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배우자와 성도 곁에 가까이 가기 힘들어요.

사람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생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자들이 벗어 버려야 할 옛사람의 “모든 악독”에는 “노함과 분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엡 4:31).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기 전에 육체 가운데 살 때 우리가 행했던, 그러나 이제는 벗어 버려야 할 옛사람의 행위가 바로 “분함과 노여움”입니다(골 3:8).

육체가 했던 분명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분냄”이지만(갈 5: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 5:24). 

그러므로 각처에서 거듭난 형제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때 “분노와 다툼”을 버려야 합니다(딤전 2:8).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약 1:19).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약 1:20).

모든 그리스도인이 옛사람의 행위인 분노를 벗어 버리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싸움에 능숙한 사람이 있고, 전혀 싸우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자주 분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않고 적당히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 중에는 오랜 세월 이렇게 살아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단단히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분냄과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하고 계속될 것입니다.

배우자나 성도 중 욱하는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곁에 있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분노 조절도 벅찬데,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조절에 실패한 분노를 나에게 쏟아내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거리를 두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우자나 성도를 어떻게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욱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첫째, 욱에 욱으로 답하지 마십시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급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과격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죄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을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롬 12:17). 배우자나 성도가 욱하여 분노하는 죄를 범하면 그에 대응하여 분노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분노에 많이 놀라고 상처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나도 과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은 “사랑과 화평과 오래 참음”을 맺기 원하십니다(갈 5:22).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9-20)

당신은 부당한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과 아무런 상관 없이 급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배우자나 성도를 통해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기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악으로 갚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악으로 갚았을 때 배우자나 성도가 더 극렬히 타오르는 분노를 퍼붓는다면(그렇게 반응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당하는 고통에 무슨 칭찬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고 선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유순한 대답을 하는 것은 당신이 보일 수 있는 선입니다. 오래 참고 사랑하고 화평을 이루기 원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선을 베푸십시오. 당신이 베푼 선이 또 다른 고난을 가져온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오래 참으십시오.

분노를 가장 효과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온유와 겸손의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뿜어져 나온 악을 당신 안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의 마음으로 이겨내십시오.

둘째, 욱이 사그러들고 나서 욱을 다루십시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하나님은 흠 없는 아들의 형상에 이를 때까지 성도 안에 있는 옛사람의 행위를 반드시 제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실 때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지체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형제의 죄를 직접 상대하여 권고하거나(마 18:15),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눅 17:3)고 권합니다. 피차 권면하여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합니다(히 3:13). 서로 죄를 고백하라는 명령도 있습니다(약 5:16).

바울은 성도가 서로의 짐을 져야 한다고 권하면서, 형제의 범죄한 일이 드러날 때 자신을 살펴보아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명하고, 동시에 범죄한 형제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명령합니다(갈 6:1-2).

그러므로 우리는 급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배우자나 성도를 방관하거나 무시하거나 멀리 피하는 것으로 우리 할 바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형제의 죄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않는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배우자와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 일에 우리가 사용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롬 6:12-14).

조용한 시간에 상대방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두고 이 문제를 다루어 보십시오. 배우자나 성도를 통해 내가 어떤 상처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는 일에 어떤 걸림돌이 되는지 솔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원망이나 분노를 담기보다는 상대방이 주님 앞에 거룩하게 변화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또 온유한 심령으로, 겸손히 나 또한 그 문제와 싸우고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상대방의 죄를 다루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듣지 않을까 염려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큰불이 떨어져 내릴까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하고 그 결과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나의 배우자 혹은 성도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의의 무기가 되어 상대방 속에 있는 불의를 제거하도록 하나님께 당신을 드리십시오.

셋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급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배우자 혹은 성도를 어떻게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세워줄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후 자기의 삶은 이제 더는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진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 2:20).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셔서 그분의 눈으로 욱하는 배우자와 성도를 바라본다면 그분은 어떤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겠습니까? 저주와 경멸과 분노의 눈빛일까요? 두려움과 염려와 슬픔의 눈빛일까요? 죄에 대한 슬픔과 분노의 눈빛이 있겠지만, 그들을 그 죄에서 돌이키고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사랑과 온유와 겸손의 눈빛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눈빛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을 바라보셨고 십자가에 오르셔서 당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씻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욱하고 하나님께 분노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입힌 우리를 하나님은 그 아들을 대신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내어주실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사랑과 온유와 겸손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맛보게 했다면, 우리 또한 그 사랑과 온유와 겸손의 눈으로 죄와 싸우는 배우자와 성도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롬 8:28). 욱하는 성도나 배우자를 내 곁에 두신 것도 하나님이 내 안에 선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신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오묘하게도 성화의 과정 중에 있는 성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 삶을 빚으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음을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리스도의 겸손을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온유한 심령을 거부하고 억울하고 분한 심령을 빨리 취하는 우리를 다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온유와 겸손의 눈빛으로 욱하는 성도를 대할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그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분노하는 성도가 깎아져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갈 때까지, 하나님은 성도 간에 그리고 부부 사이에 서로 연합하여 피차 권면하고 죄를 다루고 기도하고 사랑하도록 계속해서 필요한 모든 지혜와 능력을 더하실 것입니다.

욱하는 사람 곁에서 당하는 고통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그 사람을 빚어가는 성장통입니다. 하나님 손에 온전히 붙들려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이르는 아름답고 놀라운 성장의 과정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욱을 욱으로 갚지 말고, 욱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루며, 온전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기쁨으로 함께 자라기를 바랍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십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입니다.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