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만족(1): 진정한 만족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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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락한 세상에서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현재 삶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사실은 지극히 당연하다. 삶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60세의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항상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 삶에 대한 불만은 만족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비관 또한 끊임없는 불만을 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이다. 계속되는 전쟁, 치솟는 부채, 부패한 선거, 도덕적 타락 등 이 모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로막는다. 가정을 깊이 드려다 봐도 이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것이: 가정의 기능장애, 질병, 노화, 재정적 걱정 등이 현재 우리 가정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만족감마저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불신앙의 세계는 만족을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그 만족을 얻으려 한다. 부, 권력, 존경, 그리고 일시적 기쁨 이 모두가 강한 만족을 수반하는듯 하지만 우리에게 갈증만 더해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 결국 더 큰 불만을 일으킨다. 

본질적 만족’ 자족은 만유의 주재이시며 불변하시는 하나님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삶에서 출발한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이어서 또 말하기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나니” (빌립4:11). 이는 바울이 고통이나 재난 또는 어떠한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그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에 나온 사도바울의 “자족”은 그의 앞에 닥친 모든 고난을 뛰어넘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을 가져다주며 세상의 걱정에서 그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 대한 바울의 의존적 태도, 그리고 예수님으로만 그가 자족한 이유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4:13)

존 맥아더 목사가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를:

바울은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할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가능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다른 서신서에서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이에 대해 기술 하였는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즉, 만족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1]

그러나 바울의 견해는 그가 살던 시대의 “그리스 철학-스토아학파” 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맥아더 목사는:

스토아학파는 모든 현실은 물질적인 것이며,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열정과 사치를 버리는 것을 강조했다. 이 학파는 한 사람이 완전히 무관심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목표나 만족이 그제야 비로소 성취된다고 믿었다. [2]

그러나 바울이 표현한 자족은 그의 열정과 상반된 것이 아니었으며, 그 자족은 그의 궁극적 열정인 그리스도로부터 발견되었다. 그의 열정은 그를 만족시키는 모든 것들과 단절되어 있지 않았다. 그 열정은 모든 만족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족의 근거가 되셨다. 그리고 그가 개척한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그의 형제(믿는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존 맥아더 목사가 말하기를, “성령님의 감동 아래 기술한 “만족’자족” 에 대한 사도바울의 묘사는 그리스 문화에서 말하는 “만족’ 자족”의 의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접근을 하였다.” [3]

바울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주님의 감동으로 쓰인 감사의 글(thank-you note)인 것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4:10-19)  

바울은 빌립보 교인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고마움 가운데 발견되는 바울의 “자족”은 로마 감옥에 구금된 극심한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자족-주께서 설계하시고 제공하시는” 을 묘사함으로 빌립보 교인 또한 주께서 주시는 “자족”을 배우길 원했다. 

본문10:19 에서,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그들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을 “자족”의 한 예로 제시했다. 바울은 모든 상황 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 그리고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았는데 이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평화로, 평화의 하나님으로 보호받았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바울의 예는 특히 어떠한 것에도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 문화와 관련이 있다. [4]

앞으로 우리는 며칠간, 진정한 “자족’ 만족”의 다섯 가지 필수 원리를 포함하는 “빌립보서4:10-19” 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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