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

성경의 한 본문을 관찰, 해석할 때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 본문에 등장하는 키워드 (Key Word) 가 무엇인지를 찾는 일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키워드를 통해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포인트를 독자들에게 표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키워드는 본문을 기록하는 저자가 한 단어를 의도적으로 반복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곤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빌립보서 전반에 걸쳐 “기쁨” 혹은 “기뻐하라” 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

한편, 요한 복음의 서문으로 알려진 1장 1절에서 18절을 살펴보면, 이렇게 반복되는 단어, 키워드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복음서의 서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역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그가 기록한 복음서의 이 서문을 읽는 독자들은 요한이 한가지 동일한 동사를 무려 11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단어는 헬라어 “기노마이

” 라는 단어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은 한국어, 혹은 영어 번역본을 통해서는 쉽게 인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기노마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영어로는 “become, to be, to happen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즉,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되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동사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서문에서 전달하는 진리들이 무엇일까요? 

서문의 시작 1절에서 태초에 말씀 (로고스)이라는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들을 통해서 그 분의 신성을 강조하고 나자 마자, 사도 요한이 3절에서 이 기노마이 라는 동사의 반복을 세 번에 걸쳐 사용함을 통하여 말씀(로고스)이라는 분을 통해서 이 땅의 모든 만물의 창조가 이루어 졌다 라는 진리를 가장 먼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없느니라요한복음 1:3  

눈 여겨 볼 것은 사도 요한은 6절에서, 이 “기노마이” 라는 동사를 다시금 사용해서 그 시대에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세례 요한 역시 이 말씀이라는 분이 창조하신 그 피조물 가운데 한 존재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노마이” 라는 단어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선포하는 말씀이라는 분의 존재를 통해서 이루어진 또 다른 사역은 12절에 등장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요한은 말씀이라는 분을 통해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새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즉, 사도 요한은 만물의 창조와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는 또다른 의미의 새 창조의 역사가 그 분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복음서의 서문에서 등장시키는 어쩌면 가장 특징적이며, 인상적인 진리는 몇몇 신학자들이 주장하듯 7이라는 숫자의 사용을 유달리 즐겨 사용한 요한이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7번의 예수님의 “나는… 이다” 라는 선언, 요한 계시록에 완전을 의미하는 수많은 7이라는 숫자와 연관된 심판, 나팔, 천사 등등…)  “기노마이” 라는 단어를 7번째에 사용한 그 자리에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14절에 이 단어를 7번째로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 14

사도 요한은 말씀이신 그 분을 통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진 그 놀라운 창조의 사역들을 언급함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그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유한한 세계에 작은 피조물의 모습을 입고 직접 찾아오신 그 놀라운 진리를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물론, 이 땅에 그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찾아오신 그 하나님은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선포하는 단 한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이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을까요? 요한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비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 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을 보게 되었다라고 선포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영광스러움의 모습은 그 이전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땅의 모든 창조물이나, 당대의 위대했던 선생 요한과 같지 않은, 즉 모든 것들을 통 틀어 그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다시 한번 “기노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되, 그 단어의 앞에 “오직(only)”라는 의미를 덧붙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 하신 아들의 영광이다 라고 선포하며, 그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찬양하는 이유는 이와 동일합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바라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그들의 특별한 날로 여기며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되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찬양하며 이 날을 보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한 성탄의 시기에 이 요한복음의 서문이 지금 우리의 마음 가운데 기쁨의 근원이 되는 참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현재 마스터스 신학교에 재학 중이며, Grace Community Church에서 Korean Outreach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내 정란 자매 사이에 온유, 하율, 라엘 세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