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자유

세상 사람들에게 크리스찬들의 삶은 때론 제한적이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구속 받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질 때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만나 가볍게 술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개인적인 신념으로 술 한 잔을 허용하지 않는 어떤 크리스찬의 모습이 그렇게 비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교회의 수많은 예배들과 모임, 다양한 일정들이 한 개인의 삶을 구속하고, 가벼운 일상의 탈출을 불가능케 하는 속박처럼 보여질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분명히 다양한  방면에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받은 신자가 동의하는 한가지 분명한 경험적인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참된 구원을 선물로 받은 참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불신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구속된 제한적인 삶이거나, 자유를 빼앗긴 철창에 같이 새와 같이 답답한 삶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한복음 8:32-3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의 구속의 은총 안에서 더 큰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너희가내말에거하면, 참으로내제자이고 (제자가되고  X), 

진리를알지니, 진리가너희를자유케하리라요한복음 8:31-32

예수님을 참된 믿음으로 믿고, 구원을 얻은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삶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 구원 받은 성도임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통해, 그 분의 말씀이 참된 진리임을 더욱 깊이 깨달아 알게 되고, 그 진리가 전해주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아 앎을 통해,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참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의 삶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자세는 결코 율법주의적인 동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말씀의 순종이 가져다 주는 참된 자유와 기쁨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측면에서 다윗은 시편 19편 7절에서 9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는 다양한 면과 그 유익들을 찬양하고, 10절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의말씀은) “금곧많은순금보다더사모할것이며꿀과송이꿀보다더달도다!”

시편19:10

그리스도인의자유, 무엇으로부터자유인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 안에서 깨닫게 되는 진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참된 영적인 자유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자유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1) 사탄의권세, 죄의지배로부터자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상태를 설명할 때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때에너희는그가운데서행하여이세상풍조를따르고공중의권세잡은자를따랐으니, 곧지금불순종의아들들가운데서역사하는영이라, 전에는우리도다그가운데서우리육체의욕심을따라지내며육체와마음의원하는것을하여다른이들과같이본질상진노의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2-3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도 동일한 관점에서 바울을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가그때에는하나님을알지못하여본질상하나님이아닌자들에게종노릇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8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기 이전의 때에는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사탄의 권세 아래 육체의 욕심과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르며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또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가본래죄의종이더니너희에게전하여준바교훈의본을마음으로순종하여죄로부터해방되어의에게종이되었느니라중략이제는너희가죄로부터해방되고하나님께종이되어거룩함에이르는열매를맺었으니그마지막은영생이라로마서 6:17-22

우리는 본래 죄의 종으로 이 땅을 살아가며, 죄가 우리의 몸을 지배하고 주장하는 그러한 현실 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죄인의 상태를 또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중에이세상의신이믿지아니하는자들의마음을혼미하게하여그리스도의영광의복음의광채가비치지못하게함이니그리스도는하나님의형상이니라고린도후서 4:4 

구원 받기 이전에 우리는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지배로 인하여 그리스도 복음을 알 수도, 깨닫지도, 바라지도 못하는 그러한 영적인 장님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데에빛이비치라말씀하셨던그하나님께서예수그리스도의얼굴에있는하나님의영광을아는빛을우리마음에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이 가득 찬 혼미한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는 빛을 비춰 주심으로 우리 안에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더이상 사탄의 종으로 이 세상의 허무한 풍조와 마음을 욕심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분을 예배하는 삶을 통해서 참된 기쁨과 자유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주는영이시니, 주의영이계신곳에는자유가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그 신분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즉, 구원 받은 성도는 더이상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지도, 죄의 지배 아래서 이끌려 다니는 종의 신분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너희가죄로부터해방되고하나님께종이되어거룩함에이르는열매를맺었으니 

그마지막은영생이라”    로마서 6:22

우리는 죄의 권세,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종,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죄의 삯은 사망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선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이라는 죄의 심판에서 자유를 얻게 됨과 동시에 영생을 보장 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권세, 죄의 지배, 심판의 자리에서 성도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자유케 된 것입니다.  

2) 율법의기준을통한심판에서  자유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율법으로부터 자유일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우리를자유롭게하려고자유를주셨으니, 그러므로굳건하게서서다시는종의멍에(율법)를메지말라”    갈라디아서 5:1

구원 받은 성도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 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의 삶이 율법과 전혀 상관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하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아들을죄있는육신의모양으로보내어육신에죄를정하사육신을따르지않고그영을따라행하는우리에게율법의요구가이루어지게하려하심이니라.” 8:3-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에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짐 이란 우리 안에 거룩함, 성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거룩함의 기준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요구가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어 우리 육신의 죄를 깨끗게 하시고 (롬 8:3), 이제 우리 안에 그 분의 영이 거하게 하셔서, 그 영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롬 8:4).  

그렇다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외쳤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그 명령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갈라디아 교회들에 퍼지던, 유대주의자들의 거짓된 구원 교리, 즉,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위에 율법의 행위가 얹어져야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라는 가르침이 교회 안에 누룩처럼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이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바른 복음을 전달하고자한 목적으로 기록되어진 서신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갈라디아서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 말할 때에 그 의미는 특별히 바울이 성도의 구원과 관련해서 율법의 유효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임을 염두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서신에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성도가 율법을 지켜야 하느냐, 지키지 않아도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의 구원의 문제가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 결정되는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즉, 바울은 구원을 얻겠다 라는 동기로 율법을 자신의 삶에 멍에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사실, 이 구원 교리와 관련한 문제는 초대 교회에 가장 첫번째 회의인 예루살렘 공의회 (사도행전 15장)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사도 베드로 역시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 안의 은혜를 통해서만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그들이 (이방인) 우리와동일하게주예수의은혜로구원받는줄을믿노라하니라”  사도행전 15:11

사도 베드로의 이 명확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도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여기는 로마 가톨릭이 이러한 베드로가 선포한 구원론에 대한 가르침을 외면하고,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 여러가지 다른 것들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이 복음, 모든 죄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은혜를 통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이 사실을 왜곡하고 변질시키기 위해 수많은 수단과 방법들을 동원하여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혹시라도 주변의 누군가가 우리의 구원이 율법의 준행을 통해서 성취되기도, 또는 취소되기도 할 것이라고 전하는 잘못된 구원관을 주의해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는그은혜에의하며믿음으로말미암아구원을받았으니, 이것은너희에게서난것이아니요하나님의선물이라. 행위에서난것이아니니이는누구든지자랑하지못하게함이라.” 에베소서 2:8-9

그럼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도의 구원이 하나님의 심판의 잣대가 율법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안에 있음을 통해서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더이상 율법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거나, 사망의 결과를 얻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율법을 그 분의 삶을 통하여 이미 성취, 완성하셨고, 그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주심을 통해서 우리 안에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의자유의올바른목적과적용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자유를 충분히 만끽하고,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올바로 누리기 위해 우리가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가 가진 목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목적 안에서 적합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언급하고 난 이후 하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너희가자유를위하여부르심을입었으나, 그러나그자유로육체의기회를삼지말고…” 갈라디아서 5:13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의 목적이 각 개인의 육신의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아마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 안에도 오늘날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자유를 오용하여, 자신의 육체의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향해,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 … 오직사랑으로종노릇하라”      갈라디아서 5:13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통해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힘쓸 것을 명령합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통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의 실천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또한 실천해야 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공의회를 통하여 구원 교리에 대해서 율법의 지킴이 아닌, 은혜에 있음을 선포하고 난 이후, 이방 교회에 편지를 통하여 내린 결론은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이방 교회들을 향하여 너희가 구원과 관련하여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니, 이제 마음껏 그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 것을 장려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연약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그 자유스러운 삶을 통해서 양심에 시험 받을 유대교에서 전향한 그리스도인들을 배려함으로 4가지 사항을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사도행전 15장 내용 참조).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 속에서 육체의 기쁨을 따라 방종하지 말고,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령한 것 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동일한 관점에서 고린도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만일음식이내형제를실족하게한다면나는영원히고기를먹지아니하여내형제를실족하지않게하리라”     고린도전서 8:13

오늘날의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이 자유를 일상 가운데서 바로 적용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의 목적을 염두하고 그에 따른 기준을 가지고 이 자유를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기준으로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인가? 고린도 전서 10:31

2)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는 장애물이 되는 일은 아닌가? 고린도 전서 10:32-33

3)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양심에 걸림돌이 되거나,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양심에 죄를 짓게 하는 일은 아닌가? 그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8:9-12 

4) 내 개인의 양심을 깨뜨리는 일은 아닌가? 로마서 14:23

5)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일이 나로 하여금 노예처럼 그것에 빠져들게 하는 일은 아닌가? 고린도전서 6:12

6) 다른 이가 세워지는 유익이 되는, 덕이 되는 일인가? 고린도전서 10:23-24 

사랑하는 GTK 독자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신 그 목적이 내 자신의 육체적 삶에 방종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으로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을 향하여 때로는 종의 모습으로까지 우리 자신의 유익과 존재를 낮추며, 그들을 섬겨야 함을 기억하면서,  우리 안에 주어진 이 자유를 열정적으로 적용하며 살아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마스터스 신학교에 재학 중이며, Grace Community Church에서 Korean Outreach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내 정란 자매 사이에 온유, 하율, 라엘 세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