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믿음

믿음의 증인들과 믿음의 본

히브리서의 저자는 11장에서 믿음의 좋은 본이 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소개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것처럼, 아직 받지 못한 약속을 이미 받은 것처럼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12장의 시작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믿음의 사람들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을 믿음의 ‘본’보다는 ‘증인’으로서 소개한 것이다. 그들이 믿음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바라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가 되고 우리 역시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동기와 격려가 된다.

그러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는 자들이 바라보고 따라야 할 궁극적인 본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그분의 믿음의 삶이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에 대해서 많이 말하지만, 그분의 삶이 ‘믿음’의 삶이었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과 우리 삶의 차이를 하나님이신 분과 인간인 우리의 차이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믿음에 따라 순종하며 살았느냐의 차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이 인간처럼 보였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이 되셨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셨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사셨던 예수님은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완전한 본이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특별히 공생애의 시작에서 이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임하셨고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선포하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공적으로 사람들 앞에 드러나셨고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그곳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눅 4:1-2). 그리고 그 끝에 사탄이 또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한 사건이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탄은 3번에 걸쳐 예수님을 시험했고 이 시험은 믿음에 대한 시험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배울 수 있다.

1. “돌을 떡으로 만들라”(눅 4:3-4)

첫 번째 시험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시험이니 뭔가 더 대단한 시험이어야 할 것 같은데,  좀 허무하다. 게다가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은 죄도 아닌데 왜 시험이 되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실 때,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인간으로서 살기를 선택하셨다(요 5:19, 30; 8:28). 그것이 그분께서 “자신을 비웠다”는 말의 단순한 의미다(빌 2:6-8).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으로서의 권위와 능력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예수님 자신을 위해 그런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필요에 대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기대어 살기를 선택하신 것이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셨다. 지금 사탄이 하는 말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스스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굶주리고 있을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것이다. 사탄의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시험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 보라는 시험이 아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대한 시험이다.

예수님은 사탄의 말을 듣기보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기를 선택하셨다. 그 순간 돌이 떡이 되지 않았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지도 않았다. 여전히 40일을 굶주린 상태였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기를 선택하셨다.

2. “내게 절하라”(눅 4:5-8)

“내게 절하라”는 두 번째 시험은 그것에 따르는 것 자체로 문제가 된다. 하나님만을 예배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탄의 이 말은 상당히 달콤한 유혹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이 땅에 메시아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탄은 절하기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통하지 않는 훨씬 쉬운 방법을 사탄이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보다 더 간편하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결과도 금방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을 믿기를 선택하셨다. 뻔한 고난이 눈앞에 있는 것을 아셨지만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셨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길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예수님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십자가였다. 거룩한 분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해야 했고 그 결과로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아셨지만 예수님은 사탄이 제시한 쉬운 길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고난의 길을 선택하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3. “뛰어내리라”(눅 4:9-12)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겠다는 예수님께 사탄은 세 번째로 말한다. 그럼 어디 하나님이 그럴 만한 분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 네가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보호하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서 사탄은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기까지 한다.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이는 제안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할 기회인 것도 같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고,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불신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면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보다 불신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을 선택하셨다.

세 번의 시험을 통해 사탄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며 더 좋은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하셨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들에게도 사탄은 하나님을 믿지 말라며 더 좋은 것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사탄의 말을 따랐다.

믿음의 싸움

이것이 오늘날 우리도 싸우고 있는 믿음의 싸움이다. 무엇을 믿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의 싸움이다. 그때그때 상황을 보며 더 믿을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계속해서 믿고 신뢰할 것인지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은 모든 현재 눈에 보이는 상황을 초월할 수 있게 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을 믿었고 현재 그들 눈에 보이는 것에 굴복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고 계시지 않은 것 같을 때가 있다. 괴로움 속에 지금쯤이면 뭔가를 보여주셔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이 그리 효율적이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을 때가 있다. 뭔가 더 나은 방법이 있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보다 당장에 보이는 무엇을 경험하고 증명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싸움이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하셨다. 십자가를 앞두고서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구하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가 그분의 결론이었다(마 26:39).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눅 23:46).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계속되는 신뢰인 것이다. 한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의 믿음은 결국 보상을 얻는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믿음에 이렇게 보상하셨듯, 우리의 믿음에도 보상하실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법으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 현실이 될 날은 반드시 온다.

그동안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다. 초조해하고 조급해하지 않는 가운데 계속해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사탄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도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상황도 내 믿음과는 다르다. 그때 내가 믿는 믿음의 대상을 생각하라. 그것은 사탄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오직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경주를 달리라.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라.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믿음의 본이다.

Grace to Korea 의 자문 목회자,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웹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