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2-4)

 

야고보의 서신에는 참으로 다양하고, 우리에게 제법 익숙하기도 한 여러 가지의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입니다.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1:19-20)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가라, 덥게하라, 배부르게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4-17)
  •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말라.우리가 다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3:1-2)

야고보서에는 위에 언급한 예를 포함하여 참 여러 가지의 실천적인 측면의 권고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은 명령어를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108구절중54절이명령형)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야고보서를 신약의 잠언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실천적인 지혜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는 야고보서가 권면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권고들을 해석할 때에 잠언에 등장하는 지혜의 권면을 다루 듯 하나씩 구분하여 이해하기 보다는 그 명령들을 둘러싼 당시의 배경들을 이해한 뒤, 본문에 나타난 권고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접근이 우리에게 편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그 명령이 가진 의미를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되었던 명령 가운데, “선생이 많이 되지 말아라” 와 같은 명령이 당시 편지를 받던 독자들에게 어떠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것인지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이 권고를 보다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 삶에 올바른 적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서신을 시작하는 서두에서 본 서신을 받고있는 수신자들의 처한 상황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2)

이것은 야고보서에 등장하는 가장 첫번째 명령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서신서에서 각 문단을 나눌 때에 “내 형제들아,” 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논지, 혹은 명령들이 시작되는 포인트를 잘 구분하여 전달하고 있습니다. (1:19; 2:1; 2:14; 3:1; 4:11…)

자신의 편지의 가장 첫 머리글에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이라는 말을 통해 현재 편지를 받는 독자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시험, 고난, 환난, 가운데 처해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시험을 당하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전하고자 함을 드러냅니다.

당시 야고보의 편지를 받던 이들은 시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험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야고보가 서신에서 사용한 시험이라는 헬라어 단어 “페이라스모스” 는 신약 성경에서 외적인 고난과 내적인 죄의 유혹 두가지를 언급하는 경우에 모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누가복음 22:28절과 40절에서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28절은 시험(육체적 고난) 40절은 유혹(죄의 유혹)으로 각각 다르게 번역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야고보가 시험을 만났을 때 기뻐하라는 명령을 문맥을 통해 살펴보면, 본 구절의 시험은 내적인 죄의 유혹이 아닌, 외적인 고난을 의미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외적인 고난을 겪고 있었을까요? 그들의 겪고 있던 고난을 특정한 한 가지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야고보서에서 특별히 자주 등장하는 한 가지 주제가 당시 교회의 성도들이 겪고있던 경제적인 극심한 빈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고난의 성격이 경제적 어려움과 상당 부분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이 상황을 언급합니다.

1:9 가난한형제와부한자의대조

1:27 고아와과부가환난중에있음.

2:15-16 형제자매가헐벗고일용할양식이없는상황의언급.

5:4 부자주인들이품꾼의삯을주지않는상황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고난 가운데 있던  편지의 수신자들의 태도,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본문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그들의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12-15 하나님께서자신들을죄에빠지도록유혹하신다고불평.

1:19 마음에분노

2:1-4; 9  부한자와가난한자를차별함.

2:15 형제자매가굶주림가운데있음에도그들을방관.

3:1 말로선생처럼다른이들의마음에상처를주고, 그들을말로죽이는행동.

4:1 시기함속에다툼.

4:4세상의방식을쫓음

4:11 형제들끼리서로비방.

4:13 허탄한생각으로서로자랑하는일들을일삼았음.

이것이 당신이 편지를 받는이들 가운데 어떤이들의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 가운데 야고보가 전한 권면이 바로 야고보서1:2-5절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너희가여러가지시험을당하거든온전히기쁘게여기라

이는너희믿음의시련이인내를만들어내는너희가앎이라

인내를온전히이루라이는너희로온전하고구비하여조금도부족함이없게하려함이라

이 말씀은 특별히 우리가 인생 가운데 큰 역경이나, 환난을 맞이하는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과 많이 나누는 성경 구절이 아닌가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삶의 어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커다란 역경 속에 있을 때에만 생각하고, 적용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야고보의 편지를 받았던 독자들이 마주했던것과 같이 삶의 일상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여러 가지” 문제들을 맞이함에 있어서 역시 우리가 같이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2절의 말씀을 통해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번째는, 성도의 삶에는 정말 여러 종류의 고난과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삶 속에서 정말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 겪게 되는 고난들이 있고, 때론, 죄로 인해 일그러지게 삶 자체가 모든 이들에게 가지고 오는 문제의 영역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에게는 시련이고, 고난입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하고 때로는 넘어지게도 합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이러한 삶의 고난, 문제들에 대해서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죄된 육신의 본성을 따라 그것들에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마치 야고보서에 기록된 독자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들이 고난 속에서 보인 여러 가지 다양한 행동들, 고난에 바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나타낸 잘못된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성경 곳곳에서도 같이목격됩니다. 삶의 고난이나 핍박에 대해서 바르게 반응했던 욥과같은인물이있었던 반면,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들의 모습이 또한 존재한다는것이지요.한 예로, 선지자 요나는 욥에 비할 수 없는 잠시 잠깐의 고난,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던 박넝쿨이 사라져, 극심한 더위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불평하며, 분노하던 모습을 나타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 시편73편을 기록한 아삽의 시는 고난 가운데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듯 합니다.

14절, 자신은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시편 기자의 눈에 악인들의 삶에는 자신과 같은 고난이 없고(5절), 오히려, 부귀 영화만을 누리는 것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직했던 삶을 후회하는 마음을 드러내며(13절), 하나님 앞에 그런 죄악 된 마음을 가졌던 자신의 모습을 우매무지한 짐승과 같다고 표현하며(22절), 자신의 육체와 마음의 쇠약함을 고백합니다(26절).

우리가 겪게되는 고난, 그것이 크던 작던, 때때로 우리는 이 시편 기자의 모습처럼 불평, 분노,시기와같은 죄악된 모습을 드러 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마음에 불평, 분노, 시기, 다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참 불편한 일이지만, 그것이 사실 때때로 우리가 드러내는 우리의 죄된 모습이고, 더욱 불편한 사실은 욥과 요나의 모습처럼, 때로 우리는 커다란 문제 앞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그 고난 속에서 작아지고, 낮아지고, 겸손해지지만, 오히려 삶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문제들 앞에서 더 바르지 못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 혹은 고난 속에서, 때론, 경제적으로 조금 불편한 상황에 마주할 때에 민감해지기도 하고, 또는 교통의 체증과 같은 작고 소소한 일들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더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야고보는 그러한 고난과 환난 속에서 올바른 반응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독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문제를 맞이했을 때, 성도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그 환경 속에서 온전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온전하게 기뻐하라는 명령은 우리가 전심을 다해서 그 상황 속에서 기뻐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기쁨의 이유는 물론 우리에게 다가온 문제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고난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과 환경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실 그분의 완전한 계획과 섭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신뢰함 속에서 기뻐하라는것입니다.

삶의 고난과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이 무엇이기에 성도는 그 안에서 기뻐해야 할까요?

감사하게도 야고보는 막연히 우리에게 기뻐하라고만 권고하는게 아니라, 그 기쁨의 이유, 즉 성도의 삶 가운데 직면하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계획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여러 가지시험 속에서 온전히 기뻐해야 할이유!

3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먼저 우리가 3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 말씀에 기록된 믿음이 시련이라는 표현 가운데 시련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2절에 기록한 시험이라는 표현을 다시 반복하여 표현할 때에 대신 사용한 단어인데, 신약성경에 베드로 전서 1장 7절과 본문에서  딱 두번만 등장하는 특별한 단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의미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금과 같은 금속을 불 속에 넣어 제련함을 통해서 그 금속의 순도를 100%로 만드는 과정을의미합니다.

즉, 본문에서 야고보는 성도의 삶에 고난이라는 이 시련이“믿음의 시련” 즉, 믿음을 순금과 같이 연단하는 과정이라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상기 시켜준 것입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고 상황은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 속에서 더욱 귀하게 단련 되어지는 귀한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야고보는 이 고난, 믿음의 시련이 가지고 오는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앎으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즉, 고난이 가지고 올 선물을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는그 고난, 믿음의시련이 가지고 오는 선물이“인내” 라고 말 합니다.

그런데, 이 인내라는 것은 고난이라는 힘들고 불편한 과정을 겪는 이들이 기대하는 결과물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이 되는, 희망과 기쁨의 메시지로 인내는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난을 당하고, 문제를 직면한 이들에게 제시되는 희망의 메시지는 고난이 곧 해결 될거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라는 식이 돼야 할 것같은데, 야고보가 지금 그들에게 제시한 인내라는 결과물은 쉽게 풀어 말하면 이와 같이 전해질 것입니다.

“여러가지 고난을 당하거든 기뻐해라, 왜냐하면, 이 믿음의 시련의 과정이 너희들의 삶에 인내 (이것은 버티는 힘, 무거운 것이 짓누를때, 그것을 견뎌내는 힘) 가 더 자라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과장해서 쉽게 표현한다면, 이런 상황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매를 맞아 아파서 속상해 하는 학생에게 격려나 위로의 말이 아닌, “ 매는 자꾸 맞을수록 맺집이 더 좋아지니까 다음에는 더 잘참을수 있을거야…??”

너무 심한 표현인가요;;;

물론 이것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본다면, 야고보가 말하는 인내라는 결과물은 고난을 겪는 이들이 그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거나, 위로가 되는 매력적인 결과물은 아니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는지 야고보는 4절에서 친절하게 고난과 문제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내가 성도의 삶에 어떠한 유익이 있는지를 설명을 해주고, 고난의 과정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낼 것을 명령합니다. 

  1. 인내를온전히이루라이는너희로온전하고구비하여조금도부족함이없게하려함이라.

어쩌면 우리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 속에 고난이나 문제가 찾아 올때면, 이 문제가, 그 고난이 어떻게 하면 좀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그것이 지나가기를 바라지,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을 가꾸심으로 얻게 될 인내라는 열매를 매력적으로 여겨, 그것을 사모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야고보가 본문에서 설명하는 인내가 가지고 있는 그 유익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문제의 해결보다는 인내를 더 사모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인내가 가지고 오는 결과, 곧 견디는 힘을 통해서 성도의 삶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만들어 낸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최종적인 목적.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인내, 견디는 힘을 길러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견디는 힘을 통하여 성도가 온전한 삶, 구비되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운동을 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근육들, 무게를 버티고, 견디어내는 극심한 고통의 과정들을 통해서 얻게되는 근육들이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실 생활 속에서 가지고 오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유익들이 있으니, 그것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그 과정을 버티라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인내가 가지고 오는 온전한 삶이란, 그가 3장 2절에서 말하는 것, 즉, 우리는 모든 일에 실수가 많고, 완벽한 상태에 이룰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언급하는 내용을 통해서 어떠한 완벽함을 의미하기 보다는 성숙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고난을 통해 얻게된 인내는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성숙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5:1절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새 삶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새 삶으로 부름받은 성도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을 본 받는 삶을 살아갈 것을 명령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가는것, 그것이 성도가 마땅히 살아 내야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형제의 사랑에 대한 언급은 야고보서 2장 8절에서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형제의 사랑을 말하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 표현하며, 형제 사랑이 최고의 법임을 강조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성숙한 삶, 온전한 삶의 모습은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즉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통하여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본받는삶,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더욱 성숙하게 살아내기 위해, 성도의 삶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속성을 바울이 말할 때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오래 참음이고,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 역시 견디는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을 말 할때에 바울은 처음과 끝을 포함하여, 세번에 걸쳐 인내를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사랑의 실천은 인내가 없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이 참된 사랑, 성숙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인내는 우리로 하여금온전하고, 구비된 그리스도인으로써 성숙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 인내, 견디는 힘, 불편함을 견디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고난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방법이고, 그럼으로 성도가 삶의 매 순간의 크고 작은 다양한 문제 속에서, 기쁨으로 그 과정을 감당하며 실천해 나아가야할 이유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야고보서1:2-4

현재 마스트스 신학교에 재학 중이며, Grace Community Church에서 Korean Outreach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부인 정란 자매와 사이에 온유, 하율, 세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