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nd A: 청소년의 구원 상담 시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들어야 할 복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았던 성경이 능히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 것처럼(딤후 3:15),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복음은 성경에 기록된 지혜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청소년이 모두 시편 기자처럼 이렇게 노래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71:17)

구원 상담은 대상마다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을 두고 있어 쉽게 말하기 힘들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특별히 어려서부터 말씀을 들어온 청소년들의 구원 여부를 확인할 때 유의해야 할 점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얼마나보다는 어떻게

청소년의 시기는 여러 가지 유혹에 많이 노출되는 시기입니다. 내면의 죄와 세상의 유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주 넘어집니다. 스마트폰과 씨름하고, 성적 호기심에 따라 행동하고, 자기 절제에 실패하여 게으름과 방탕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감정이 급히 절정으로 치솟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을 상담할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실수는 바로 그들의 삶을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오래 붙잡고 있으니, TV 시청을 오래 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분노하고 부모에게 예의 없이 대하므로, 교회 와서 말씀 시간에 졸고 있기 때문에, 주중에 성경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습니다(마 7:16, 20). 하지만 열매는 어디까지나 구원의 결과이지 절대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어려서부터 말씀을 듣고 자란 청소년은 성경의 가르침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기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인정하지만, 이를 주관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믿었다고 생각해도 그에 합당한 열매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그 “믿음”을 의심합니다.

이런 청소년을 상담할 때는 그들 외면이 보여주는 연약한 모습보다는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주 넘어지더라도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주가 미워하시는 죄와 싸우기 위해 계속해서 씨름하고 있다면 단지 토요일 새벽에 축구를 보고 주일에 졸고 있다는 이유로 거짓 그리스도인이라 속단할 수 없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미 많은 인격적, 사회적, 성적 훈련이 진행된 단계에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청소년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죄와의 싸움, 세상 유혹과의 전쟁은 청소년보다 더 다양하고 치열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들 앞에서 외식을 행한 일,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분쟁하여 교회를 갈라놓은 일, 문제 많았던 고린도교회 성도들 등 외적인 증거를 구원의 근거로 들이밀면 구원받지 않았다고 판정받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성인을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을 상담할 때, 우리는 외적인 증거에 집착한 나머지 그들의 내면의 증거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갓난아기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음식을 먹고 마시는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스스로 해결하는지, 말을 하는지, 책을 읽는지로 판단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갓난아기는 죽은 것으로 판별이 될 것입니다. 갓난아기의 단계에서는 숨을 쉬고, 주는 젖을 잘 먹고, 잘 소화하는 것으로 그들이 살아있음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하고 있는지보다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죄를 얼마나 잘 절제하고 이겨내는지보다는 죄와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더 알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많은 상담가가 자기의 구원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의 구원 여부를 속단하려고 합니다. 그런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이 우리의 구원 여부를 자기의 변화된 삶을 토대로 분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상담하는 청소년의 영적 성숙도에 맞춰 그의 외적인 증거를 고려하되 내면의 변화에 더 중점을 두고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보다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2. 무엇을보다는 누구를

어려서부터 말씀을 들어온 청소년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 항상 의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또 알고 있는 그것을 얼마큼 확실히 믿는지 늘 고민합니다. 

물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입니다(요 17:3). 하지만 여기서 “아는 것”은 단지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경험적인 앎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오직 영적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맺어진 관계 속에서 얻는 앎입니다.

많은 청소년이 구원의 확신을 물어보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관한 지식을 늘어놓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으며 의심하지 않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진짜 믿는 것(혹은 아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합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내일 시험 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데 오늘 천하태평이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걸 보니 진짜 내일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위와 같이 어떤 사실을 단순히 알고 믿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은 어떤 대상과(하나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음란물을 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압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실제로 음란물을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동기로 음란물을 피하는데, 바로 자기가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이 구원을 이야기할 때 죄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말씀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잘 설명합니다. 어느 정도의 믿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이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결혼이 무엇인지, 남녀가 결혼하면 각각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정작 배우자와 지금 어떤 관계에 있는지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의 구원을 상담할 때 수능시험을 치듯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점검하기 위한 질문에 치중하기보다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인해보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그들이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해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구원은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 영원히 연합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해를 거듭할수록 그리스도와 더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고 있는지, 그 관계가 소원하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관계를 방해하는 주된 장애물은 무엇인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진실로 알고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3. 사역보다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청소년이 얼마나 활발하게 사역지에서 일하고 있는지보다는 그 사역을 통해 사람을 섬기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아노 반주, 교재 정리, 청소, 특별활동 참여 등 다양한 활동에는 자기 성향이나 흥미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여러 활동에서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라고 착각하는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해 보였던 청소년이 교회 활동이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면의 깊은 동기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요일 4:20-21). 그러므로 올바른 질문은 청소년이 애찬도우미로 열심히 봉사하는가? 보다는 왜 그가 그 일을 기쁨으로 하고 있는가? 입니다. 그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가? 그가 하나님의 집에서 가족들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가?

기쁨으로 교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더라도 그 동기에 관한 질문을 해줍시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왜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가족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일이 되는지 충분히 설명합시다. 입술로만 혹은 행위로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는 자들로 기르지 말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자들로 기릅시다.

결론

사실 영혼을 진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의 길을 안내하는 자로 청소년을 상담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있어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요 14:6) 그분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합니다. 

우리는 청소년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지 묻기보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보다는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화려한 활동보다는 동기가 바른 순종을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쉽게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주지 말아야 할뿐더러 나도 오르지 못할 기준을 제시하여 마음속에 자라난 생명의 싹을 짓밟아서도 안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삶을 지켜보면서 말씀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와 가르침을 통해 삶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니(딤전 2:4)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시다. 복음은 믿는 청소년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마지막으로 그루뎀이 한 말을 참고해보십시오.

중생이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다. 그 일은 단 한번 일어나며 한 순간에 우리의 영혼이 죽었다가 다음 한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생명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 그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모를 수 있다. 특히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나, 오랫동안 복음주의 교회의 예배나 성경 공부에 참석하면서 점차적으로 복음을 이해한 사람들의 경우 “완악한 죄인”에서 “거룩한 성도”로의 현격한 행동의 변화를 보인 극적인 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그 안에 영적인 삶을 일깨워 준 순간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의 습관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바람에 있어서 점차로 분명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사실 어른이 기독교인이 되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그 안에 새 생명을 즉각적으로 갖게 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어떤 결정적인 시간에 중생이 일어난다. 그런 경우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구원을 위해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든지, 죄가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든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든지(그와 같은 것들이 의미 있는 영적 행동임을 알게 된다), 예배 때 기쁨을 느낀다든지, 성도간의 교제를 원하게 되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고 싶게 된다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진다든지 하는 것들이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중)”, 317p)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