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2): 말씀

This entry is part 2 of 6 in the series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말로 다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벧전 1:23).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롬 10:17).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 갓난아기가 젖을 사모하듯 찾아야 할 것도 신령한 말씀이며(벧전 2:2),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어진 모든 성경, 곧 말씀입니다(딤후 3:17). 사탄을 무찌르는 성령의 검, 그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 6:17).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사실 현대인들은 말씀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듣기를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짧을수록 좋다”, “말씀 시간이 짧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도 나옵니다. 현대인의 이런 성향을 반영한 교회도 무척 많습니다.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 가운데는 말씀 시간을 30분에서 20분, 최대 15분짜리로 줄인 곳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집중하여 들을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꼭 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이 있고 듣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몇 시간이라도 집중하여 들을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지만, 관심도 없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할 때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듣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미 경고한 내용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바른 교훈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점점 사라집니다. 자기 귀가 가려워 자기의 욕심,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워줄 스승을 많이 둡니다. 그런 말을 해줄 때 귀를 기울입니다. 진리보다는 허탄한 이야기를(예를 들면 판타지 소설, 허황된 이야기로 채워진 영상물이나 소설 등) 따릅니다.

이런 때일수록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강력하게 권면한 것처럼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계시하신 말씀을 통하여 자기 뜻을 자기 백성에게 선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른 해석을 통해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전달한다면, 성경 그 자체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선포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유능한 설교자의 말씀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회중이 함께 모여 지역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유능한 설교자의 말씀을 동영상으로 보거나 음성으로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교회가 함께 모여 말씀을 듣는 것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그 의미와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적인 교회의 9가지 특징>을 쓴 마크 데버는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사인데, 자신이 제공하는 설교 영상 끝부분에 이런 광고를 넣었습니다.

이 설교를 통해 당신이 유익을 얻었다면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지역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여 그 지역교회 세워진 일꾼을 통해 말씀을 공급받기 원합니다.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마크 데버 등 유능한 설교자의 설교도 좋지만(분명 그것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 교회의 지체로 한 지역교회에 다른 지체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들이 지역교회 목사보다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역교회 목사는 그들처럼 해박한 성경 지식, 유능한 전달력과 표현력이 없지만, 한 가지 그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혼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들에 대한 관심, 사랑, 책임이 다른 어떤 교회 설교자보다 월등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를 인도하는 자들을 가리켜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히 13:17). 지역교회 목사는 자기 교회의 지체들, 성도들을 자기 자신처럼 돌보는 사람입니다. 영혼의 상태와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양들을 그 목자에게 맡기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목자가 양을 이끌고 가장 좋은 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음식을 찾아 인도하듯, 지역교회 세워진 설교자는 성도가 함께 들어야 할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합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함으로 말씀을 준비합니다.

강단에 올라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양들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봉사입니다. 애찬 봉사자들이 성도의 육적 양식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하는 것처럼, 설교 봉사자 역시 성도의 영적 양식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말씀에 담겨있는 내용 그대로를 성실하게 선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나님은 지역교회 성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에게 필요한 영적 양식을 그 교회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을 통해 공급하고 계십니다.

다른 설교자를 통해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식사를 통해 주로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어머니는 사랑으로 자녀를 위해 봉사합니다. 가끔 외식하면 더 맛이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도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우리가 음식을 공급받는 믿을 수 있는 경로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유익을 누구보다도 추구하는 어머니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역교회 말씀은 바깥에서 들을 수 있는 수준 있고 훌륭한 영적 양식이 아닐지 모르나, 누구보다 성도를 사랑하고 그들의 유익을 추구하는 설교자가 정성스럽게 그들의 필요를 생각하여 준비하고 제공하는 주된 영적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경로를 통하여, 인도자의 섬김을 통하여 교회의 주된 영적 필요를 채우고 계십니다.

성도가 함께 영적 양식을 공급받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섬기는 식탁에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 있게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공급 받아 영적 필요를 채우고 서로 그것을 나눔으로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성도가 각자 여기저기서 말씀을 따로 듣는다면, 각자 들은 바가 다르고 때론 교리적으로 불일치되는 내용이 많아, 한 몸을 이루는 지역교회의 생각이 분산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도 각자 들은 것에 따라 다른 분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듣는다면 교리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강단에서 강조하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 개선되어야 할 부분, 위로받고 격려받고 칭찬받아야 할 부분 등에 있어서 함께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한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실 많은 성도가 강단의 말씀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듣는 사람의 기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 관심을 두기보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 내가 받고 싶은 위로와 격려, 반드시 성경적일 필요는 없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 위로, 격려, 지혜가 담겨있는데,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듣고 싶은 방식대로 듣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지역교회 봉사하고 있는 설교자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설교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데,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데 미숙하거나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말씀을 이용하거나, 말씀을 곡해하여 의도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강조하고, 성경이 양쪽 균형을 잡아 가르치는 부분 중 하나만 극단적으로 가르치거나, 심각한 경우 성경은 읽기만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쭉 늘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저는 교회에 합당한 설교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영적 필요를 채우시는 주 공급원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경로로 영적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겠지만,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 심각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한마음으로 성도가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자에게 이 문제를 겸손하고 온유하게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끝내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잘못된 설교로 유익보다는 도리어 해를 입는다면, 진리의 말씀이 바르게 공급되는 교회를 찾아보는 것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바른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자기 몸 된 교회의 각 지체에게 진리의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설교자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들, 그러나 그리스도의 양인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만큼 성경을 진지하게 대하고 해석하고 그리스도가 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분이 하신 말씀 그대로 전달하며, 양들의 필요를 충성스럽게 채워야 합니다.

성도들은 함께 말씀으로 공급받는 그 시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유튜브나 다른 경로로 충분히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말씀을 듣는 것의 유익과 가치를 인정하고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함께 한 식탁에 앉아 사랑하는 성도들과 주님께서 세워주신 말씀 봉사자가 정성껏 준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그 사랑의 양식을 먹고 마시며 성도와 함께 믿음 가운데 자라나는 기쁨을 풍성히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 말씀 듣는 일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1): 찬양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3): 기도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