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도둑질, 이름조차 부르지 말아야 할 음행

최근에 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웹하드 불법 동영상에 대해 방송을 했다. 디지털 성폭력 영상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웹하드에서 “유작”이라는 이름으로 다운로드 비용 100원에 계속해서 공유되고 있는 현실을 다뤘다. 누군가는 불법으로 촬영한 자기의 수치스러운 영상 때문에 고통스러워 자살을 선택했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 더러운 현실을 충격적으로 담아냈다.

동영상을 만드는 자, 올리는 자, 그리고 방조하는 자의 연결고리를 추적하겠다고 한 방송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바르게 지적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매출을 올리는 웹하드 업체가 불법 영상을 웹하드에 대량으로 업로드하는 헤비업로더를 보호하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하는 문제, 필터링 하도록 되어 있지만, 필터링 업체를 쥐락펴락하며 법망을 피해 가는 행태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방송이 다루지 않은 문제의 본질을 주목해 본다. 디지털 성폭력 영상뿐만 아니라 웹하드에서 공유되고 있는 자료의 90% 이상이 불법이지만 웹하드를 찾는 이가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동영상을 만드는 자, 올리는 자, 방조하는 자를 문제로 삼았으나, 나는 가장 큰 문제가 그것을 찾는 자가 많다는 데 있다고 본다. 아무도 찾는 자가 없어 수익을 전혀 낼 수 없다면 법을 어겨가면서 영상을 만들고 올리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죽은 사람의 수치스러운 영상을 단돈 100원에 판매하는 회사도 파렴치하지만, 그 영상을 100원 주고 사서 보는 사람의 양심에는 문제가 없는가?

대표적인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인 “밤토끼”가 2018년 5월 23일 운영자 검거로 폐쇄되었는데, 돈을 지급하고 봐야 할 웹툰을 불법으로 제공하고 성인 광고나 도박광고 등을 통해 이익을 얻었던 사이트였다. 2017년 한 해 이 사이트로 인한 피해액만 1000억에 이른다고 한다. 충격적인 부분은 이 사이트는 개설한 지 2년도 안 되어 네이버 웹툰을 제치고 웹툰 사이트 1위를 차지하고 트위터보다 높은 대한민국 13위 사이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았다는 말이다.

웹툰을 불법으로 올리는 자와 방조하는 자를 검열하고 나서 문제가 해결 됐을까? 그렇지 않다. “밤토끼”를 통해 하루에만 116만 명이 불법으로 웹툰을 찾아봤으니, 그 소비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또 다른 불법 웹툰 사이트가 계속 생기고 부가적 수입을 얻는 것이 멈추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Young man with hands clasped together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두 가지, “곧 음란과 도둑질”을 말씀하셨다(막 7:21). 흥미롭게도 지금 이야기한 법적 사회적 도덕적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음란과 도둑질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웹하드의 불법자료,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 디지털 성폭력 피해 영상 등의 문제 그 본질은 죄인이 마음으로부터 음란한 것을 좋아하고 도둑질하기를 즐거워한다는 데 있다.

하루 116만 명의 소비자, 그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 웹하드의 불법 자료를 이용하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 성인 영상을 구매하는 사람은 없을까?

어떤 그리스도인은 불법다운로드 문제를 이야기할 때 불편해한다. 현실을 부정한 융통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뭔가 꽉 막힌 사고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롭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빡빡하고 율법적으로 만든다고 불평한다. 성인 영상을 불법으로(다운로드 혹은 스트리밍으로) 즐기는 행위 역시 떳떳하고 당당한 일은 아니나 성적 호기심 때문에 범할 수 있는 실수이지 심각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아는지 모르는지의 문제다. 즉 참된 구원과 관련된 문제다.

에베소서 1-3장까지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실을 강조한 바울은 4장 17절부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듣고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엡 4:22). 옛사람은 감각 없는 자처럼 방탕에 방임하고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사람이다(엡 4:19).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죄인지 느끼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옛사람과 완전히 다른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엡 4:24).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개선된 모습, 괜찮은 상태가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을 따라”(“in the likeness of God”),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내가 입어야 할 새로운 모습이다.

이어서 구체적인 예시로 도둑질 그리고 음행을 언급한다.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

옛사람은 도둑질한다. 자기 탐심에 무감각하여 그 탐욕에 따라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탐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갈 5:24).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다시는 도둑질 하지 말아야 한다(“must steal no longer”, NASB). 더 나아가 새 사람은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정직한 돈을 벌고 그 것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옛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 이웃의 것의 훔쳤다면, 새 사람은 이웃의 유익을 위해 자기의 것을 기쁨으로 희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제자가 보여야 할 방향전환이다. 도둑질하는 사람에서 구제하는 사람으로 180도 달라지는 것이다.

옛사람은 음행을 좋아한다. 바울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고전 5:11). 그는 불의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고전 6:9).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한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음행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성도로서 입어야 할 새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음행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는 진멸, 몰살의 수준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형제자매들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다. 

Cross silhouette and the holy blue sky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라(살전 4:3-5)

여기서도 옛사람과 새 사람의 분명한 구분이 나온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은 옛사람은 색욕을 따르고 음란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새 사람은 거룩함을 좇는다. 수직적 관계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추구하고, 수평적 관계에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유일한 성적관계자인 아내 혹은 남편(미혼인 경우 미래의 배우자)을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해야 한다. 음란과 색욕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관계(부부)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을 벗어나는 일이다(심중의 생각이라도, 마 5:28).

그리스도인 중에 불법다운로드 문제나 포르노의 문제와 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아무런 유혹도 받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싸움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패배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왜 우리는 계속 패배할까?

가장 큰 이유는 죄인으로서 우리가 탐심과 음란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그 죄를 선택하는 순간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배우자와 미래의 배우자 포함)보다 내 욕심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성경은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우상숭배는 또한 영적 간음이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할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지 못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문제 삼았던 불법자료를 만드는 자, 올리는 자, 방조하는 자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그 불법 사업이 운영될 수 있게 만드는 거대한 불법유통시장의 소비자인 우리의 죄를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면 나의 탐심이 정직하게 소프트웨어와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그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음란한 마음 때문에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온갖 범죄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무감각한 것이다.

이웃이 정당한 소득을 얻지 못하고, 이웃이 망하고, 이웃이 자결하고, 이웃이 납치되고 감금되며, 이웃이 어린 나이에 자유와 희망을 잃고 성적 상품이 되어버리는 일, 그런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나쁜 범죄자라고 욕하고 있겠지만, 그 나쁜 사람들은 옛사람을 버리지 않고 있는 나의 탐심과 음란함을 자본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감각한 것이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법이 있을까?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모든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동기이자 힘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리셨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엡 2).

탐심이 내 속에서 꿈틀거릴 때, 음란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말자. 바로 그런 옛사람의 모습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옷 입히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우리의 더러움을 대신 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게 해달라고 바울처럼 간절히 기도하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달라고 구하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 크신 사랑을 음란과 탐심보다 값싼 것으로 여기지 말라.

이 문제에 노출되어 많이 넘어졌던 자로서, 지금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속사람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자. 하나님께서 그런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내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새 사람으로 빚어 가실 것이다.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