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1): 세 도끼 모델

영어만 사용하는 친구와 스페인어만 쓰는 친구, 그리고 내가 함께 모여 무언가 논의를 한다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논의를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내 주장만 내세우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아놀드 클링은 그의 책 “The Three Languages of Politics: Talking Across the Political Divides”에서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정치에 관한 책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 가치를 두둔하는 책이 아니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져야 할 바른 태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미시간주에 있는 유니버시티 개혁교회 담임목사이며 여러 책의 저자인 케빈 드영이 2017년 추천한 책이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이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 이 책의 도움을 얻었다. 얻은 유익을 함께 나누기 원하는 마음으로 몇 차례에 걸쳐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라는 제목으로 칼럼 시리즈를 쓰려고 한다.

threelanguages

정치에 관한 의견은 누군가에게 물어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사회적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것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언론, 미디어, SNS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공유하기 원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서로 보완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상충된다.

클링은 정치에 대한 사람의 견해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진보(Progressive), 보수(Conservative), 자유(Libertarian)

그는 각 진영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 알려면 다음 보기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P) 나의 영웅은 불우한 사람들 편에 서는 사람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여자나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다.

(C) 나는 고유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내가 못 견디는 사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전통을 깨부수는 사람이다.

(L)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는 자가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빼앗아가는 정부를 위험한 집단으로 본다.

그는 이 분류법을 세 도끼 모델이라고 부른다(the three-axes model). 도끼가 무언가를 두 동강 내듯, 각각의 진영은 두 가지를 대립 구도로 보고 한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다.

가령 진보(P)는 억압하는 자-억압받는 자로 사회구조를 파악한다. 억압받는 자 쪽에 서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고, 그렇게 하려고 억압하는 자를 견제한다. 보수(C)는 문명-야만으로 구분하여 문명을 지탱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야만적인 행위를 규제한다. 자유(L)는 자유-강제로 구분한다.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 좋은 것, 그것을 방해하는 강제는 해로운 것으로 본다.

클링은 세 도끼 모델이 정치적 이슈에 관한 모든 견해를 대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우리가 쉽게 빠지는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이 모델이 유용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진영에 속한 자들로 같은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논할 때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처럼 이야기한다. 어떤 정치적 이슈든지 세 가지 관점에서 충분히 평가되고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각 진영에서 같은 이슈를 바라보며 서로 다른 가치 기준으로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다른 해석을 하고 이야기될 수 있다. 만일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만 고정되어 있으면, 모든 이슈는 내 관점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다른 관점을 약화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저자는 한 가지 예시로 <Black Lives Matter> 집회에 관해 이야기 한다.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 문제다. 진보에서 볼 때 이것은 인종차별 문제다. 백인 경찰관을 포함한 사회 구조는 억압하는 측면에 있고, 억압받는 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보수는 다르게 본다. 흑인 범죄자는 사회 질서를 지키고 있는 경찰을 비롯하여 시민을 위협한다. 사회를 무너뜨리는 야만인이 흑인 범죄자이고, 피해자인 시민과 사회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유 진영 쪽에서는 이 이슈가 인종차별이나 사회질서 문제가 아니라 경찰 권력으로부터 시민이 자유를 얻는 것의 문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기분 전환을 위한 약물을 사용하는 등 악의 없는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는 입법부와 사법부,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이 문제다. 경찰에 의해 육체적 손상을 입는 시민이 그들의 권리가 부인되는 선량한 자유인 쪽에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세 가지 관점에서 아주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가령 흑인 총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기도 없고 위험해 보이지 않는 흑인을 무참히 죽인 인종차별적 범죄로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P).

많은 경우 여러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흑인을 선량한 시민을 위협하는 야만인으로 간주하고 적절한 방위를 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C).

혹은 자유(L) 진영의 입장에서는 약물 복용이나 부랑자에 대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경찰과 흑인이 자꾸 대면하게 되고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 부분에 자유를 허락하면 문제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떤 사건과 보도를 바라볼 때 자기 진영의 한 가지 관점으로 빠르게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고(fast political thinking),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천천히 생각해보는 방식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한다(slow political thinking).

이런 방식으로 정치적 사고를 할 때 얻는 유익은 첫째, 각 진영에서 이슈를 어떻게 프레임 씌워 다르게 분석하고 보도할지 예상 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스스로 정치적 사고를 할 때 내가 선호하는 쪽에서만 이슈를 받아들이고 편향된 사고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의하지 않는 측면에서 말하는 가치를 볼 줄 알고 보다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혼자 그것을 모두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은 여러 은사와 지혜를 가진 사람을 하나로 불러 모으셔서 함께 공동체를 경영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래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슈를 논할 때 그리스도인은 쉽게 서로의 다른 관점을 이해심 있게 바라보지 못한다. 서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어디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선호하는 진영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 없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무시하면서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기 쉽다. 심지어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우리는 정치에 관해 말할 때 의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많은 지략을 듣고 수용할 태도를 갖추고 있는가?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천천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성숙했는가?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입니다.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