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달에 생각해 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까지 삶에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푼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 이어진다. 5일엔 자기 자녀를, 8일엔 자기 부모를 떠올리고, 15일엔 자기를 가르친 은사 그리고 교회학교 교사, 나아가 목사를 떠올린다. 고마운 이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영적 부모의 도움을 받아 영적 자녀를 돌보며 영적 스승으로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 보기를 원한다. 나에게 고마운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마운 존재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명령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모든 민족을 예수의 제자로 삼는 일을 누가 하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이 일을 도우신다. 제자로 삼고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 일에 예외가 없다. 나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은 영적 부모가 있고,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은 영적 자녀가 있으며, 나를 가르치는 영적 스승이 있고, 내가 영적 스승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나치게 가족 중심 혹은 개인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고 지체로서 하나 됨을 경험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의 유기적 연합을 통한 풍성한 유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의 제자도 아니고, 누군가를 제자로 양육하지도 않는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갈수록 양육은 전문목회자의 일이 되어 간다. 하지만 돌보는 일은 모든 성도의 사명이다. 목사는 성도가 각자 받은 은사대로 목양하는 일을 하도록 돕고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부른다(딤전 3:15).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성된 하나님의 가정이다. 본질적으로 진리를 가지고 서로 돕고 사랑하고 섬기고 양육하는 유기적 공동체다. 그러므로 하나님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이 자문해야 한다.

1.나의 영적 자녀는 누구인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자녀로 여겼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바울은 특별히 자신이 양육했던 디모데를 영적 아들로 여겼다.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고전 4:17)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후 1:2)

사도 요한 역시 이렇게 편지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사도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이 돌보는 영적 자녀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었고 죄를 범하여도 뉘우치고 돌이키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누리는 것이었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과 안전을 바라는 것처럼 영적 부모로서 영적 자녀의 성장과 안전을 간절히 원했다.

이런 관심과 돌봄과 사랑은 사도와 그 제자 사이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 간에 피차 주어진 것이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2-13)

우리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나의 영적 자녀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 자기 죄와 싸우고 있는 많은 형제자매 중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격려와 위로를 누구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주는 대상이 있는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먹이고 입히고 채워주는 나의 영적 자녀는 누구인가?

2.나의 영적 부모는 누구인가?

바울은 영적으로 “신령한” 혹은 “성숙한”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고전 3:1). 그런 “신령한” 사람은 범죄한 형제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고 겸손히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갈 6:1).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담대히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사도로서 바울은 형제들이 따라야 할 영적 아비로서 본이 되었다. 바울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바울이 전달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자들을 눈여겨보라고 권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삶으로 먼저 살아내고 있는 영적 부모를 보고 배우라는 말이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물론 대표적으로 말씀을 일러 주고 인도하는 자는 교회 안에 세워진 목사와 교사들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교훈은 모든 성도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성도는 다른 성도에게 본이 될 수 있다(살전 1:7; 딤전 4:12). 우리 모두에겐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 줄 영적 부모가 필요하다.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형제자매가 필요하다. 그 행실에서 좋은 열매를 맺음으로 믿음의 본이 되어줄 성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나의 영적 부모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가?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자라고 있는가? 주로 어떤 성도의 삶과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있는가? 말씀으로 나를 인도해주는 이는 누구인가? 계속해서 내 삶을 나누고(빌 2:1) 어려움을 토로하고(갈 6:2) 죄를 고백하고(약 5:16) 기도를 요청하는(행 2:42; 약 5:16) 나의 영적 부모는 누구인가?

3.나는 영적 스승인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가르치는 일은 교회학교 교사나 목사의 전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공식적인 설교시간 외에 서로의 말과 행동을 통해 많은 것을 가르치고 배운다. 

우리는 말로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묻어날 것이다. 하지만 말씀에서 멀어진 사람은 인간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쏟아내기 마련이다. 가령 직장 상사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와 교제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보다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악한 대응을 권면할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대화가 맺는 열매까지 세상 사람과 나누는 대화같다면 문제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소제가 아니라 목적에 있어서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흘러나온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한 목적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교회에 항상 늦는 사람은 그 행동으로 성도가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이제 막 성도가 된 어린 영혼에게 심어줄 수 있다. 반대로 나이가 많은 성도가 어려운 설교를 듣기 위해 열심을 내는 모습은 어린 성도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를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고 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에게 준 명령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질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통해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나는 주로 형제자매와 어떤 교제를 나누는가? 내 말과 생각에 그리스도의 말씀은 풍성히 거하고 있는가? 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그리스도의 지혜가 풍성히 담기게 하려고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특별히 한국의 교회는 그 조직에 있어서 신약성경이 요구하는 유기적인 조직에서 벗어나 목사와 평신도로 구분되는 형식적인 조직으로 굳어진 경향이 짙다. 현재 형성된 교회 구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구조 속에서 노력해야 할 부분은 분명하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써 자기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돕는 것이다.

지체가 담당하는 가장 뚜렷한 일은 영적 부모가 되어 다른 지체를 양육하는 것이다. 영적 자녀로서 다른 성도를 통해 양육 받는 것이다. 이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성실한 종교인이지만 그리스도를 주로 삼지 못하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불쌍한 영혼들이 많다. 영적 아기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하는 영혼이 많다. 성숙한 이들도 넘어지기 쉽고 싸우고 있는 각자의 힘겨운 싸움이 있다. 바로 그곳에 당신을 하나님 가정의 자녀로 삼으신 아버지의 뜻이 있다. 당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족을 섬기고 사랑하고 돌보고 가르치는 것이다. 스스로 물어보자.

당신은 영적 부모인가?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

당신은 영적 자녀인가? 누구의 본을 따르고 있는가?

당신은 영적 스승인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십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입니다.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