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인에게 사춘기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춘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로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릅니다. 최근엔 이 시기 아이의 특별한 행동을 가리켜 ‘중2병’ 증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사춘기가 있을까요? 위에서 정의한 내용에 따르면 구원의 여부와 관계없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는 누구나 찾아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 과정입니다.

많은 기사와 칼럼에서 사춘기 자녀와 대화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마음을 열어라’, ‘말하기보다 들으라’,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다가가라’, ‘인정하고 공감하라’ 등 다양하고 유익한 조언이 많이 제공됩니다.

하지만, 사춘기를 바라보는 시각,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 그리스도인이 달라야 할 점은 없을까요? 어려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춘기를 겪을 때 갖춰야 하는 마음 자세는 무엇일까요?

 

첫째, 사춘기는 자유롭게 죄를 지어도 괜찮은 특별 사면 기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공감과 이해를 넘어 ‘이 시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은 당연한 거야’라고 인정합니다. 육체의 변화에 따라 불안감을 겪게 되고 그러면서 호기심이나 여러 감정과 욕구로부터 자기를 통제하는 것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짜증을 내거나, 분노를 터뜨리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거나, 무례하게 행하거나, 자기 유익만 구하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등 보통 사춘기에 보이는 증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죄입니다. 육체의 변화가 새로운 욕구와 감정을 가져오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직은 미숙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와 싸우는 것이 당연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3-27)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리기 경주에 참여한 선수에게 “절제”가 필요한 것처럼, ‘이기기를 다투는 자’인 우리도 상을 받도록 절제하며 달음질하라고 명령합니다. 썩지 않는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 보면 처음과 달리 힘에 부칠 때가 찾아옵니다. 이전과 다른 피로도를 보이고, 수분을 필요로 하고, 호흡이 빨라집니다. 달리기 선수는 이런 몸의 변화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통제하고 절제하여 끝까지 경주를 마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사춘기를 보낼 때, 여러 가지 육체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가 생길 때, 결코 그것을 죄를 자유롭게 짓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고 ‘절제’하여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달음질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미운 네 살이라 그러는 거예요’
‘중2병이 생겨서 어쩔 수 없어요’
‘사춘기라서 건드리면 안 돼요’

죄인으로서 사람은 몇 살이든 언제나 밉습니다. 우리는 중2병이 아니라 죄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춘기라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사춘기라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춘기는 성화의 경주 앞에 놓인 ‘멈춤’ 표지판이 아닙니다. ‘유턴’ 표지판은 더더욱 아닙니다. 가파른 언덕길이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화의 오르막길을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에게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은 좋지만, 넘어지고 실패하고 뒤돌아서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 있지만, ‘절제’할 필요가 없다거나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일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사춘기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기간입니다.

물론 사춘기에 보이는 행동을 통제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춘기 이전에 아이는 주로 행동을 교정하는 것으로 충분히 통제됐고,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자기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생각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자기 삶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염려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이럴 때 아이를 더 큰 힘으로 쥐고 압박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의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근육을 단련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사춘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동안 교회에서 배웠던 가르침이 아닌 세상의 가르침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친구들의 의견이 부모의 의견보다 더 의미 있게 들리고, 성경의 가르침보다 대중문화와 유행이 더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부모의 생각을 하찮게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실제로 고민하는 영역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기의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못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 혼란스러운 질문에 성경이 분명히 답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특히 아버지)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엡 6:4). 주의 교훈과 훈계가 그들의 마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돌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무장된 마음, 주의 교훈과 훈계로 견고해진 생각은 그리스도인이 사춘기를 지날 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생활하도록 돕는 강력한 능력의 근원입니다.

행동의 변화에 치우친 교정으로 사춘기의 현상을 통제하려고 하면 금세 지치고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마음이 더 견고해지고 단단하게 무장될 수 있도록 말씀으로 계속해서 훈련하십시오. 내가 고민하는 부분에 관해 성경적으로 잘 풀어 설명한 책을 읽어보십시오. 좋은 말씀을 듣고 서로 권면하고 세워주는 모임에 참석하십시오. 친구와 깊은 고민을 말씀 안에서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요 17:17). 주의 말씀으로 변화된 생각이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셋째, 사춘기는 계명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부모가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밖에 나가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말보다 실제로 그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힘들게 일하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우연히 보거나, 피곤에 지쳐 잠든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로 꾸짖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게 하는 것이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너는 죄인이고, 죽기 싫으면 회개하고 돌아와라!”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 대신 죽기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서고 변화된 것입니다.

사춘기를 겪는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해 삶을 통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경 구절이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가 먼저 보이신 사랑의 복음에 대한 적용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대들지 말아야 하니까, 분노하는 건 죄니까, 무례히 행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니까…

이런 접근보다는,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께서 나에게 무례히 행하지 않으시고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셨으니까, 항상 넘어지고 불안정한 나에게 분노하지 않으시니까, 지극히 작은 나를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 먹이고 입히고 돌보시니까, 그 사랑을 부모를 통해 내게 베풀고 계시니까…

이렇게 그리스도의 은혜가 사춘기를 통과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계명은 강제적인 순종을 요구하지만, 은혜는 자발적인 순종을 불러일으킵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 계명은 불편한 짐이지만, 은혜를 입은 자에게 계명은 순금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입니다(시 119:127).

그러므로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맛보도록 하십시오. 특별히 사춘기를 지날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풍성히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사춘기를 겪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을 것입니다. 그 발의 등이요 그 길의 빛이 되어 삶을 은혜롭게 인도할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춘기를 경험했습니다.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마음과 호기심, 새로운 욕구와 관심, 질문들이 마음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때를 크게 방황하지 않고 잘 이겨냈는데, 그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성품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참석하고 있는 지역교회에서 들었던 말씀, 그 말씀을 함께 듣고 교제한 그리스도인 친구들, 부모의 헌신적인 관심과 기도, 성도들의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죄에 넘어지고 실패한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라고 해서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간과하고 넘어가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절제되지 않는 삶의 습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늦잠을 자기도 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습관만 강제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그것이 왜 합당한 길인지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론 강력한 경고와 훈육이 있었지만, 사춘기를 잘 지나온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저와 함께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춘기를 죄에 면죄부를 주는 특별 기간으로 삼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 질문에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풍성히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와 사랑의 강권함으로 인하여 마음의 변화를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달음질을 사춘기의 오르막길에서 잘 해내기를 기도합니다. 승리의 관을 그분이 주실 것입니다.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