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나, 관계와 복음

관계의 시작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내가 관계를 ‘맺었다’기 보다 관계가 ‘맺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진다. 형제, 자매의 관계도 그렇다. 친구 관계도 내가 선택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내가 이 사람과 이런 관계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나의 선택보다는 외부 환경의 영향이 더 큰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이 관계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주권적인 선택이었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런 관계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창 1장).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인정하고 아니고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그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자녀가 부모를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들어간다. 살면서 “우리 엄마(혹은 아빠)는 왜 저래!?”라는 생각(혹은 말)을 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바꾸거나 할 수는 없다. 특히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안을 생각해 보면 이런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냐에 따라 자녀들은 무엇을 할 수도 있기도 하고 할 수 없기도 하다. 맺어진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과 창조주-피조물의 관계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성품, 계획, 기준에 큰 영향을 받았고 또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는 그럴 권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랑, 은혜, 자비, 용서 등의 좋은 단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전지, 전능, 편재, 영원과 같은 하나님만의 속성도 떠오를 것이다. 알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는 거룩, 공의, 심판과 같은 단어일 것이다.

이 모든 단어들은 하나님께 공평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전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것만 하나님의 속성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거하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좋은 것들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관계의 문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싫어해서 반역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 이 세상도 사람에게 맡기시고 다스리라고 하셨다(창 1:28). 단 하나 하나님만은 그들의 발 아래 두지 않으셨다. 에덴 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사람은 그것을 먹을 수 없었다(창 2:16-17).

그런데 사람이 그것을 먹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먹었다(창 3:5). 그 불순종이 죄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 심판이다(창 2:17). 왜 그래야 하냐고 우리가 따질 수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첫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우리가 다 죄를 범했고 따라서 심판의 대상이다(롬 3:23; 6:23; 엡 2:3). 심각한 관계의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성경이 죄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 가볍게 본다. 거짓말 한 번 하는 것이 뭐 그렇게 죽을죄라고 지옥을 얘기하냐고 한다. 다른 사람 얘기 뒤에서 좀 할 수도 있고 그래야 인간관계가 즐겁지 않냐고 한다. 남들처럼 살아야 하고 ‘유도리(융통성)’있게 살아야지 고지식하게 살면 안 된다고 한다. 그게 상식이고 세상사는 지혜라고 말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죄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내 입장에서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권위 아래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 아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다(민 14:41).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를 벗어나는 것이 죄다(롬 3:23). 하나님을 떠나 원하는 길로 가서 방황하는 것이 죄다(사 53:6; 벧후 3:17).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죄다(사 1:2). 그래서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여(롬 1:28) 하나님과의 관계, 즉 창조주-피조물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모든 생각, 말, 행위를 말한다. 이것이 죄다. 한마디로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고 배반이다. 어떤 죄도 절대 가볍지 않다.

당연히 하나님은 이 죄를 그냥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 죄는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로 이어진다. 그곳이 지옥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다.

문제의 해결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해결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증상만 알고 있으면 치료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고통의 문제 뒤에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올바른 해결을 찾을 수 없다.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은 교육과 사회 제도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많은 종교들은 ‘열심’과 ‘헌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아예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냥 살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과의 문제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방법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방법도 무효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했다. 하나님을 떠났다. 그 결과 우리는 ‘진노의 자녀들’이 되었다(엡 2:3). 우리에게 합당한 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다.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행하셨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엡 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반역한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다. 이것이 문제의 해결이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해결하셨다. 죄 없으신 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다(갈 3:13-14; 고후 5:21; 벧전 2:24).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렇게 하셨다.

사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내 자리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셨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나 할 일은 없다. 다만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믿는 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차별 없이 구원을 베푸신다(요 1:12-13; 롬 3:22).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오는 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한다.

회복된 관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은 다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갈 4:6-7; 골 1:13; 벧전 2:9). 처음 창조주-피조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관계는 ‘수직’적이어서 (죄성이 있는)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의 즐거운 관계로 회복된 것이다.

다만 아직 우리는 온전히 이 회복된 관계의 기쁨을 누리지는 못한다. 여전히 우리가 죄악 된 몸을 가지고 있고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과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어둠에 있던 우리가 이제는 빛 가운데로 들어왔기 때문이다(요일 1:3, 5).

그래서 믿고 구원 받은 자는 이제 이 회복된 관계 안에서 하나님과 즐거운 교제 가운데 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범한 죄가 가져온 결과들을 생각해 보면 더 이상 그 안에 머물 수 없음이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더 민감해진다. 죄를 죄라고 말하고 변명하지 않는다.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계속해서 은혜와 용서를 베푸신다(요일 1:8-10). 이것이 관계가 회복된 자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죄와의 싸움이 있기에 괴롭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 가운데 즐거워하고 힘을 얻으며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믿는 자의 삶이다(고후 1:3-5).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그럼, 현재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한가? 아래 두 가지 보기 중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1. 심판주-죄인의 관계 (깨어진 관계)
2. 아버지-자녀의 관계 (회복된 관계)

실제로 보기는 이 둘 뿐이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이 둘 중에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몇 가지 보기가 추가된다.

1. 관계 없음
2. 심판주-죄인의 관계
3. 아버지-자녀의 정상적인 관계
4. 아버지-자녀의 비정상적인 관계
5. 잘 모르겠는 관계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1번처럼 아무 관계가 아닐 수는 없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 관계는 이미 맺어진 관계다. 2번이라면 더 늦기 전에 믿고 회개하라. 아직 기회가 있다. 모두가 3번이길 바란다. 혹, 4번이라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바로 잡아야 한다. 관계는 회복되었다면 교제도 회복되는 것이 정상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5번이다. 잘 모르겠고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경우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내가 관심이 없다고 하면 끝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잘 모르고 그냥 살아가도 괜찮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이 관계는 이미 맺어진 것이고 우리는 그 영향 아래 있다. 이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 우리 삶의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