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역할(2): 하나님이그들을 목자들이라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

This entry is part 2 of 6 in the series 목회자의 역할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각자의 교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직분을 수행하는지 밝혀 규정하는 것 중에는 대표이사, 대통령, 심지어는 왕이라는 몇 가지의 리더십 모델이 있다. 그리고 혁신적인 리더십 스타일, 테크닉, 그리고 조직화에 집착하는 풍조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캐머런이 지난번 지적한 바와 같이 성서가 거듭 강조하는 리더십의 모델인 목자는 오늘날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버려지고 짓밟혀 버렸다.

나는 현대의 독자들이 관련지어 이해하기에 목자가 가장 쉬운 표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동의 하지만,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일회용 비유를 포함 하셨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약 성서의 보존 기간이 지났다 거나, 또는 이 고대 문서에 21세기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식의 가식적인 행동은 하지 말자.

목자라는 이미지는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니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성서의 필자들이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의도하시는 목사의 역할에 대한 소중한 진리를 보여주시기 위해 분명한 목적하에 이 단어를 선택하셨다. 

바울은 사도행전 20:28-31의 풍성한 비유로  주님 자신이 세우신 목자들의 역할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경계, 돌봄 그리고 보호”등 세 가지가 경건한 목자의 기본 의무임을 강조했다. 

경계

승리하는 모든 목자는 방심하지 않는다. 당신의 눈이 끊임없이 산란하게 헤매면 양무리에 대한 파악이 불가능해져 자신의 양 떼를 좇는 도둑이나 그 밖의 위협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목자의 본분의 핵심은 부단히 지키고 경계하는 태도에 있다.

그리고 바울은 진실한 목자의 경각심이란 자가 검진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목회자가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가늠하지 못한 채 어떻게 그에게 속한 회중의 영적 필요를 살펴 바르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반대로 자기 기만적인 지도자가 과연 어떻게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리더십을 가져다줄 수 있단 말인가?

존 맥아더는 자신의 주석에서 성경적 리더십은 엄밀한 자기 성찰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지속해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첫 단계는 자기 성찰이다. 바울은 젊은 설교자 디모데에게 4장 전체를 통해 훈계한 후 (딤전 4:1-15), 디모데에게 자신을 살필 것을 부탁하며 끝을 맺는다 (16장).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바울은 디모데 자신과 가르침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면밀히 살필 것을 당부한다. 이것은 디모데 자신의 견인과 구원 그리고 그를 듣는 자들의 견인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충직한 목자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것에 관해 신중하며 철저하다. 그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끼치는 영향의 심각성을 알고 또한 그의 양 떼와 특히 목자 자신 안에 잠식해 있는 죄를 분별해 내는데 경계를 게으르지 않다.

돌봄

목자의 직분은 자신의 양무리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양들을 아래에 두고 단지 저 높은 전망대에 앉아 있지 않다. 그의 주된 일은 그의 양들이 모여있는 있는 지면에서 양 떼 안으로 들어가 이루어진다. 존 맥아더는 필수적인 사역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먼저 목자 자신에 이어 자기 가족을 면밀히 점검한 다음 (딤전3:4-5) 지도자의 중점적 사항은 그의 양무리에 대한 영적인 보살핌이다. 양무리를 돌보는 일은 먹이는 일과 이끄는 일을 반드시 수반한다. 무리와 목자에 대한 비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양은 더럽고 소심하며 무력해 지속적인 보호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양이기에 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목자는 ‘포이마이노’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목자의 모든 의무와 책임을 포괄하여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먹이는 것이다. 요한복음은21:15-17에서 예수님은 세 차례에 걸쳐 베드로에게 그분의 양을 돌보라 명령하신다. 예수님은 두 번째 명령에서 포이마이노를 사용하셨느나 첫 번째와 세 번째는 “먹이는.”이라는 국한된 의미의 보스코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그렇다면 분명히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첫 번째 임무는 먹이는 것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목자는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메마른 땅들로 양들을 인도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듯 하게 보인다. 이렇게 황무지로 그들을 이끄는 동안 양들은 영적으로 연약해져 거짓 교리의 독풀을 먹으려 한다든지 또는 거짓 목자를 따라가려 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진실한 목자는 절대로 그의 양들을 굶도록 내버려 두거나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마구 먹도록 부추기거나 양들이 좋아할 만한 아무 먹이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찾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목자의 임무는 양들을 좋은 영양섭취로 튼튼하고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뿐 아니라, 진실한 목자는 시종일관으로 그의 모든 양 떼를 보살핀다. 그는 수익만 생각하거나 이득이 안되는 사람이나 그러한 일을 잘라버리기 위해 유심히 검토하고  있는 CEO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목자는 힘겨워하는 양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자신의 양무리를 골고루 품어주는 사랑을 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정확히 그리고 부족함 없이 충족되었는지 알기에 힘쓴다.

주님은 무자비하고 강압적으로 양들을 무시하라고 사람들을 목회 사역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반드시 회중의 영적 건강에 우선순위를 두고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응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보호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들이 맡은 양 무리를 충실히 지킬 것을 목자들에게 훈계한다. 바울은 교회가 안팎으로 직면한 위협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자들에게 치명적인 위험들로부터 양 떼를 신중히 보호할 것을 경고한다. 존 맥아더는 자신의 주석에서 바울이 묘사하는 바를 생생히 설명한다.

진실한 목자는 양 떼를 먹이고 인도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포식자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고후11:4)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골1:6)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떠난 후 에베소의 교회를 위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리가 선포 될 때마다 어김없이 직면하는 사탄과 그의 거짓 교리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바울의 예상대로 거짓 교사들은 에베소의 양 떼 가운데 잠입해 그들을 공격했다(계2:2). 교회 밖으로부터의 거짓 교사들의 공격보다 훨씬 더 교묘한 것은 교회 안에서의 변절이다. 그래서 바울은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행 20:30) .”라 경고했다. ‘어그러진’(Perverse)이란 단어는 디아스트렙호( diastrephō) 에서 유래된 말로 ‘왜곡하다’ 또는 ‘비틀다’라는 의미다. 거짓 교사는 자신의 부패하고 그르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한다. ‘끌어’(Draw away)라는 단어는 아포스파오(apospaō)에서 온 단어로 ‘끄집어내다’ ‘무리하게 떼어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만일 목회자들이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이리들이 양 떼를 끌어내어 집어 삼켜버릴 것이라 바울은 경고한다. 그리고 목자가 양들을 지키는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감추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늘 변함없이 그들을 스스로 위험을 알아챌 수 있도록 경고하고 훈련하는데 있다. 이러한 훈계는 목회자 바울의 사역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충직한 목자는 또한 반드시 양들을 경고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사역했던 에베소에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한다. 훈계(Admonish)라는 단어는 격려가 포함된 경고인 뉴테테오(noutheteō)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골1:28).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는 바울의 사역 양식에서 본 바와 같이 중대성을 띤다. 그는 에베소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피며 그들을 삼 년이라는 기간 동안 훈계한다 (행20:20).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잠을 설치며 밤낮으로 쉬지않고 (살전2:9, 살후3:8) 사역했다. 그리고 바울에게 그것은 한낱 학문적 과제가 아니었다. 그는 눈물로 경고하며 강조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침입에 의한 끔찍한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오직 바울을 본보기로 삼을 때 충직한 목자는 계속 위협하는 흉포한 이리들과 병든 양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양 떼를 지킬 수 있다. 찰스 제퍼슨은 목자로서의 목회자라는 자신의 책에서 보호 역할의 목자를 이렇게 요약한다.

무엇보다도 중동 지방의 목자는 파수꾼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감시탑이 있었다. 시종 지평선을 살피며 나타날지도 모르는 적의 접근을 눈을 크게 뜨고 지키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세심하고 신중해야 했다. 경계심은 기본 덕목이었다. 깨어있는 신중함은  목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적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기에 잠시라도 졸음에 빠져들 수 없었다. 그의 경계심 하나로 적을 피할 수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적이 있었지만, 그 모두가 각기 두려 우리만큼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시기에 따라 홍수가 있었다. 물줄기는 어느 사이에 불어나 둑을 넘쳐흘렀다. 재난을 면하기 위한 재빠른 행동이 요구되었다. 탐욕스럽고 음흉한 사자, 곰, 하이에나, 자칼, 이리와 같은 교활한 적들 또한 있었다. 공중에도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어린 양이나 아이를 낚아채 갈 태세를 하고 있는 거대한  맹금조(猛禽鳥)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무엇보다도 위험한 건 목자를 살해하고 양들을 약탈해 가는 강도와 도둑과 같은 인간의 탈을 쓴 야수들이었다. 중동 지방에는 목자와 그의 양 떼를 향한 적대적 세력이 무수한 위험으로 가득 도사리고 있었다. 에스겔, 예레미야, 그리고 하박국은 목자란 깨우치게 하여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해 세워진 파수꾼이라 했다.

많은 사역자는 목회자로서 경계하여 깨어있지 않음으로 실패한다. 졸고 있는 사이에 자신의 교회를 분열되게 하고만 것이다. 당연히 이리도 먹이를 찾는 새도 도둑도 없다고 여기어  졸고있는 동안 적들에게 습격 당한 것이다. 그릇된 생각, 파멸적인 해석, 퇴폐적 가르침이 들어왔으나 몰랐다. 그는 문학 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신학 계간지(季刊誌)에 대한 논의에 여념이 없어 젊은이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또는 무슨 이상한 생각들이 지도층 그룹 멤버들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는지 몰랐다. 이러한 사나운 이리들과 냉혹한 하이에나와 같은 실수들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갈가리 찢은 후, 한때 불일듯 했던 교회를 짓이겨 빈사 상태의 교회를 만들어 놓는다. 경건한 목자는 경계와 온정어린 보살핌과 지속적인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의 삶은 양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을 기쁘게 내어주며 그들을 섬기고 보호하는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각기 목회자의 직분에 대해 온갖 예를 적용할 수 있으나 성서가 택한 비유처럼 일관성 있고 포괄적이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것이 목자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목자라고 부르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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