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사랑의 본질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등학생 시절 영화를 좋아했던 탓에 자율학습을 몰래 도망쳐 나와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멜로 영화를 참 좋아했었는데,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 그렇게 섭렵한 영화들을 통해 “사랑은 짜릿한 전기같은 것이며, 그 감정을 원동력 삼아 점점 커질 수도 아니면 없어질 수도 있는, 하지만 황홀한 무언가와 같다” 라고 정의 내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에게 있어 사랑은 잡고 싶어도 잡히지 않는 추상적 개념의 환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 아내의 남편이 된 지금. 지금도 만약 사랑을 추상적 감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라 여겼다면 나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나는 지금 어쩌면 심각한 오류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정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은 은혜로 나를 구원을 하셨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셨다. 특별히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말이다. 

물론, 사랑은 감정이 수반된다. 감정없는 사랑은 없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유익이 되지 않아 보일지라도 상대방이 그러하다면 기꺼이 나를 희생하는, 즉 의지적 희생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아내 사랑 또한 그러하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5)

에베소서 1-3장에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정체성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되심을 잘 설명한다. 그리고, 4-6장에서 저자는 이 풍성한 은혜 안에 거하고 있는 자, 즉 거듭난 자가 마땅히 해야할 연합의 원리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즉, 문맥에서 보자면,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전제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엡1:7). 그리고, 거듭난 남편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와 이 복음의 메시지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깊이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아내를 더욱 사랑할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배경 가운데, 남편들에게 도전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엡5:25).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신다. 믿는 자 자체이며, 믿는 자의 모임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몸이라 성경은 말한다 (엡 2:23, 고후11:1-2).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신부에게 베푸신 이 사랑은, 자신이 아닌 신부의 유익에 초점 맞추셨다. 신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말이다.

바울은 또한 말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5:25).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신의 신부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신부, 즉 교회는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엡5:23). 자신 스스로는 죄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엡2:8-9). 그리고, 자라나갈 수도 없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는 신부의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아셨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대속물로 내놓으셨다. 사랑하는 신부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바울이 남편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지금 있다가 나중에 없어질, 그러한 세상이 말하는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사랑을 줄 수도 거둘 수도 있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닌 것이다. 남편이 해야할 사랑은 가장 힘이 없던 우리들을 그분의 신부로 맞아 주시기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물론, 우리 남편들은 예수님이 아니다. 구원받았음에도 죄로 신음한다. 걸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이 삶을 끝내는 그날까지 우린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갈 뿐 결코 완벽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구원받은 우리 남편들은 아내를 조건없이 사랑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자신의 몸같이 여기셔서 기꺼이 희생하셨던 것 같이 우리 또한 그렇게 해야한다. 그것이 아내를 살리는 길이고 우리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마스터스 신학교 재학중 (The Master’s Seminary)입니다. 그레이스 투 코리아의 주일의 말씀을 고정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그레이스 성경 교회 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가족은  부인 혜진 자매 사이에 딸 슬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