아지고 있으니, 그 노여움의 능력이 발휘될 때, 두려운 진노가 쏟아져 내릴 때 어떻게 하시렵니까?

모세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 90:13-17)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불쌍히 여김)에 기댑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합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총 곧 특별한 은혜를 갈망합니다.

유한한 인생이 유일하게 하나님에게 간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믿음의 손을 뻗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떨어져 나간 죄인, 그래서 평생 짊어진 그 유약하고 무의미한 삶,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삶, 피곤한 삶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불쌍히 바라보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구원하기로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분, 그리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피로 언약을 맺으사 내가 이제부터 영원히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영원히 내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분, 우리 안에 성령을 두어 그 약속의 인을 치시고, 그 약속을 매일 지키고 계신 분이 바로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인자하심이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그 인자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은(steadfast love) 죄로 인해 우리가 당한 화와 받은 고통을 상쇄합니다. 뛰어넘습니다. 주가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 대대에 이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 특별한 은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 인생이 비로소 유익하고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월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전히 티끌로 빠르게 돌아가는 삶을 삽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살아갈 날이 점점 줄어들 때마다, 유한한 삶의 한계를 더 깊이 마주하며 어떻게 우리 날을 계수하며 지혜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주어진 인생에서 어떤 의미라도 찾기 위해 많이 수고합니다. 자기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죄인의 삶은 결국 수고와 슬픔만 남는다는 사실을, 홍수처럼 순식간에 쓸려갈 인생에서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 없이 내 육체의 욕심과 세상의 풍조에 따라 실컷 살면서 쌓아 올린 모든 죄라는 것을 영광의 하나님 앞에 서게 됐을 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받게 될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며 진노의 하나님 손에 빠져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빠르게 넘어가는 달력을 보면서 이 무서운 현실을 보지 못한다면 모세처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대신하여 내어 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나를 자기 백성으로 삼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날마다 신실하게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아침마다 나에게 그 사랑을 새롭게 알려주시고, 나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른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삶에서 만나는 화, 당하는 고통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니 내게 고통을 허락하신 만큼 영광으로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티끌로 돌아가는 날이 오고 있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마침내 영원하신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게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앞에 쌓아진 죄는 예수께서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시고 사망을 이기신 그분으로 인해 사망을 이길 것입니다. 심판을 면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의 진정한 만족이시며, 기쁨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한 해가 지나가는 오늘 다가오는 한 해를 기다립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 조금 더 가까이 왔기 때문에 기쁩니다. 하루하루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인자하심을 맛보는 삶이니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나의 눈과 귀를 채우고, 내 영혼을 온전히 만족시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이 땅에서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한 일만이 영원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2019년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면서 이 놀라운 영적 축복을 간과하고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과 아무 상관 없이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모세처럼 당신을 위해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한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이 말로 올해 마지막 금주의 말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오늘 칼럼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려고 한 말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아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