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6): 성찬

This entry is part of 6 in the series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

교회는 합당한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예식을 행할 수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명하신 예식은 오직 두 가지 예식뿐입니다. 하나는 세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리라(마 28:18-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 가운데 하나인 “만찬”은 그들이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또 다른 예식입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9-20)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두 가지 예식을 성실하게 지키고, 믿는 무리에게 지키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1-42)

특별히 오늘은 회중이 모여 함께 나누는 “주의 만찬”에 관해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성도들은 날마다 집에 모여 떡을 떼고(행 2:46), 바울이 전도했던 지역에서도 “주간의 첫날” 떡을 떼러 모였습니다(행 20:7). 바울은 주의 만찬을 엉망으로 만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하며(“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긴다”, 22절), 주께 받은 “주의 만찬”의 참된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여기서 우리는 회중이 함께 참여하는 주의 만찬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발견합니다.

1. 주의 만찬은 주의 명령이다

생각보다 많은 교회가 “주의 만찬”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주가 직접 명하신 또 다른 예식인 “세례”를 물에 잠기는 방식이 아닌 약식으로 행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침례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인 ‘밥티조’의 의미(‘잠근다’, ‘담근다’) 그대로 물에 잠그는 방식이 성경이 묘사하는 세례의 방식이며(마 3:16; 행 8:38-39), 침례가 선포하는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골 2:12)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침례”는 약식으로라도 순종하려는 교회가 있습니다. “주의 만찬”은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도 기념되지 않는 예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하기엔 성경의 가르침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주의 만찬”은 “주께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예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떡과 잔을 먹고 마시지 않는’ 주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물론,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시 51:6). 다윗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시 51:16). 형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배의 본질인 ‘상한 심령’을 주께서 원하십니다. 주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핵심이지 그것을 떡과 잔이라는 형식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시 51:19)

다윗은 ‘제사’라는 형식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 즉 진정한 회개가 빠진 제사를 비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의로운 제사”,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 ‘제사’라는 형식을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려면 그 형식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형식을 파괴하는 백성을 어떻게 징계하셨는지 구약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마찬가지로 ‘주의 만찬’의 핵심은 주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이라고 하여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예식’이 불필요하거나 간과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예식이며 주가 오실 때까지 계속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의 교회가 이 예식을 행하지 않고 있다면, 주가 직접 명하신 이 예식을 생략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려해보십시오. 만일 당신의 교회가 ‘주의 만찬’을 행하고 있다면 다음에 말하는 ‘의미’가 빠진 예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2. 주의 만찬은 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3-25)

바울은 ‘주의 만찬’을 설명하며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 성도가 함께해야 할 일을 두 번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명령이기도 합니다.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은 유월절 떡과 잔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셨습니다(출 12:1-14).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애굽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기 위해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을 면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은 집안 식구를 계산하여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에 바르고 그 희생양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식구가 적은 경우 이웃과 함께 이를 행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예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예식이었는데(출 12:14),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속물인 어린양으로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희생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롬 3:25; 요일 2:2). 그래서 그들이 먹는 떡과 마시는 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떡은 죄인을 대신하여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 포도주는 죄인을 대신하여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떡과 잔이 가리키는 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영원한 화평 조약이(새 언약)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눅 22:20).

성도는 떡과 잔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공로의 공동 수혜자입니다. 죄로 넘어지고 악한 세상에 흔들릴 때도 성도가 함께 매주 모여 ‘주의 만찬’을 대하면서 하나님과 그들이 영원한 화평을 누리고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들이 기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은 교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의 터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며 교회의 존재와 목적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고전 3:11; 10:4; 엡 5:23).

수많은 성도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행위 중심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교회의 프로그램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높이기보다는 소비자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그리스도가 직접 제정하신 ‘주의 만찬’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날마다 묵상하게 만들고 교회의 존재와 목적을 계속해서 재확인시키는 ‘주의 만찬’이 사라진 자리에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모든 주의 성도가 모여 ‘주의 만찬’을 행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의 만찬’을 전하시면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29).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성도가 함께 기쁨으로 기념하는 내용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끔찍한 지옥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하늘나라 보좌에 함께 앉히신 은혜와 사랑의 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세세토록 기념할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존귀하심과 영화로우심을 이 땅에서 기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주가 직접 명하신 것이 아닙니까?

3. 주의 만찬은 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성도가 함께 모일 때 ‘주의 만찬’을 통해 성도는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하다”는 ‘카타겔로’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아주 강력한 선포 행위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바울은 하나님의 증거를 전달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 2:1)

성도가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대할 때 그것은 이러한 강력한 선포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회중 가운데, 그리고 참석한 불신자에게 ‘주의 만찬’이 담고 있는 메시지인 ‘주의 죽으심’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만찬’의 예식 가운데 참여하는 모든 성도는 주를 진심으로 기념하고 묵상하며 동시에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찬을 앞에 두고 나누는 말씀이나 기도, 함께 봉헌하는 찬양, 참여하는 자세나 생각을 집중하는 태도, 감사하는 마음, 진지하고 엄숙하게 참여하는 모습과 미리 준비하고 늦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통하여 ‘주의 죽으심’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가 함께 모여 행하는 찬양, 말씀, 기도, 봉사, 교제, 그리고 만찬까지 여러 가지 활동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R. C. 스프로울은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 그 건물의 웅장함에 압도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신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건물이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신령한 집”, 교회입니다(벧전 2:5).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물론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함께 모일 때 회중 가운데 찬양의 제목이 되어 그 영광을 받으시고, 기록된 말씀이 선포될 때 온 회중에 그에 화답함으로 높임을 받으십니다. 회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예배를 받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회중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서로 봉사하는 손길 가운데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섬김을 통해 성도의 유익을 구할 때 그리스도가 기뻐하십니다. 나누는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가 성도를 부르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주의 만찬’을 통해 회중이 이 모든 은혜의 방편이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세워진 것임을 기억하며 거기서 힘을 얻고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려 드립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이 놀라운 영적 의미와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밥 코플린의 말을 다시 인용하며 이 칼럼 시리즈를 마칩니다.

평범한 주일은 없다. 단지 우리가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고후 3:18) 것과 같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새로운 기회만이 있을 뿐이다.(밥 코플린, “참된 예배자, 108p)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1): 찬양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