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만족(3):주님의 섭리 가운데 만족하기

This entry is part 3 of 3 in the series 진정한 만족

하나님을모르는사람들은 만족의 진정한 의미를 절대 알 수 없다.불신자들은혼란에둘러싸여무력감으로그들의삶을살기마련이다. 무신론과진화론적믿음안에있는사람들은 평화와안전그리고지속적인번영에 대해 갈구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정한 만족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세계관(무신론, 진화론)은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났으며,우리의 존재는 우연히 생겨났고, 삶은 무의미하고 비극은불가피한 것으로가르친다. 하나님을 멀리하여눈을감는사람들은그분의거룩한계획과목적을깨닫지못한다. 존맥아더 목사가말한 것처럼,만족은오직주님의섭리에의한것이다:

우리가진정으로 주께서 자신의거룩한목적과자신을사랑하는자들의궁극적인선을위해모든것을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우리는결코우리의불만족을 해결할 수 없다. 그 이유는우리 모두가 자신을 삶을 통제할 책임이 있지만,스스로 통제하려 노력하면 할 수록 그렇게 할 수 없다는것을반복해서깨닫게되어 결국은 좌절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여러분이나나보다훨씬더 크신 하나님께서이미모든것을통제하고 계시다.

하나님의섭리(God’s providence)에대한동의어는신성/신적공급(divine provision)이지만, 그것은복잡한신학적현실에대한제한적 표현이다. 섭리는주께서그의목적을이루시기위해 모든 것을다스리시는방법인데,대조적으로그것이무엇을의미하는지설명해 보겠다.

 세상에는주께서일하실 수 있는두가지방법이있다. 하나는 기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섭리이다. 기적은자연적인설명이필요치않다.정상적인삶의흐름 가운데, 하나님은갑자기그 흐름을 막으시고기적을주입시키신다.그리고나서주님은마치구약에서그의 사람들이홍해를가로질러다시육지에닿을때까지홍해를가르셨던 것과같이흐름을정상으로되돌리신다.여기서당신에게한가지질문을하고 싶다.당신이 생각하기에 어떤 것이 더 쉬울 것 같은가?멈춰,기적을행할것이야라고하는것과, “나는한가지 일을 행하기 위해500억개 정도의 상황을 예측하여 조율했어라고말하는것이쉽겠는가?바로후자가섭리에 대한 것이다.예를들어, 하나님께서요셉과, 그리고에스더의삶을 섭리 가운데 어떻게다스리셨는지생각해보길 바란다. 오늘날에도주께서는우리를위해똑같이일하신다. [1]

 사도 바울은 주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 진리를 포용함으로 만족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1-12).

바울이자신의 처지에 상관 없이만족하는법을배우는것에대해말할때, 그는빌립보사람들에게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말한다.이 만족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로부터재정적지원을받았던지 아니면 지원없이 사역을 했던지 상관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첫 방문 이후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지원군이자 동역자였다.

 빌립보서 편지를 썼을 때는, 바울이빌립보 지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나서 약10년의 세월이지났을 때이다. 사도행전16장은바울이빌립보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어떤일이있었는지 설명한다. 바울과그의동역자들은루디아라는이름의여성사업가를만나그녀와그녀의친구들에게복음을전했다. 그들의회심의 결과로 그 지역에교회가개척된다. 빌립보 교회 사역 초기에바울은 어떤 한여종에게 있던 귀신을 쫓아냈다.여종의주인은 – 바울이여종의 점치는 능력을 없앰으로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분노하여바울을 고발하여매로치게 한 후에, 감옥에 가두게 했다. 하지만 바울은 앞에 놓인 비참한상황에대해불평하는대신, 늦도록감사기도와노래로하나님을찬양했다. 그리고, 하나님은놀라운방법으로응답하신다. 주님은감옥의기초를매우심하게 흔드셨고, 감옥의모든문이활짝열림으로죄수들의발과손목에 있는사슬이떨어져나갔다. 놀라운경험과암울했던상황에 대한바울의반응은간수와간수의가족을구원으로이끌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가성장하여바울에게선교활동을위한자금을지원한것이분명하다. [2]

 하지만, 빌립보서4:10이말하는바와같이, 빌립보교회에서지원자금을보낼기회가계속없었다가(아마도그들의극심한가난때문에) 이제야비로소다시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빌립보 교회가마지막으로바울을 지원해오래되었다. 하지만,바울은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그들이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생각이없던것이아니라기회“opportunity” (Gk., kairos)없었다는것을알고 있었다. 이는시기적또는기회적인관점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한연대기적시간 순서를의미하는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너희가나를생각하던것이이제다시싹이남이니라고 말을 한다. 이는다시꽃을피울있는기회라는뜻의원예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써, 이를 적절히 번역하자면, “여러분의 사랑이 다시 꽃을 피웠다. 나는 그것이 그 자리에 항상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지금껏 꽃이 맺힐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꽃은 알맞는 시기에 피는 것인데 지금까지 그 시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요점은바울이주님의섭리 안에서인내 가운데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주님의 시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만족 가운데기다렸다.그는공황상태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다.그런일들은결코일어나지 않았다. 대신바울은때가되면하나님이그의필요를채워주실것이라확신하였다.우리도 오늘날바울과같은확신을가질있다. [3]

바울은모든곳에서하나님의섭리를 바라보았고, 삶의극심한변화에당황하지않았다. 그는아무리좋지상황에서도하나님의섭리와목적에초점 맞췄다. 그가 옥중에 있는 가운데서도”내가당한일이도리어복음전파에진전이된줄을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말한다(빌1:12). 그에게고난은그리스도와깊은교제를맺을수있는기회였다(빌3:10). 심지어죽음은 그에게 있어 큰 이득이었는데, 이는 세상을 떠남으로그리스도와함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빌1:23). 바울에게 있어서 경제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아무런실질적인가치를지니지않았다(빌2:8).

이러한이유로, 그는흔들리지않는만족감으로인생의고된풍파를이겨낼수있었다. 그렇다고해서바울이 말하고자하는 바가하나님이 결국은 하시니 우리의 인생을 가는 대로 놓아버리라는뜻은 결코아니다. 존맥아더 목사가신약성경을 통해바울의예와직업윤리를요약한것처럼: “최선을다하여열심히일하고주께서결과를주관하시는것에만족하라.”

진정한 만족(2): 주님의 섭리와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